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첫 100세 주교, 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를 만나다
윤공희 대주교가 15일 광주가톨릭대학교 주교관에서 본지와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윤 대주교는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질문에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가 올해 100세를 맞았다.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는 상수(上壽)에 이른 한국 교회 첫 100세 주교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과 5·18 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현대사를,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뒤 그 정신을 적용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삶을 살아온 윤 대주교는 교회사는 물론, 한국사의 산증인이다. 동시에 주교로 60년, 사제로 73년을 살아온 ‘주교들의 주교’이자, ‘큰 어른’이다.
15일 광주가톨릭대학교 주교관에서 만난 윤 대주교는 100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다. 외부 일정도 많아 인터뷰 날짜도 일찍이 선점(?)해야 했다. 지난 11월 8일 우리 나이 100세 축하연을 가진 윤 대주교에겐 지금도 축하 인사가 끊이질 않는다. 한국 교회의 든든한 노거수(老巨樹)처럼 한 세기를 살아온 주교는 인터뷰 내내 건강한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띠며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했다.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할 땐 미리 생각해둔 답변을 진중하고도 간결하게 답했다.
윤 대주교는 청년과 노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거듭 “따뜻한 관심과 지원을 더욱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자들을 향해서는 “교회의 전부”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윤 대주교는 교회 이슈와 사회 문제에 이르기까지, 진심 어린 걱정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100세’라는 연세가 어떻게 다가오시는지요?
‘오래 살았구나!’ 생각이 들죠. 지난해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년에 또 만으로 100세 됐다고 축하받게 되는 건 아닌지 몰라요.(웃음)
-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부모님 두 분도 모두 아흔이 넘도록 사셨습니다. 집안 내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자는 게 비결이죠. 그리고 교회라는 가족 공동체 안에 살고 있기에 한순간도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주교님들,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신자들이 다 저를 기억하고 돌봐주셔서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짐만 되고 있으니까요.
윤공희 대주교가 반려견 로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입양한 로마는 윤 대주교에게는 큰 활력소이다. 오른쪽은 윤 대주교와 함께하고 있는 까리따스수녀회 이순자(엔다) 수녀.
- 평소 일과도 궁금합니다.
밤 10시쯤 잠들고, 아침 5시~6시쯤 일어납니다. 아침 기도를 하고, 미사 봉헌한 뒤 산책도 하고요. 책을 즐겨 읽습니다. 귀는 좀 어둡지만, 아직 눈은 밝거든요. 소설책도 읽습니다. 한 달에 3~4권 정도요. 신학 관련 책도 읽는데, 신학을 공부했어도 요즘 보면 책들이 너무 어려워요.
- 사제로 73년, 주교로 60년에 이르는 시간에 대한 소회가 어떠신지요?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기도 했고, 어릴 때 본당 수녀님이 저보고 “신부가 돼야 한다”고 하셔서 ‘나는 신부가 돼야 하는가보다’ 했어요. 고민할 것도 없었죠.(웃음) 주교가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39살에 주교가 됐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2회기 때였어요. 바티칸에서 주교 서품식 후에 우르바노대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바오로 6세 교황님과 인사를 했는데, 교황님이 제 나이를 들으시고선 “많이 젊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요.(웃음) 신부와 주교는 하느님 섭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된 거로 생각합니다.
- 코로나19의 터널을 지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신자들도 많았습니다.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신앙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는 상황이죠. 신자이지만, 신자가 아닌 이들과 다를 게 없는 그런 모습.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회가 야전병원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가난하고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먼저 돌보는 그런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도 그런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하고요.
- 요즘 양극화와 갈라치기 문화가 더욱 만연해집니다.
우리가 인간의 욕심, 다른 사람에 대한 무관심 이야기를 많이 하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 그것으로 만족하는 그런 세상인 거죠. 모두 떨쳐버려야 합니다. 인류는 한가족이고 형제라는 생각을 늘 해야 해요. 그런 생각을 깨우칠 수 있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쓸모없는 존재로까지 여깁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외면하거나 짐으로만 생각하는 현실이 참 안타까워요. 희망이 없어지는 것 같아서요. 그분들은 과거 우리나라를 오늘날 이만큼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할까요. 그런 세대에 대한 고마움이 없으면 미래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결국 현재에 안주할 수밖에 없죠. 그분들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주교님께서 들려주시는 노년의 가치가 있다면요?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현재는 하느님의 사랑에 맡기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라.”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대해 참으로 하느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는 하느님 사랑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면 되지 않겠는가 여깁니다.
