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 저출산 영향으로 유치원 원아 수가 급감하면서 문을 닫는 유치원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확충하기는커녕 유아 인구 감소의 영향으로 운영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들은 ‘인성교육의 전당’으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추첨제로 입학해야 했다. 그러나 성당 유치원 입학이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이 지나갔다. 교구와 수도회가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몇 년째 ‘정원 미달 사태’를 겪고 있다. 이제는 시설 확충보다 폐원을 논의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유아 인구 감소는 현실이 됐다. 유아 복음화를 통한 가정 성화에 큰 기여를 해온 가톨릭 교회의 유아교육기관 불이 꺼지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폐원하는 이유
- 인구 절벽, 출생 감소
- 경쟁력 저하, 시설 노후화
- 유아교육 전공 수도자 부족
- 본당 사목자의 인식 부재
어떻게 할 것인가
- 본당 사목자 인식 개선
- 유아교육 수도자 양성
- 다문화 아동 포용하려는 노력
- 지역적 특성에 맞는 기관 육성
최근 6년간 133곳 어린이집ㆍ유치원 폐원
한국천주교여자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위원회는 2022년 8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앞두고, 한국 주교단에 ‘한국 가톨릭 유아교육기관 현황’을 보고했다.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의 급격한 감소 현상을 보고하는 동시에,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은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미래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유아교육분과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현재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은 229곳(어린이집 68곳, 유치원 161곳)이다. 2017년에는 345곳으로 정점을 찍었지만 2018년에는 303곳, 2019년에는 281곳, 2021년에는 252곳, 2022년에는 229곳으로 전국적으로 폐원하는 기관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2023년 3월 현재는 212곳으로 집계하고 있다. 최근 6년간 133곳의 교회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문을 닫았다.
인구 밀집 지역인 서울대교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2개의 본당 부설 유치원이 폐원을 논의했다. 원아 감소로 운영이 어려워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한 어린이집도 네 군데가 있다. 폐원 사유를 들여다보면 원아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다른 사유로는 수도자 인력 부족, 본당 재건축 등이 꼽힌다. 서울대교구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설립된 유치원은 서초동본당 부설 석문유치원으로, 1988년에 문을 열었다. 이후 신설된 곳은 없다. 서울 반포본당은 유치원이 있던 자리를 카페로 만들고, 영등포구 지역에서 인기가 많았던 돈보스꼬유치원은 먼 거리에 사는 유아들을 받기 위해 차량 운행을 시작할 정도로 원아가 줄었다.
서울대교구 유아부 담당 박종수(청소년국 부국장) 신부는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유치원은 그나마 유지가 되고 있다”면서도 “예전에는 줄을 서서 들어가야 했던 모든 성당 유치원들이 정원 채우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교구의 한 본당 부설 유치원도 원아 감소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원장 수녀는 “50년 전통의 몬테소리 교육으로 지역에서는 유명해 3년 전까지만 해도 3: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야 했다”면서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원아가 20~30명씩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37명의 원아를 받아야 하는데 6명이 들어왔다”면서 “2~3년 내에 인천교구에 있는 4개 본당 부설 유치원은 자연스럽게 폐원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2022년 3월 당시 전국의 가톨릭 유아교육기관 229곳 가운데 교구 소속은 138곳(60.2), 수도회 소속 59곳(25.8), 사회복지법인 및 민간 소속 16곳(7), 국공립 13곳(5.7), 학교법인 소속 3곳(1.3)이다.
가톨릭 유치원은 왜 경쟁력을 잃었나
한국수도회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위원회는 2013년 장상연합회 소속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부모 101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자녀가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에 다니는 것이 인성 및 종교 생활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가톨릭 신자의 90 이상이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을 주변 지인의 자녀에게 추천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89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로,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의 인성교육은 교회 안팎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천주교여자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위원회가 작성한 ‘한국 가톨릭 유아교육기관 현안에 관한 보고’에 따르면, 폐원이 급속도로 증가한 현상에 대한 대표적인 원인인 유아 인구 감소와 함께 △가톨릭 유치원의 경쟁력 저하(시설 노후화) △유아교육 전공 수도자 부족 △본당 사목자의 유아교육에 대한 의식 부재를 지적한다.
가톨릭 유치원들이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시설은 낡았다. 현재 87 이상의 유치원들이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다. 40 이상이 50년 이상 된 유치원이다. 그동안 유치원들은 시설을 보수하며 운영을 이어왔지만, 공사 비용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또 유아교육 전공 수도자들이 고령화됨에 따라 이들의 뒤를 이을 수도자들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6개 기관에 수도자를 파견하고 있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는 평신도에게 원장 자리를 인수인계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한 가톨릭 유아교육 전문가는 본당 유치원들이 문을 닫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로 주임 신부들의 유아 신앙교육에 대한 관심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성당 유치원은 성당 안에 있고, 성당과 연결된 공간에 있기 때문에 주임 신부가 ‘우리 유치원’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문을 닫는 건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본당 사제가 아이들이 유치원에 올 때 인사만 하러 나와도 그 유치원은 엄마들 사이에서 빠르게 소문이 난다”고 덧붙였다.
교회 복음화에 기여하는 ‘가톨릭 유아교육’
“유아교육은 교회의 미래 세대에 대한 복음화, 나아가 부모를 비롯한 기성세대의 복음화에 쉽고 자연스럽게 기여한다.”
한국천주교여자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위원회는 보고서에 이처럼 가톨릭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본당 유치원 졸업생들은 초등부 주일학교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본당 청소년 사목에 활력을 준다”고도 밝히고 있다.
비혼과 저출산, 세속화와 자본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에 가톨릭 유아 신앙교육은 세상 복음화와 한국 가톨릭 교회의 미래를 생각하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사도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30년 넘게 유아사도직을 해온 서울 꿀벌유치원 원장 장종수(마리나,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는 “인구절벽 시대에 출산을 격려하고 칭찬하는 사목이 더 필요한 상황이 됐다”면서 “본당 사제의 역할이 여전히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 수녀는 “유치원에도 다문화 아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만큼 이들을 편견 없이 포용하는 교회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상연합회 유아교육분과위원회 회장 유연숙(세시리아, 대구 성요한바오로2세 어린이집 원장) 수녀는 “아이들이 줄어든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교구마다 상징적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가톨릭 유아교육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