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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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45) 착한 사마리아인에게서 배우는 자살예방 ② ‘다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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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루카 10,33-34)

초등학교 시절 시험을 보고 집에 왔는데 어머니께서 물으셨습니다.
“시험 잘 봤니?”
“네, 그럼요. 눈이 있으니 아주 잘 보고 왔죠!”
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가끔씩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어릴 적 제 일화입니다. ‘보았나?’라는 질문은 단순히 눈으로만 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당하고 쓰러져 있는데 사제는 그를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지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유다인과 원수지간인 사마리아인이 지나갔는데 그는 강도를 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가가 상처를 싸매주었습니다.
앞서 사제와 레위인도 똑같이 강도 당한 사람을 보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보았지만 진정으로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어느 율법학자가 던진 질문에 예수님이 해주신 비유였습니다. 율법학자는 물었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은 사제와 레위인과 사마리아인 중에 누가 강도당한 이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이가 이웃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은 옆집에 살고 있거나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는 이가 바로 나의 이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당한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단어로 자주 나옵니다. 희랍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ζομαι)는 번역하면 ‘창자가 움직이다’, ‘창자가 끊어지도록 감동을 받다’, ‘측은지심(가엾은, 불쌍한 마음)이 들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말 중에는 ‘애 끓는다’는 표현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에게 ‘본다’와 ‘마음의 움직임’은 나눠져 있지 않습니다. 본다는 것은 다가가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에게도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싸매주었습니다.

각자의 주변에도 마음이 지치고 위로가 절실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 말을 할 곳이 없고 고립된 경우가 많습니다.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누군가 내 말을 한마디라도 들어주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들에게 누군가의 경청은 강도 당한 이에게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싸매주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가 해결되기 어렵더라도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함께 있어주는 것은 작지만 어떤 이들에겐 생명을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차바우나 바오로 신부
서울성모병원 영성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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