- 청년들도 어렵습니다. 취업, 결혼, 출산도 힘든데, 안타까운 죽음도 되풀이됩니다.
나의 삶이 참으로 귀한 것이란 생각을 꼭 갖길 바랍니다. 세상에 여러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많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때도 많을 겁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세요. 긍정적인 생각과 믿음 안에 살아가십시오. 하느님 사랑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지 않길 바랍니다.
- 올해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43주년을 맞았습니다. 상처의 회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왜곡된 시선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5·18은 큰 시련입니다. 잊지 말아야 하고, 왜 일어났는지도 잘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진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윤공희 대주교가 산책로를 걷는 중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10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윤 대주교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식사를 하고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 평남 진남포가 고향인 만큼 북녘을 향한 그리움도 크실 듯합니다. 남북 관계,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남북 관계에 다시금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적대적 관계가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해요. 민족 정신을 일깨울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젊은 세대를 비롯해 우리가 한민족이란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평화에 대해 좀더 깨우치고 평화적인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 60여 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 정신을 이어 다시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시노드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참석 때 「교회헌장」 제2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2장이 ‘하느님 백성인 교회’거든요.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으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한 백성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바로 교회의 공동체성이죠. 시노드도 같습니다. 교회의 모든 이를 하나의 공동체로 보고, 함께 의논하고 길을 찾고,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 시노드입니다.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함께하는 여정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 시노드를 통해 많이 언급되는 것 중 하나가 성직자 중심주의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성직자에게 많이 의존해왔습니다. 내가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 책임을 갖고 참여하는 그런 자각이 부족하지 않았는지도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같이 걸어가면서 구원을 받는 것이죠. 믿음을 보여주고 삶으로 복음을 실천해나가는 노력을 할 책임과 사명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됐다는 것을 더 깊이 깨우쳐야 합니다.
- 이에 대해 후배 사제들에게 특별히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면요.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과 섬김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피하고 편안하고 안일한 모양으로 살지 않는가, 성당에서 성무를 집행하는 것으로 만족하진 않는가 말이죠. 저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생각합니다. 김 추기경님은 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목자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이런 것이죠. 저는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배 사제들에게 부탁합니다.
- 대주교님께 신자들은 어떤 존재인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사도직에 대한 사명감으로 살아가는 훌륭한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박해시대 때도 그랬지만, 우리 신자들은 아주 훌륭한 분들입니다. 보편 교회도 한국 교회 신자들의 신앙심과 적극성에 아주 감탄하거든요. 훌륭한 평신도 선배들을 따라 오늘날에도 평신도로서 깊은 사도적 사명감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신자로서 훌륭한 시민이 될 때 그 자체가 훌륭한 사도직이라 생각합니다.
- 2024년 갑진년 새해를 앞두고 이른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대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게 갖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 속에 살아가고,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잊지 않으시고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100세 주교의 이 시대를 향한 조언은 다른 무게감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90분 인터뷰 내내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지팡이에 의지해 울퉁불퉁한 숲길을 걷는 동안 연이은 사진 요청에도 카메라를 향해 넉넉한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줬다. 주교관을 떠나는 순간 대주교는 기자의 손을 잡았다. 평생의 흔적이 배어있는 거친 손에는 그러나 온기가 가득했다. 손에 밴 따뜻함만큼 여전히 교회를 위하고, 사랑하는 한국 교회의 ‘영원한 주교’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 윤공희 대주교 약력
△1924년 11월 8일 평남 진남포 출생
△1949년 덕원신학교 신학과 수료
△1950년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성신교정) 졸업, 사제수품
△1950년 서울대교구 명동주교좌본당 보좌
△1951년 UN 포로수용소 종군 신부
△1954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1954~56년 서울 성신중고 교사
△196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 졸업, 신학박사
△1963년 주교 수품, 초대 수원교구장 착좌
△1967~68년 겸)서울대교구장 서리
△1970~75년 주교회의 부의장
△1973년 제7대 광주대교구장 착좌
△1975~81년 주교회의 의장
△1975~88년 주교회의 정평위 위원장
△2000년 11월 광주대교구장 은퇴
△2023년 11월 100세 백수연(白壽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