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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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3) 강정 이야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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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에 제주교구장으로 부임하였다. 제주에 오기 전 나는 서울 명동에서 2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살았다. 그 시대의 명동이라 하면 젊은이들에게는 옛날부터 볼일이 없어도 괜히 한 번 바람 쐬러 나가 차를 마시거나 친구와 술로 밤을 지새우고 싶은 낭만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와 90년대 격동의 시대를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 나에게 명동은 매연과 취객들이 토해낸 오물, 식당마다 밀어낸 쓰레기 더미, 시위대가 던지는 화염병, 경찰이 쏘아대는 최루탄 가스가 범벅이 되어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동네였다.

그런 곳에서 사반세기를 보낸 이력을 감안해 주셨는지 하느님께서는 나를 서울에서 제일 먼 남쪽 섬나라 제주도로 보내셨다. 제주에 오니 숙소 창에 보이는 광경은 꿈만 같았다. 북쪽을 보면 파란 수평선이 그어져 있고 남쪽을 보면 한라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소임지에 나를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복을 누릴만한 공덕을 쌓은 기억이 없는데 이런 특전을 누리게 하시니 너무 과분하여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얼마간 살다 보니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답기만 한 제주도이지만 그 속살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사람의 피와 고통과 죽음으로 멍들고 썩고 골병든 육신임을 알고는 이런 곳에서 내가 어떻게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나라 현대사를 일별할 때 어느 지역이든 해방정국에서 좌우의 이념 갈등으로 혼란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나, 제주는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지역이다. 제주인들은 1947년부터 1954년까지 ‘4·3’이라는 참혹한 사태로 인하여 도민의 10가 넘는 3만여 명이 희생되는 비극을 겪고 그 유가족들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강요당한 침묵과 무너진 억장을 끌어안고 악몽과 트라우마 속에 신음하며 살아왔다. 4·3 사태 기간 중 제주에서 벌어진 참극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가 벌인 유다인 학살보다 규모와 인원으로 볼 때 훨씬 작기는 하여도 미군정과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벌인 폭력과 무자비함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경찰과 군대가 제주 중산간 지역 마을들을 차례로 포위, 초토화 작전을 감행하고 순박한 농부들을 좌익으로 몰아 노인에서 어린아이들까지 무차별 학살하였음을 알고 경악하였다. 제주교구 신자들과 사제들의 가정사를 들어보아도 대부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가운데 누군가는 반드시 4·3과 관련된 아픈 기억을 안고 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 국민 대다수는 이 땅에서 벌어진 참혹한 역사적 사실을 거의 모르고 살아왔다. 국가가 저지른 죄를 국가가 묵살하고 역사 기록과 서술에서 지워버리고 학교 교육에서도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 안에서 동포들에게 자행된 이런 참극을 우리 자신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제주도에 관광객으로 놀러만 다녔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하고 양심의 가책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2005년 1월 노무현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하였고 제주에 내리는 비행기에서 제주 착륙을 알리는 승무원의 인사가 매번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나는 국가수반이 제주도에 이런 별칭을 선포한 것은 과거 공권력이 저지른 폭력으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비극의 역사에 대한 간접적인 반성과 회오를 깔고 앞으로는 차별과 억압과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알아들으려 했다. 그러나 이는 나의 사사로운 개인적 소망으로 끝났다. 그 선언 이후 제주 땅에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단 한 줄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전망도 보이지 않았다. 제주도정이 내세운 유일한 전망은 평화를 브랜드로 내세워 국제회의 및 투자유치를 하고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추상적 상업적 구상뿐이었다.

그러다 2007년 5월 노무현 정부는 38선에서 제일 먼 남쪽 작은 강정포구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민주적이고 개혁적 정치를 하겠다는 노무현 정부가 왜 한반도 최남단 평화로운 제주의 작은 포구에 거액의 국가 예산을 투입하여 군사기지를 건설하려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4·3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고 진상도 밝혀지지 않고 치유도 되지 않은 피맺힌 제주의 땅 주인들의 반발과 의사를 무시하고 거대한 군사기지를 건설하여 군부대를 주둔시키겠다는 발상은 아직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제주인들의 마당에 또다시 피 묻은 군화발로 저벅저벅 행군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거의 역사를 망각하고 반성도 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정부로 인식하였다.

더구나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1월 제주를 방문한 기회에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고 삼가 명복을 빌기까지 한 사람이다. 육지 같으면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이 즉시 들고 일어나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고 저항의 연대를 꾸려나갔을 것 같은데 제주에서는 강정마을 주민들만 반대의 목소리를 올릴 뿐 제주 지역사회 전체의 반응은 너무 미약하고 소극적이었다. 필시 과거의 국가 공권력으로부터 당한 폭력과 재앙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여 국책사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데 무의식중에 큰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것이 아닐까? 그대로 가면 큰 저항 없이 해군기지 건설이 곧 시작될 것으로 보였다.

이런 상황을 보며 내 마음이 많이 산란해졌다. 국가가 세계평화의 섬이라 선포해 놓고 돌아서서는 평화와는 정반대의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는 모순을 수용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북한과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38선에선 제일 먼 남쪽 섬에 대규모 군항을 설치한다는 결정도 납득이 안 되고, 국가가 앞장서서 제노사이드에 준하는 민간인 집단학살을 저지른 땅에 주민들의 동의 절차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군사기지를 배치한다는 것도 참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폭거로 보였다.

내 가슴 한구석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때 교회마저 침묵하고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나중에 우리 후손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가톨릭교회는 도대체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무얼 하고 있었나 하며 되묻게 될 때가 올 것이다.’ 국가가 하겠다고 나섰으니, 새만금이나 평택 미군기지 같은 사례를 보아도 정부는 반드시 강행하고야 말 것임을 알았다. 그러나 교회마저 제주도민의 미래와 한반도의 평화에 치명적 악수를 두는 정권의 결정에 아무런 대응도 입장도 내세우지 않고 방관하고 있으면 교회는 후에 얼마나 큰 부끄러움을 맛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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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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