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본지는 연중기획으로 매주 한국교회 성미술 작가와 작품세계, 신자 예술가로서의 소명을 듣는 ‘성미술 작가의 일기’를 진행합니다. 그 첫 순서로 한국 교회미술의 토착화에 앞장선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요셉·91)의 일기를 전합니다.
미술에 눈뜨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격인 대전사범학교에 들어갔는데, 2학년 때 한 미술 선생님이 왔어요. 이동훈 선생님이라고. 봄에 바깥에 나가서 풍경을 그리는 수업을 했는데, 내가 미루나무 두 그루를 그렸어요. 근데, 다음 날 학교에 가니까 내가 그린 그림이 교실 뒤에 붙어 있지 뭐예요. 그러더니 그 선생님이 미술반을 만들테니 나보고 미술반에 들어오래요. 그렇게 5년 동안 미술반에서 활동을 했어요.
사범학교를 졸업하면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선생을 해야 했어요. 그런데, 미술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초등학교에서 2년 조금 안 되게 있다가 미술대학에 진학했죠. 그곳에서 김종영 선생님과 장욱진 선생님을 만났고요. 그때가 1954년이었어요. 이후로 70년 동안 미술을 한 거지요.
가톨릭 신앙으로
처음엔 불교에 관심이 있었어요. 불교 미술에 심취했기도 했고요. 불교를 배우기 위해 서울대병원 근처 대각사에서 하루에 3시간씩 열리는 불경 강의를 매일 나가기 시작했어요. 반야심경부터 금강경까지 이어지는 강의였는데, 그해 성탄절이 돼서도 강의는 끝나지 않았어요.
하지만 방학이니 시골집에 가야했고, 대전에서 불교당을 찾았어요. 그런데, 대전에는 불교당이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같이 하숙을 하던 친구도 대전이 집이어서 그 친구를 만나 종교에 관한 고민을 나눴어요. 그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천주교였어요. 대전 대흥동성당에 갔는데, 신부님이 교리도 배울 것 없이 그냥 세례를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나를 성당으로 데리고 간 그 친구가 바로 유리화로 유명한 고(故) 이남규(루카)였어요.
성미술의 세계로
1973년 세례를 주었던 오기선(요셉) 신부님을 만나러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에 갔죠. 그곳에서 당시 성지 주임이던 박희봉(이시도로) 신부님을 만났어요. 박 신부님이 나를 보더니 “최 선생 잘 만났어요”라며 성지 김대건 성인상을 놓아두었던 곳에 뭘 좀 만들어 놓으라는 거예요. 그동안 성상 미술은 한 적이 없어서 “뭘 만들면 될까요?” 물었더니 “최 선생 마음대로 해”라고 하는 거예요.
마음대로 하라니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절두산순교성지 ‘순교자상’이 만들어졌어요. 딱 50년 전이죠. 그러고나서 서울 묵동성당 십자가상, 잠실성당 십자가상, 한강성당 십자가상과 십자가의길 등 교회 안에서 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교회 미술의 토착화를 위해
미술대학을 졸업하고서 조각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시절에 관음상이 딱 떠올랐어요. ‘저 방향이 내가 갈 길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종교적인 것도 있지만 한국의 미술인거죠. 교회 안에서 성 조각품을 만들 때에도 관음상을 한번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마침 길상사 법정 스님이 작품을 의뢰해서 ‘관세음보살상’을 만들게 됐어요.
1990년대 초반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에 선임이 됐는데, 당시에는 1년에 성당이 100개씩 지어지던 때였어요. 당시 새로 지은 성당에 유럽의 복제품 성상과 십자가의길, 십자가상을 들여놨어요. 이것을 우리 가톨릭 작가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어요. 그래서 교회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고 연례 세미나를 열면서 교회와 미술품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려고 노력했어요. 지금은 지어지는 성당의 성물 80 정도를 우리 작가들이 만든다고 해요. 당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과 장익(십자가의 요한) 주교님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즐거운 예술
1980년대 후반 명동대성당 십자가의길을 만들 때였어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표현하는 십자가의길을 만드는데, 예수님께서는 고통 속에 있는데 나는 즐거운 거예요. 고통을 상상하며 작업을 하는데 나는 즐거운 이상한 상황이었던 거죠. 나중에 든 생각은 예술이 즐거운 거였죠.
지금도 즐거워요. 매일 새벽 4시쯤 일어나서 작업실에 내려가요. 어제했던 것이 궁금해서 보다가 또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거죠. 즐거우니 집중도 잘 되죠. 예전에 있던 잡념도 이제 거의 없어요. 즐거운 정도가 아니라 기쁨과 같이 있는 거예요.
내 대표작에 대해서 여러 말들이 있는데, 나는 내 대표작이 천주교 성당에서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야 한평생 성미술을 해 온 보람이 있지 않겠어요?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예요. 가톨릭 미술가의 대표작은 성당에서 나오길 바라요. 예술가들이 다양한 작품을 만들지만 성당에 걸어놓은 작품이 대표작이 되기를요. 그래야 한국 교회미술이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 될 수 있어요.
■ 최종태 작가는…
1932년 대전 출생, 대전사범학교와 서울대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추상미술이 주를 이루던 시기에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조형 세계를 천착해 온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이다. 한국적 가치와 전통을 계승해 한국교회 조각의 현대화를 이뤄낸 선구자로, 1970년부터 30여 년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며 후학 양성에 힘을 보탰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장을 역임했고, 문화훈장 은관, 가톨릭미술상 특별상, 대한민국예술원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수상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