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청각장애 특수학교인 충주성심학교(교장 홍향순 마리베네딕다 수녀)의 점심시간. 초등학생 20여 명이 모여 있지만, 식당 안은 조용하다. 소리를 내지 않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학교를 방문한 이방인을 살피던 학생들은 어깨를 치고 손인사를 건넨다. 몇몇 아이들이 전한 인사는 발음이 정확하지 않다. 특수학교가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오해를 할 수도 있는 상황. 뒤늦게 발견한 학생들의 눈을 마주하자 누구보다 반갑게 이방인을 환대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마음을 보지 못하고 겉모습만으로 판단했던 많은 오해들은 그들을 배제하고, 그들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느님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창조했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다. 충주성심학교는 세상이 만들어낸 편견을 이겨내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사랑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 무거운 짐 진 자 사랑으로 품고자 문 열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한 미국인 신부가 가난한 이들을 돕고자 한국을 찾았다.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은 청주교구 야현성당(현 교현동성당). 그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협의회를 만들고 국제가톨릭구제회에서 들여온 구호물품을 나눠주며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조셉 보러 윌버(Joseph Borer Wilbur), 한국명 옥보을 신부 이야기다.
전쟁으로 인해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했던 주민들은 구호물품을 나눠준다는 소식에 너나할 것 없이 성당을 찾았다. 이중에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 시력과 청력을 잃은 아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옥보을 신부에게 장애를 가진 가난한 아이들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선물과 같았다.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고자 옥 신부는 1955년 충주성심맹아학원을 설립해 시각장애 아동과 청각장애 아동 교육에 헌신했다. 이후 장애유형이 다른 장애아동들을 같은 공간에서 교육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1960년 학교를 분리했고, 농아학교는 성심농아학교(현 충주성심학교)라는 이름으로 교현동성당 옆에 세워졌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는 설립 정신을 바탕으로, 충주성심학교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스스로의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과 민주 시민으로서의 자질과 품성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교육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국가톨릭교회에서 세운 최초의 특수학교였던 충주성심학교는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사회 장애인 교육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청각장애 아동 감소로 청각장애 학생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학교가 줄어들면서, 전국의 청각장애 학생들이 충주성심학교를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충주성심학교에는 충청도뿐 아니라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지내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충주 외 지역 학생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2004년 청주에 파견학급을 두고 유치부와 초등부를 운영하고 있다.
■ 자립 돕고자 다양한 교육 실천
들리지 않는 학생들은 몸으로 자신을 더욱 잘 표현한다. 관찰력이 좋은 덕분에 체육과 미술 등 예체능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많다는 게 정현애(아녜스) 교감의 설명이다. 충주성심학교는 이러한 학생들의 능력을 개발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이끄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청각장애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이해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성심 진로 EBS’(Exploration, Build, Spread)도 그중 하나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순차적으로 ‘자아 이해 및 긍정적 자아개념 형성’ 활동과 건강한 직업의식을 형성하는 활동을 진행한 뒤 중학교 3학년부터는 다양한 직업 체험을 하고, 구체적인 진로를 설계하는 과정을 배운다. 이를 통해 학교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소질을 찾고 긍정적인 자아개념과 자아효능감을 높이고자 한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장애를 극복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AI로 소통하는 장애 없는 세상 만들기’는 인공지능 스피커 및 플랫폼으로 청각장애 언어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수어를 활용한 코딩 프로그램을 구안하는 활동을 진행하며,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창구를 스스로 발굴하고 개발하도록 돕는다.
또한 학교 안에서 다양한 탄소중립 활동을 실천하는 ‘초록에는 장애가 없다’를 통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생태 시민의식을 함양할 뿐 아니라 장애와 비장애를 아우르는 포용 사회 구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야구경기는 소리가 큰 영향이 없다고요? 야구방망이에 공이 맞는 소리를 듣고 안타인지 파울인지 파악을 하고 각 주자가 뛰어야 할지를 빠르게 판단해야 해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학생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긴장하며 경기를 해야 하죠. 힘든 도전임에도 우리 아이들이 야구를 하는 이유는 장애가 자신을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예요.”
정현애 교감은 충주성심야구부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2002년 9월 창단한 충주성심야구부는 청각장애인들만으로 구성된 야구팀이다. 한국 최초 청각장애인 야구팀이라는 타이틀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그보다 값진 것은 학생들이 야구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다.
정 교감은 “우리 학교에 올 때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일반학교에서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 상처받고 자존감이 낮은 상태”라며 “마음이 아픈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너희들도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며 사랑으로 교육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길을 알려주는 교육 중 하나가 야구였다. 공동체 안에서 소통하고 인내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아이들은 학교 밖을 나와 홀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게 된 것이다. 정성민(베드로·18)군은 “마음에 분노가 많았는데 야구를 하면서 차분해지고 인내하는 힘을 키울 수 있었다”며 “일반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소통을 못해서 왕따를 당하기도 했는데, 충주성심학교에 와서 저희를 사랑해주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됐고 사회에 나가서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찾게 됐다”고 말했다.
교장 홍향순 수녀는 “우리 학교에 와서 장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면 늘 보람된 마음이 든다”라며 “한 명 한 명 건강하게 자기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동행하는 성심학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