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부탁받아 가보면 주택가나 넓지 않은 골목을 낀 성당들이 있다. 세상 한복판에서 군중과 함께하는 본당 특성상 당연할 수밖에 없지만, 가끔 주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십수 년 전, 중고로 경차 ‘아토스’를 구매했다. 주차하는 어려움을 해소해 줄 뿐만 아니라, 골목길을 다니기에 그 편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굿나잇’하고 아침에 일어나 수도원 대문을 열면서 ‘아토스야, 간밤에 잘 잤느냐’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이른 아침에 수녀원 미사를 가는 날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대문 앞을 나서니 주변 주차 공간에 여유가 있었는데도 커다란 고급 승용차가 아토스를 막고 있었다. 의아해 차주에 급히 전화했더니 30분이 지나서야 택시를 타고 오는 게 아닌가. 출발 시간도 늦었거니와 전례복을 갖춰 입은 참이라 논쟁할 상황이 아니었다. 화내지 않으려 애써 표정 관리는 했지만, 내심 크게 씩씩거리며 수녀원으로 급히 갔다. 한참 늦었다고 생각하며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당황해 시계를 보니, 미사 시간이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아토스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 1시간 일찍 깨어났던 거다. 고급차 차주에게 씩씩거렸던 마음이 거슬렸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강론을 정리하려 「매일미사」를 펼쳤다. 그제야 다른 날 강론을 준비한 걸 깨달았다. 마침 그날 복음 내용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라’였다.
하루는 아토스를 몰고 본당 주일 미사를 갔는데, 어깨띠를 두른 봉사자가 만차라며 입구에서 막았다. 빈 주차면이 있는데도 작은 차라서 가로막혔다는 생각에 뿔이 나려 했다. 수동식 창문이 고장 나서 운전자를 확인 못 했을 거라고 위안하며 어렵게 멀리 주차하고 걸어갔다. 사목회로부터 전화가 왔다. 봉사자들이 마당에 주차면을 따로 준비하고 기다린다고. 뿔난 마음에 강론 시간이 길어졌다. 적어도 신앙인은 차량 크기 등 외면을 보고 판단하지 말자고 당부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날 이후 봉사자들에게 아토스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내려졌다나 어쨌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