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삶이 끝나갈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실존이 회수되는 그 순간, 아마도 시간의 흐름이 멈추고 살아온 삶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연상되고 어떤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동시에 자신이 지나쳐온 장소들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깃든 존재와 관계성이 뇌리에 배경처럼 투영됐다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자칫 고통스러운 순간이 아닌 마지막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현재의 삶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려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 속의 소리를 ASMR(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소리)처럼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잠을 자고 있는데, 일하느라 뒤늦은 식사를 하게 된 부모님이 찬밥과 반찬을 한데 넣고 숟가락으로 밥을 비비는 소리, 입에 밥을 넣는 소리, 음식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자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밀려온 적이 있습니다. 이 소리는 제가 기억하는 가장 원형적인 ASMR이면서 또 생애 마지막 순간에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는 짜장면 집, 분식집, 화장품 소매점, 양장점, 자전거포 같은 다양한 점포들이 대로변을 끼고 ‘ㄴ’자 형태로 되어 있었고 가운데는 마당과 공동수도가 있었습니다. 또 ‘ㄱ’자 형태로 가정집들이 오른편에 붙어 있어 전체적으로는 ‘ㅁ’자 형태의 상점과 집들이 연결된 구조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아이들이 많아 마당에는 항상 아이들이 넘쳐나고 서로 돌아가며 다른 집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고 또 음식을 나눠 먹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른 아침 짜장면 집에 가서는 아저씨가 밀가루 반죽을 기계에 넣고 면 뽑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화장품 가게(수입물건도 판매)에 가면 아주머니가 튼 손에 크림을 발라주고 코코아나 탈지분유를 따뜻한 물에 타주었습니다. 자전거포 아저씨는 가끔 저를 태우고 이곳저곳을 돌며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의 정경(情景)은 60년대 말부터 골목길, 그중에서도 골목길 아이들의 모습(가난하지만 이미 천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담았던 사진작가 김기찬(1938~2005)의 작품들과도 흡사합니다.
이러한 기억들 역시 생애 마지막 순간에 보고 싶은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살시도자 중에는 자신의 뇌리에 행복하게 각인된 사진, 사랑스런 영상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쪽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시도자들은 어린 아이가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사랑과 인정, 따뜻한 돌봄을 받고 제대로 클 수 있어야 근원적인 자살 예방이 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또 어린 생명이 잘 성장하려면, 직접적인 돌봄 제공자인 젊은 부모를 국가와 사회,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그 아이가 커서 생을 마치는 날까지 어떤 역경이 있어도 보호요인이 될 수 있는 긍정적인 ASMR, 머릿속에서 떠올리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영상들을 많이 남겨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