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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생명철학과 생명 영성이 필요한 시대(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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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과학ㆍ기술주의와 자본주의는 실증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물을 토대로 형성된 체계다. 흔히 자연주의로 부르는 이러한 철학적 관점은 지각 가능한 사물, 그러한 물질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철학 위에서 물질적 실재를 해명하는 과학은 사물에 대한 객체적 지식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를 기술공학적으로 응용함으로써 현대인은 그 이전 어느 시대에도 보지 못한 삶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수많은 기술공학적 성과를 생각해보라. 그 정교함과 편리함에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이 철학은 또한 정치적이며 경제적 측면에서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로 작용한다. 자본주의가 거둔 경제적 성공은 우리 삶에 놀라운 풍요와 윤택함을 가져다주었다. 이 성공은 마침내 사회와 정치 체제가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라 기능하도록 만들었으며, 나아가 사람들의 세계 인식과 가치관조차도 그 논리 안에 포섭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체제와 그를 통한 성공이 현대인의 삶을 민주적이며 자유주의적으로, 나아가 물질적 풍요와 안락함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체제를 근거짓는 철학적 관점이 자연주의적 주장에 국한됨으로써 현대인은 자연적 사실을 넘어서는 영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상실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과학 기술주의가 성공적으로 수행되면 될수록 그에 따라 인간의 실존적이며 정신적인 영역, 나아가 영적인 영역에 대한 무관심과 몰이해는 심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에 따라 생명 역시 오직 자연적 실재로 이해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적 실재로 환원할 수 없는 수많은 영역들이 다만 그러한 층위로 환원되거나 그에 국한되어 이해되는 현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가 초래하는 삶의 공허함과 의미론적 소외를 견디기에는 인간은 너무도 그 이상의 세계를 향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인간은 한 마디로 의미를 추구하며 그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는 초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위기는 여기에 자리한다. 공동선과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물론, 다른 사람과 공감하면서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려는” 생각이 사회에서 외면되는 것은 모두 이러한 자연주의적 철학과 그에 토대를 둔 물질주의적 문화 때문이다. 그 결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 현대 사회에서 수없이 범람하는 영성에 대한 갈구이다. 그래서 세속적인 심리학적 지식이나 심리 상담, 또는 뉴에이지 같은 유사 영성이나 유사 종교 현상이다.

생명철학은 이런 사이비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철학적 관점에서 영성의 의미를 존재론적으로 정립하려 한다. 이러한 철학적 토대 위에서야 모든 종교적인 영성 개념이 정당하게 이해될 수 있다. 철학적 토대 없이 교의적 가르침은 그 이론적 토대를 명확히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초기 교회의 전통 이래 자명하게 확인되는 사실이 아닌가. 영성에 대한 철학적 근거 정립을 지향하는 철학은 생명철학에서는 생명 영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유럽어 계통의 거의 모든 고대어가 영혼을 생명의 숨과 연결지어 언어화했다. 이 생명의 숨이 생명성이기에 이를 철학적으로 성찰하고 해명할 때 비로소 자연이성 중심의 현대 문화를 넘어 생명 영성을 체계화할 수 있다. 그 위에서 그리스도교 영성을 현대 문화 안에서 정당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현대인의 영적 갈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유사 영성과 사이비 종교 현상은 범람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영성에 대한 철학적 체계화와 함께 그에 근거한 타당한 영성을 지향하는 노력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승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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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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