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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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특집/ 희망의 빛을 찾아서] (1) 허기진 이들에게 온기 전하는 ‘젊은이 따순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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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탁!탁!~! 타다닥~! ”
11월 23일 오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어울림센터 2층. 수북이 놓인 채소를 도마에 올려 썰고 다지느라 수녀들과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오늘 반찬은 나박김치와 어묵조림.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돼지고기김치찌개도 주방 한편 커다란 솥에서 매콤한 내음 풍기며 펄펄 끓고 있다. ‘따순밥’만 안치면 점심 준비도 마무리된다. 올 초부터 이곳에서 봉사하는 광주 남동본당 신자 이성희(베로니카)씨와 진순영(빅토리아)씨는 “자식 같은 청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절로 흥이 난다”며 “봉사하러 와 오히려 힘을 얻고 간다”고 했다. 일 년째 이어져 온 ‘젊은이 따순밥집’(이하 따순밥집)의 평일 오전 풍경이다.


#기다림 1. 환대를 준비하며

따순밥집은 2022년 11월 1일 문을 열었다. 인근 ‘성 요셉의 집’에서 25년간 의지할 곳 없는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전하고 있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광주관구는 성 요셉의 집 2호점을 준비하며 특별히 청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천정부지 오르는 물가로 점심값이 부담돼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지자체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청년들은 그렇지 못했다. 꿈과 희망을 펼치는 대신 생존 걱정을 해야 하는 사각지대 청년들.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따순밥집이 자리한 양림동은 광주 도심에서 청년들의 접근성이 가장 좋은 곳이다. 조선대와 전남대 캠퍼스, 학생식당이 없는 기독간호대가 지척이고 인근 공방과 상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청년도 많았다. 지자체도 힘을 보탰다. 취지에 공감한 광주 남구는 지역 공동체 회복과 도시 재생을 위해 지은 양림어울림센터를 밥집 공간으로 제공하고 수천만 원 상당의 집기도 지원했다.

어려움도 있었다. 광주에서는 ‘개신교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개신교 교세가 대단한 지역에 수녀들이 밥집을 낸다니 목사들과 교회 신자들은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지역 주민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성 요셉의 집 원장 이혜정(글로리아) 수녀는 “‘기도하셔야지, 여기 나와서 뭐 하는 겁니까’라는 핀잔 섞인 항의를 들을 때 정말 힘들었다”며 “밥집 취지를 설명하고 오랜 설득 과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문을 열 수 있었다”고 했다.


#기다림 2. 작은 기적을 함께 만들며

따순밥집에는 수녀 3명 외에도 가까운 본당 신자를 비롯한 봉사자 32명이 요일마다 번갈아 찾아 음식 준비와 설거지를 돕는다. 매일 80인분의 식사를 위한 식재료는 100 후원으로 채워진다. 서울의 은인은 최고등급 돼지고기를, 광주시는 김치 후원에 다리를 놓았다. 지역 주민들도 틈틈이 쌀과 채소를 대가 없이 지원하고 있다. 밥집 입구 작은 화이트보드에는 11월 한 달간 쌀과 김치, 채소, 과일 등을 후원한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따순밥집의 점심 한 끼는 2000원. 인근 식당 백반 1인분의 5분의 1 가격이다. 지자체가 공간을 내어주고 봉사자들이 힘을 보태며 이름 모를 많은 은인이 후원을 아끼지 않았기에 실현 가능한 금액이다. 저렴하지만 정성 담긴 푸짐한 한 끼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입소문을 타며 이곳을 찾는 이도 늘고 있다. 많을 때는 100명이 넘는 청년과 지역 주민이 한 상에 둘러앉는다.

기독간호대 학생 김해솔씨는 “점심값이 2000원이라는 선배 이야기를 듣고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교회를 다녀 수녀님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엄마처럼 항상 밝게 웃으며 맞이해주셔서 이곳에 올 때면 항상 마음이 편하고 즐겁다”고 전했다.

이 수녀는 ‘따순밥’ 한 공기를 나눈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청년과 은인이 셀 수 없이 많다고 전했다. “어느 날 식사를 마친 한 청년이 90도로 허리 숙이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하더라고요. 엄마 없이 자랐는데 주위에서 이야기하는 ‘엄마 밥’이 이런 건가 느꼈다며 울먹였어요. 꼭 안아주며 함께 울었어요.”

쭈뼛하며 들어와선 ‘돈도 못 벌고 방황하는데 한 끼 먹을 수 있냐’는 청년에게는 밥값을 받지 않았다. 대신 훗날 다른 곳에서 오늘 받은 것을 똑같이 나눠 달라 당부했다. 한 부부는 “청년들 대신 내는 밥값”이라며 10만 원을 선뜻 전했고, 이곳에서 점심을 잘 먹는다는 아들 이야기에 타지 부모는 쌀 40㎏을 보냈다. 쌀 떨어져 걱정이라는 전화 한 통에 마을 자치회는 10㎏ 쌀 50포대를 모아 문 앞에 쌓아놓았다. 이 수녀는 모든 것이 ‘작은 기적’이라고 했다. 찾는 이와 도움을 주고받는 이, 지역 주민이 하나로 어우러져 이름 그대로 ‘어울림’의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기다림 3. 함께 계신 예수님을 설렘으로 다시 기다리며

기쁘게 봉사한 일 년이지만 이 수녀는 또 다른 바람이 있다. ‘구이 김이 먹고 싶어요’, ‘햄 반찬도 해주세요’라는 청년들 이야기를 들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식탁에 올리고 싶다. 하지만 후원에 의존해 밥집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 이 수녀는 “후원으로 동참하는 이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이곳에서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는 봉사자들도 더욱 풍성한 식사를 위해 더 힘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내일모레 반찬은 어쩌나, 빠듯한 후원금으로 어떻게 버티나 밤마다 걱정하면서도 맛있게 밥 먹는 청년들을 보면 또다시 힘을 내요.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설렘으로 기다리잖아요. 저는 일 년 내내 설렘으로 청년들과 주민들을 맞이하고 또 그 안에 함께 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있어요.”

※후원 및 문의: 농협 351-0946-0483-93(성 요셉의 집), 062-672-1135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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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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