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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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르포] 그림으로 희망 그리는 ‘꿈나무마을’ 파란꿈터 아이들

이달 19일 강원도서 열리는 동계 청소년 올림픽서 작품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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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꿈터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

1월 19일 새해 벽두부터 세계 80여 개국에서 특별한 손님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열리는 제4회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단 1900명과 관계자들이다.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동계 청소년 올림픽인 이 대회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사용했던 시설을 활용해 개최된다. 그중 한 곳인 강릉아트센터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청소년 선수들에게 뜻깊은 볼거리를 선사한다. 7m 너비 벽면 한쪽을 채운, 아동복지시설 어린이들이 고사리손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이 꼬마 화가들의 정체는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파란꿈터(여학생 생활관) 어린이들. 예수회가 설립한 기쁨나눔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아동 보호 및 양육 시설이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성인으로 보호종료 및 자립준비 시기 전까지 꿈과 희망을 키우며 살아간다. 새해를 맞아 은평구 꿈나무마을에서 희망과 기쁨을 안고 전시를 준비하는 어린이 화가들을 만났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파란꿈터 어린이들이 1월 19일 열리는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서 선보일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장난치고 떠들다가도 붓 드니 진지
함박눈이 펑펑 내린 12월 중순 어느 주말 오후, 작품 활동을 위해 꿈나무마을 책놀이방에 파란꿈터 여학생들이 모였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열 명이 조금 넘는 숫자다. 아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서로 장난치고 떠들기 바빴다. 재능 기부로 반 년간 꿈나무마을에서 미술을 가르쳐온 교사 김지연(48)씨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눈치였다. 상냥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아이들을 능숙하게 다루며 작업을 시작했다. 왁자지껄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고사리손으로 붓을 들고 그림 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빈 캔버스에는 금세 스케이트보드와 스키를 타는 선수들의 생생한 모습이 피어났다. 어린이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재밌는 작품들도 눈에 들어왔다. 한 우주인이 별이 무수히 많은 우주공간에서 축구공을 차고 있는 그림도 보였다. “동계올림픽에는 축구가 없다”는 옆 친구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붓을 놀리는 아이의 모습에서 ‘우직한 장인’ 같은 느낌마저 풍겼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 대부분은 두 차례나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고 판매까지 한 ‘베테랑’이었다. 김지연씨가 대표인 예비사회적기업 ‘아트지움’이 지난여름과 겨울 두 차례 어린이들 작품을 모아 ‘아트로601’ 프로젝트를 한 덕분이다.
어엿하게 전시도 경험한 어린 화가들은 작품 뒷면에 동계올림픽 전시에 참여하는 소감까지 적었다. 현지(10)양은 “올림픽에 전시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많이 떨린다. 많은 사람이 봐주면 좋겠다”며 “저희를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매우 고맙다”고 썼다.
 
'서울특별시 꿈나무마을' 파란꿈터 어린이들이 1월 19일 열리는 2024 강원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서 선보일 그림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웹툰 작가·화가 등 꿈꾸며 전시 준비
작품 활동에 열중한 꼬마 화가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꿈이 화가에요?” 기자의 다소 식상한 물음에 아이들은 다행히 귀찮은 티를 내기는커녕 웃으며 답해줬다.
3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은 매일 15장을 그린다는 수연(9)양은 뜻밖에 “웹툰 작가가 꿈”이라고 밝혔다. 그것도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데뷔해 “‘마음의 소리’를 그린 조석 작가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원래는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그림 그리는 게 좋아 마음이 바뀌었다”면서.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고흐의 ‘해바라기’다. 보고 있으면 좋으면서도, 생전에 그림이 한 장밖에 안 팔린 고흐의 삶이 떠올라 슬프다고 했다. “좋은 그림이란 무엇인지”하고 묻자 수연양은 이렇게 답했다. “완벽한 작품보다는 노력해서 온 정성을 쏟은 작품이 좋은 거예요.” 수연양이 이어서 밝힌 새해 소원은 바로 키가 크는 것. “구름을 가까이 보고 싶어서”라는 게 순수한 어린이다운 그의 답이었다. “먹으면 솜사탕처럼 맛있을 것 같아요.”
혜진(9)양은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화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을 그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삶’을 선사하고 싶다는 뜻이다. 혜진양이 제일 좋아하는 멸종위기종은 겨울마다 한국에 찾아오는 학(두루미)이다. 정말 많이 좋아하는지, 말할 때마다 양팔로 날갯짓을 하며 학 흉내를 냈다. 그런 혜진양의 새해 꿈은 간단하면서도 이루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에요.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꿈이에요.”
 
예비사회적기업 '아트지움' 김지연 대표


“새해 소원, 아이들 데리고 파리 전시회 여는 것”

개신교 신자인 김지연(48)씨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탈렌트를 좋은 곳에 쓰고 싶어 미대에 다니던 20대 때부터 재능 기부 봉사를 시작했다. 

특히 보육원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는 꿈을 품고, 미술교육 석사 학위와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도 땄다. 그러나 결혼 후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이룰 기회가 없었다. 마침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국에 잠시 돌아오면서 여유가 생겼다. 지난해 초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봉사하고 싶어 기쁨나눔재단 ‘밥집알로’를 찾았다. 그곳에서 배식봉사를 하면서 당시 파란꿈터 부원장 박종인(예수회) 신부를 만났다. 그는 박 신부의 제안으로 꿈나무마을 아이들에게 반년 동안 미술을 가르치게 됐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집중하는 걸 어려워해서 30분 동안 동그라미 하나 그리는 것도 힘들었죠. 기껏 그려놓고 ‘마음에 안 든다’, ‘망쳤다’며 화를 내거나 심지어 찢어버리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타일렀죠. ‘그림에 틀린 건 없어. 잘 그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점 하나를 찍더라도 이걸 내가 왜 표현했는지 설명할 수 있으면 돼. 그게 바로 좋은 그림이란다.’ 그러자 아이들은 실수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태도를 그림을 통해 배운 거죠.”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아이들 그림을 전시하는 것도 김지연씨가 백방으로 노력해 이룬 결실이었다. 그는 “어릴 때 연극을 했는데, 큰 무대에 서서 관중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마다 몰입감과 성취감이 컸고, 자긍심과 자존감을 얻었다”며 “아이들에게도 그 감동과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꿈의 크기가 작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전시된다는 경험이 아이들에게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제 새해 소원은 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파리에 가서 전시를 여는 거예요. 아이들이 못 가면 작품만이라도 파리에서 선보이고 싶어요. 그럼 아이들에게 정말 큰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다만 그 비용을 마련하는 게 과제죠.”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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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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