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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특집] ‘빛의 소금’으로 새 성당 봉헌 - 광주 압해도본당 신장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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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와 신안 압해도를 잇는 압해대교를 건너자 야트막한 언덕 위로 아담한 적벽돌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50년은 족히 넘었을 성당 입구 벚나무에는 12월 2일 열렸던 새 성당 봉헌식 축하 현수막이 아직 걸려 있다. 광주대교구 압해도본당(주임 윤창신 루치아노 신부) 신장공소 새 성당에서 주일 오전 9시 미사가 한창이다. 3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 부르는 성체성가 소리가 마당까지 들려온다.

‘빛의 소금’의 시작

신장공소 신자들에게 올해 성탄은 어느 때보다 뜻깊다. 무려 17년 만에, 그것도 공소 신자들의 힘만으로 11억 원의 건축기금을 모아 봉헌한 새 성당에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공소 공동체가 새 성당을 짓기로 마음을 모은 것은 지난 2006년. 당시 30년 된 낡은 성당은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다. 곳곳에 물이 새 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할 정도였다. 마침 신안군 새 청사가 가까이에 들어선다는 소식도 새 성당 건립 필요성에 힘을 보탰다.

희망과 기대만으론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여느 도서(島嶼) 공소가 그렇듯, 한때 500~600명에 달했던 교적 신자는 100명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60~70대 노인이 대부분이었다. 건축기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할 때 당시 압해도본당 주임 정대영(모세) 신부가 소금 판매를 제안했다. 신안의 특산품 천일염을 전국 신자들과 나누고 판매 수익으로 신축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빛의 소금’의 시작이다.


소금 한 포대에 벽돌 한 장 쌓는 마음, 그렇게 17년

빛의 소금 생산과 판매에는 공소 신자 모두가 나섰다.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였다. 염전에 나가 소금을 나르고 성당 옆에 마련한 창고에서 간수를 뺀 소금을 포대에 담았다. 당시 사목회장이었던 김명철(라파엘·71)씨는 “한여름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진 소금을 나르는데 목에 단내가 아니라 쓴 내가 날 정도였다”면서 “물 한 잔 마실 시간조차 없이 포대를 옮겼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작업한 소금을 실은 트럭을 다시 배에 실어 육지로 나갔다. 당시는 압해대교가 놓이기 전이라 육지에 가려면 섬과 목포 북항을 잇는 철부선을 타야 했다. 그렇게 육지로 가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전국 곳곳 성당을 찾았다. 택배도 없을 때라 일일이 배달했다. 그렇게 빛의 소금 한 포대가 팔릴 때마다 새 성당을 위한 벽돌 한 장 한 장이 쌓여갔다. 소금 판매로는 부족하다며 부녀회는 젓갈도 판매해 건축기금에 보탰다.


“첫 삽 뜨는 거 보고 눈 감았으면”

“조금 늦어지더라도 우리 스스로 힘을 모아 하느님의 집을 봉헌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성당 건축기금 마련에 17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황춘규 공소회장(테오도로·74)은 “타 본당 도움 전혀 없이 오로지 신자들의 힘만으로 성당을 지은 공소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부심도 있다”고 전했다.

한편으로 새 성당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신자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복철(프란치스코 하비에르·69)씨는 “생전에 첫 삽 뜨는 것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장례미사는 꼭 새 성당에서 했으면 좋겠다던 자매님도 착공 전 결국 선종하셨고, 염전을 운영하며 소금을 공급해주던 형제님도 새 성당을 미처 보지 못하셨다”며 “그분들의 땀이 스민 성당인 만큼 우리가 이제 그 뜻을 이어 공동체를 잘 가꿔 나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압해도 염전 소금처럼 ‘맛깔나는’ 공동체로

새 성당은 2022년 11월 첫 삽을 떠 1년여 만에 완공됐다. 전체 건축비 중 10억 원은 소금과 젓갈 판매 수익, 나머지 1억 원은 1년간 공동체가 모금했다. 옛 성당은 교육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성모동산도 새롭게 꾸몄다. 미사 참례자 50여 명, 주일 헌금 4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공동체임을 감안하면 새 성당 봉헌은 기적에 가깝다.

“1949년 당시 산정동본당에서 사목하시며 신장공소 설립에 헌신하신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과 토마스 쿠삭 신부님께서 안타깝게도 6·25전쟁 때 순교하셨어요. 그분들 덕분에 우리 공동체가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음을 기억하며 새 성당을 6·25전쟁 중 순교한 목자들을 현양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미사를 마친 신자들이 하나둘 성당마당으로 모였다. 볕에 그을린 얼굴, 깊숙이 패인 주름,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대부분이지만 서로서로 힘줘 손 맞잡고, 부축하고, 기대며 한자리에 모였다. 빛의 소금으로 지은 성당에서 성탄을 맞이하는 공동체는 이제 지역의 빛과 소금이 될, 압해도 염전의 소금처럼 ‘맛깔나는’ 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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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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