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행사가 12월 11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되는 기념미사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과 교황청은 2019년부터 5년간 추진해 온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 사업’의 연구 성과를 조명하는 기념 심포지엄을 11월 21일 개최했다.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보편교회와의 교류와 함께 수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 ‘모든 이를 위하여’를 마련했다. 외교사절의 상호 방문도 한 해 동안 이어졌다. 수교 60주년의 해를 마무리하며,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교황청의 관심과 지지, 공식 수교 이래 60년간 함께해 온 대한민국과 교황청의 연대 여정을 되돌아본다.
가톨릭교회,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품다
교황청은 해방 직후 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7년 비오 12세 교황은 패트릭 제임스 번 주교를 교황사절과 동등한 권한을 지닌 교황청 순시자(Apostolic Visitor)로 임명, 한국에 파견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 부임한 첫 외국사절이며, 이는 곧 교황청이 대한민국을 주권국가로 승인한 것으로 국제사회는 바라봤다. 또한 1948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는 비오 12세 교황의 지시를 받은 주 프랑스 교황대사 주세페 론칼리 대주교(훗날 성 요한 23세 교황) 등이 노련한 외교와 막후교섭으로 한국 대표단을 도와 유엔이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할 수 있도록 도왔다.
‘韓國, 聖廳과 外交 樹立’
대한민국과 교황청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이로부터 15년이 지난 1963년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당시 교황사절 안토니오 델 주디체 몬시뇰을 통해 교황청에 주 교황청 한국대사 신임을 요청하고 동시에 서울에 교황대사를 맞이하고자 하는 의향을 알렸다. 이어 12월 7일 구두각서 교환이 이뤄졌고 나흘 뒤인 1963년 12월 11일 결정이 공식화되며 완전한 외교 관계가 체결됐다.
가톨릭신문(당시 가톨릭시보)은 1963년 12월 25일자에 게재한 ‘韓國(한국), 聖廳(성청)과 外交 樹立(외교 수립)’ 기사에서 “바티칸의 외교망은 공산권을 제외한 세계 전역에 뻗쳐져 있는 만큼 강력한 외교진용을 가진 성청과 공사 교환을 한 것은 우리 외교의 전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66년 9월에는 양국의 외교관계가 대사급으로 격상됐고 이듬해 1월 정일영 주스위스 한국대사가 주교황청 대사를 겸했다. 1974년에는 주 교황청 대한민국 대사관이 설치되고 초대 상주대사로 신현준(요아킴) 대사가 임명됐다. 1947년 이후 교황청은 총 11명의 교황사절과 18명의 대사를, 대한민국은 현 오현주(그라시아) 대사 등 17명의 대사를 파견해 신뢰와 우정에 기초한 상호 관계를 키워 나갔다.
세 차례 교황 방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대한민국과 교황청은 교황의 방한과 역대 대통령의 방문, 다양한 교류와 협력 사업을 통해 양국 관계를 돈독히 해 왔다. 특히 한국에 대한 교황의 특별한 관심은 눈길을 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3년 대한항공(KAL) 007편 피격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에게 조전을,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 때는 주한 교황청 대사를 조문 사절로 보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식과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순교자의 땅’에 입을 맞추고 우리말로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 이야기한 모습은 아직도 회자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을 위해 2014년 방한했다. 교황 즉위 후 줄곧 북한 방문을 희망하며 한반도 평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했다.
한국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도 이어졌다. 2000년 고(故) 김대중(토마스 모어) 대통령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예방했으며 노무현 대통령(2007년)과 이명박 대통령(2009년)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알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은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 교황청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60주년을 디딤돌 삼아 ‘희망의 수호자’로
교황청 국무원 외무장관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는 11월 21일 열린 한국-교황청 관계사 발굴 사업 심포지엄 연설에서, “가톨릭교회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서로 만나 연대를 충만히 하고, 한민족 전체의 영적 성장에 유익한 도움이 됐다”며 “대한민국과 교황청이 걸어온 공동의 길이 지닌 중요성을 드높이는 데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4년 방한 때 제시한 ‘기억의 수호자, 희망의 수호자가 되라’는 말씀이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갤러거 대주교는 “‘희망의 수호자’란 관점에서 우리 모두 활발한 협력에 대한 염원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함께한다면 전 세계와 동아시아에 감도는 어려운 도전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평화를 향한 한국 국민의 염원에 교황청이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재확인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