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올해도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이어가며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하고, 창조질서를 회복하려 노력했다. 아시아 교회·이웃 종교와도 힘을 모아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또 가장 어렵고 소외된 이들 곁에 서서 연대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역할을 이어갔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과 탈핵 운동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사고로부터 12년,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일본 정부가 8월 24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한 데 따른 절차였다.
한국 교회는 IAEA 최종 보고서 발표 이전부터 줄기차게 일본 정부에 오염수 방류 철회를 강력히 촉구해왔다. 6월 26일 방류 반대를 공식 천명하는 첫 성명을 발표해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위협이며, 창조 세상의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해 상에 투기하지 말고 지상 저장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적극 모색하라”고 요구했다.
한국 교회는 또 개신교뿐 아니라 불교·원불교 등 이웃 종교와 연대해 한국 정부에도 오염수 방류 중단을 위한 노력을 주문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예정대로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했다. 한국·일본·필리핀 등 아시아 교회는 일제히 성명을 내 규탄하는 동시에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한국 교회는 또 10월 ‘핵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일본 그리스도인들과 제9회 한일탈핵평화순례에 나섰다. 일본 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인 후쿠이현과 핵사고 현장 후쿠시마현 등을 돌며 한목소리로 탈핵을 호소했다. 그 배경에는 “탄소 중립을 위한 에너지 녹색 전환 정책”이라고 주장하며 핵발전 강화를 추진하는 양국 정부의 쌍둥이 행보가 있었다. 한일 교회는 각국 정권의 핵발전 전략의 실상을 살피고, 대책과 연대 방안을 모색했다.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한 행보
올여름,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화제였다. 가뜩이나 날씨도 더운데 준비 부족과 운영 미숙으로 파행을 반복한 탓이었다. 잼버리가 막을 내린 후에도 새만금은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사업 적정성 논란과 환경파괴 우려가 큰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이 본격화한 까닭이다. 공항 부지는 간척사업으로 매립되지 않은 새만금 마지막 갯벌인 수라갯벌이다. 갯벌은 기후 위기의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양한 생물 종의 서식지 역할을 한다. 이에 한국 교회는 11월 6일 부안군을 찾아 새만금 복원과 수라갯벌 보호를 기원하는 미사를 거행했다.
새만금 외에도 제주2공항·설악산 케이블카 등 개발 사업으로 인한 환경파괴 논란이 잇따라 불거졌다.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는 교회는 자연환경과 주민들에 미칠 악영향을 지적하며 사업 백지화를 촉구했다.
강원 삼척시도 국내 최대 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맹방해변 등 자연이 심각히 훼손되고 있다. 한국 주교단은 5월 16일 삼척을 찾아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로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받을 처지에 놓인 시민들의 고충을 경청했다. 그러면서 지구와 생태적 약자들의 부르짖음에 더욱 적극 응답할 것을 거듭 다짐했다. 교회는 또 화석 연료 기반 시설 확대를 멈추는 신규석탄발전 중단법(탈석탄법) 제정을 요청하기도 했다.
아픈 이웃 곁을 지킨 따뜻한 교회
또 젊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8월 11일 부산 연제구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일용직으로 일하던 강보경씨다. 그는 6층 높이에서 거실 창문 교체 작업 중 추락하고 말았다. 향년 29세. 한국 교회는 서울 종로구 DL이앤씨 본사 앞에서 유가족과 함께 강씨를 추모하는 미사를 거행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일하고, 보금자리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세상이 서둘러 오길 기도했다. 교회는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하며 분신해 숨진 민주노총 건설노조 양회동씨 발인에도 함께했다.
지난해 10월 29일 발생한 비극인 ‘이태원 참사’는 1주기를 맞았다. 한국 교회는 추모 미사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이들과 함께 희생자를 위해 기도했다. 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또 한국 교회는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에게도 사랑을 손길을 내밀었다. 다시 일어설 힘과 희망을 선사하고자 애도 서한과 함께 신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성금을 전달했다.
호스피스 확충ㆍ태아 보호 목소리 높여
교회는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조력존엄사법’에 대해서도 규탄을 이어갔다. 다양한 유관기관에서 과연 죽을 권리라는 것이 인정될 수 있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자리를 다수 마련한 것이다. 교회는 생애 말기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열악한 의료 인프라를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게 하는 것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반면, 의료기관이 신생아의 출생신고를 의무적으로 하게 하는 ‘출생통보제’와 산모의 익명을 보장해 병원 밖 출산을 예방하는 ‘보호출산제’가 통과된 것에 대해서는 크게 환영했다. 나아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명을 지킨 미성년 미혼부모·임신부라면 누구나 성인이 될 때까지 월 50만 원씩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우리원더패밀리’ 사업을 금융기관, 정부와 협력해 시행함으로써 가장 작은 생명, 태아를 보호하는 데 더욱 앞장섰다.
사형폐지 노력과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대한 우려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교회는 올해도 사형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이어나갔다. 3월 13일 국회에 다섯 번째 사형폐지 입법 청원을 제출했다. 한국 주교단을 비롯한 사제·수도자·평신도 7만 5843명이 청원에 동참했다. 또 4월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마당에서 사형제도폐지기원 생명이야기 콘서트를 열었다.
그런데 돌연 정부가 8월 사형 집행 시설 점검에 들어갔다. 사형수 일부를 사형장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하기까지 했다. 26년 만에 사형 집행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흉악범에게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절대적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한국 교회는 “사형제도의 존치를 전제로 하는 이 제도의 도입이 염려스럽다”는 목소리를 냈다. 11월 14일 연례 세미나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권력분립 원칙과 가석방 제도의 취지와도 충돌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가톨릭 사회복지 구심점이자 대정부 소통창구 설립
한국 가톨릭 사회복지계 염원이 12월 1일 마침내 이뤄졌다. 전국 사회복지 관련 법인·시설 구심점이자 정부와의 공식 소통창구가 될 ‘사단법인 한국카리타스협회’가 출범한 것이다. 한국카리타스협회는 장차 전국 103개 가톨릭 사회복지 관련 법인과 1297개 산하 시설·종사자 2만여 명을 대표해 정부와 대화하고, 이들이 ‘카리타스’ 정신과 가치에 맞는 사업을 펼치도록 도울 방침이다. 가톨릭 사회복지의 선한 영향력도 회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