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좋은 향기가 난다. 방금 전까지 도로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렸더라도 최적의 서비스를 추구하는 호텔에 들어서면, 고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른바 향기 마케팅이 보편화되어 있다. 내장재도, 조명도 모두 우아하고 고급진 것을 사용하기에 고급 호텔들은 최고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반면 병원 로비의 풍경은 어떨까?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병원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 질병의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무채색의 내장재와 유니폼은 병원을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 보이는 두 공간, 호텔과 병원은 사실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우리 말에는 구분되지 않지만, 서구 언어에서는 호텔(Hotel)과 병원(Hospital)이 모두 라틴어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 즉 ‘환대’라는 뜻에서 나왔다. 오늘날 개념의 병원이 생기기 전, 길을 떠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은 길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면 우선 지역의 숙박 시설을 찾았고, 거기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약 성경 루카 복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장)을 보면 예리코로 내려가다 강도를 맞은 이를 데려간 곳이 바로 여관이었다. 마음 착한 사마리아인은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며 그의 환대를 부탁했다. 이처럼 당시의 여관은 긴박한 상황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거절하지 않는 공간, 아프고 다친 이들을 호의로 맞이하는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호텔은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만 환대하는 곳이 되었지만, 병원이 아픈 이들이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면 누구라도 맞아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이가 공감하는 바다. 따라서 비록 서로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가득한 전쟁터라도 병원은 차별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문을 닫아걸지 않는다. 그런 이유에서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병원과 구급차에 대한 공격은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전쟁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자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따라 의도적으로 병원을 노리거나, 다친 군인을 치료하는 곳이거나, 이들이 무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료시설을 공격하는 행위는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지난 15일, 결국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에 있는 가장 큰 의료시설 ‘알시파 병원’ 내부에 진입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특공대가 투입되었고 탱크와 불도저가 병원 마당에 진을 쳤다고 한다. “투항하라”, “움직이지 말라”는 군인들의 고함, 놀란 환자와 의료진의 비명, 그리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전기가 끊어진 인큐베이터 안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신생아가 있었고, 이들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은 뛰어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 내의 남성들은 발가벗기고 눈이 가려진 채 중무장한 특공대원들에 의해 마당으로 힘없이 끌려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기지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병력 투입 전에 사전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그 말이 맞다 해도 비무장에 상처를 입고 누워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전쟁의 비참함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13일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한 달여 넘게 진행된 전쟁으로 1만 1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 어린이가 4630명, 여성은 3130명이라 한다. 얼마나 더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그렇게 전쟁이 끝나면 적개심도 증오도 사라질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더 큰 증오와 더 강한 미움의 씨앗을 심을 뿐, 폭력은 결코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더 많은 목소리가 울리면 좋겠다. 전쟁을 멈추라고, 이러다 다 죽게 되니 그만 하라고 말이다.
정수용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