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能登) 반도 지역에서 규모 7.6,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 발생 일주일이 지난 1월 8일 집계된 희생자는 100명을 넘어섰고, 연락 두절자는 약 200명에 달했다. 일본에서 지진 사망자 수가 100명이 넘은 것은 2016년 구마모토 지진 이후 처음이다. 이시카와현 내에서만 1000채가 넘는 집이 붕괴됐고 평온했던 도시는 아비규환이 됐다. 구조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떠올리며 지진 이후 벌어질 문제들을 우려했다. 이시카와현 시가정에 시가 핵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도 6의 강한 흔들림이 감지된 니가타현에도 가시와자키카리와 핵발전소가 있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핵발전소
1월 1일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시카와현 북쪽 노토 반도를 중심으로 이날 오후 4시 6분~32분 진도 4.5~7.6에 이르는 지진이 여섯 차례나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오후 4시 10분에 발생한 규모 7.6의 지진은 이시카와현에서 진도 7, 니가타현에서도 진도 6의 강한 흔들림을 일으켰다. 도쿄를 포함해 혼슈 대부분 지역에서 진도 3의 큰 흔들림이 상당 시간 느껴지기도 했다. 노토 반도는 이시카와현 해안에서 동해를 향해 북쪽으로 뻗어있다. 일본 기상청은 노토 반도 지진으로 이시카와현뿐만 아니라 야마가타·니가타·도야마·후쿠이·효고현 등 동해를 접한 일본 북부 연안에 3~5m의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1월 6일까지 집계된 이시카와현 지역별 사망자가 와지마시에서 69명, 스즈시 23명, 아나미즈마치 8명, 나나오시 5명이라고 보도했다. 가장 피해가 큰 와지마시는 시가시와 인접, 시가 핵발전소와 70㎞가량 떨어져 있다.
이번 지진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때의 9.0보다는 작지만 1995년 1월 17일의 한신대지진(7.3)보다는 큰 규모다. 지진 진앙지 인근에 수많은 핵발전소가 운영중이거나 가동이 중지됐더라도 다량의 사용후핵연료를 보유하고 있기에 제2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쿄전력은 1월 1일 지진으로 인해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카리와 핵발전소 2·3·4·6·7호기 사용후핵연료 수조에서 물이 넘쳐 외부로 유출됐다고 밝혔다. 한 호기에서 최소 0.46L에서 최대 600L가 유출됐으나 이로 인해 누출된 방사선량은 공개하지 않았다.
지진 진앙지에서 가장 가까운 핵발전소인 시가 핵발전소의 경우, 사용후핵연료뿐 아니라 변압기에서 기름이 누출됐다.
호쿠리쿠 전력에 따르면 시가 핵발전소는 사용후핵연료 수조 물이 넘쳐 1호기에서 95L, 2호기에서 326L가 유출됐다. 방사능량은 각각 1만7100㏃, 4600㏃로 추정된다. 또한 배관이 파손돼 변압기에서 각각 3600L, 3500L의 기름이 누출됐다.
두 핵발전소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가동이 중지된 핵발전소에 남아있는 사용후핵연료가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이번 사고로 드러나면서 완전히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이시카와현과 인접한 남쪽 지역에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핵발전소가 몰려있다. 이번 지진으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된 후쿠이현에는 쓰루가·몬주·오오이·다카하마 핵발전소가 줄지어 가동 중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인재, 같은 비극 반복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일본 당국은 “두 핵발전소에서 손상이나 누출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재 안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건강상 문제가 없으니 후쿠시마산 채소와 과일을 먹어서 응원하자”던 13년 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일본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을 떠올리게 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오시카 반도 동쪽 70㎞에서 진도 7,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알려진 이 지진으로 15m가 넘는 해일이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를 덮쳤고, 발전소 내 모든 전기 시설이 손상됐다. 냉각수 펌프가 가동하지 않자 원자로 1호기의 모든 냉각수가 증발, 노심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해 방호벽이 녹아내렸다. 무너진 벽을 뚫고 핵연료가 공기 중에 확산됐다.
급하게 바닷물을 투입하려 했으나 여과수가 아닌 바닷물로 인해 원자로가 망가질 것을 우려해 도쿄전력 직원은 이를 말렸다. 고온상황에서 연료봉과 증기가 반응해 수소가 발생했고, 이후 수소폭발로 방사성물질을 포함한 기체가 대량으로 외부로 누출됐다. 당시 사고로 제1핵발전소 주변 20㎞, 제2핵발전소 주변 10㎞에 살던 사람들이 긴급 대피했다.
사고 이후 핵발전소 운영 당사자의 안일한 대응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더욱 키웠다. 도쿄전력은 사고 이후 플루토늄 양을 계측하지 않다가 은폐의혹을 받자 뒤늦게 계측을 실시했고, 경영난을 이유로 2년간 차수벽 설치를 미뤄 오염수 유출이 가중됐다.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도쿄전력 전직 경영진은 2019년 9월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는 안전한가?
일본 지진으로 인해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서는 85㎝ 높이의 지진해일이 관측됐다. 동해안에 지진해일이 밀려온 것은 1993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핵발전소 76가 몰려 있는 동해안의 변화는 우리나라도 지진뿐 아니라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해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지난 11월과 12월 두 달간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은 6건. 11월 30일 경북 경주에서는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해 시민들이 큰 공포를 경험했다. 2016년 경주 지진 이후 정부가 동남권 단층을 조사한 결과 월성핵발전소 주변에서 큰 규모의 활성단층 4개를 발견했다. 전문가들은 4개 단층이 규모 6.5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핵발전소의 내진설계도 문제로 떠올랐다. 더불어민주당 김성환·민형배·양이원영 의원은 11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월성핵발전소 격납건물에 매입된 수천 개의 CIP(Cast-in-Placed) 앵커볼트가 내진성능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성환 의원은 “월성핵발전소 3호기 격납건물에 CIP 앵커볼트를 사용한 353개소 고정 부위 중 21개소만 내진설계를 적용했고, 332개소가 내진설계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캐나다 규제기관에 ‘비(非) 내진’ 앵커 사용이 허용됨을 확인했으며, 월성 가동 핵발전소의 비 내진 앵커에 대해 내진성능 평가를 수행해 설계지진 요건에 만족함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몇 문장이 담긴 문서로 안전을 확인했지만 실제 강도 높은 지진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면 이 문서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않는다. 일본보다 낮은 기준으로 내진설계된 한국 핵발전소들에 대한 총제적인 안전 점검이 시급한 이유다.
환경운동연합은 1월 3일 성명을 통해 “후쿠시마의 비극이 되풀이 되어선 안 된다”며 “정부는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원전 부흥 정책을 포기하라”고 주장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