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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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2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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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가톨릭신문 기자들이 ‘행동’을 통해 잠시 ‘멈추고’ 사순 시기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2주차에 접어들며 필사와 환경보호, 감사노트 쓰기를 이어가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첫 실패도 나왔다. 그래도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실천에 나선다.



■ 성경 쓰기

“죽음을 그저 삶의 끝으로만 여긴 것은 아닌지…”

시작이 반이라고? 천만에… 시작은 시작일 뿐이다. 루틴을 벗어난 의무다 보니 매일 필사하는 게 만만치 않다. 지난 목요일, 저녁 식사를 겸한 반주로 귀가가 늦어지며 필사를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겨우 일어나 졸린 눈 비비며 펜을 들었는데 첫 문장에 잠이 확 달아났다. ‘네가 죽은 다음에 누가 너를 기억하며, 누가 너를 위해 기도해 주겠는가?’(「준주성범」 제1권 23장)

지난 1월 캐나다의 K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딸 스텔라와 매주 한 번 줌(Zoom)을 통해 영어 수업을 하던 젊은 친구는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결국 숨을 거뒀다. 불과 일주일 전 스텔라의 어깨 너머로 반갑게 인사하던 그의 부고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딸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하는 한편으로 ‘아등바등 살아 무엇하나, 언제 이렇게 죽을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이 파고들었었다.

그런 와중에 새벽에 만난 문장은 삶의 ‘덧없음’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 ‘부질없다’는 잠시의 어리석음에 일침이 됐다. 「준주성범」은 ‘네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할 만한 것이 있으면 지금 하라’고 권한다. 성인들을 공경하고 본받아 벗으로 삼아야 비로소 세상을 하직하는 날 그들의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갈 것이라 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집착한 나머지 죽음 또한 힘겨운 나날의 삶이 끝나는 정도로만 가벼이 여긴 것은 아닌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고 그래서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사순 시기를 살아가는 오늘, 사도 바오로의 편지가 더욱 특별하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됐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3-4)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 생태적 회개 - 금육

몸 가볍고 집중도 잘 돼… 절제 통한 뿌듯함은 덤

먹거리 생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4분의 1 이상이고, 그중 80가 축산업과 관련된다. 게다가 소를 키우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매개체가 사라진 지구는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내 밥상 위에는 고기가 빠지지 않았다. 환경을 위한 회개를 상기할 필요가 있었기에 사순 2주는 금육을 하기로 했다. 아울러 과소비하지 않는 식단 안에서 고기를 먹지 않은 하루 밥값(1만 원)은 기부키로 했다.

“사순 시기에 브레첼을 먹었네”. 첫날, 고기 없는 식단을 고민하는 내게 옆자리 선배가 사순 시기 음식 이야기를 꺼낸다. 팔짱을 끼고 기도하는 모양의 브레첼이 고대 그리스도교 사순 시기 음식에서 유래됐다는 것. 두유와 브레첼로 첫날 금육 식단은 완성이다.

2월 15일 화재 피해 현장 취재차 방문한 충남 서천특화시장. 상인들을 위해 서천성당에서 준비한 음식들로 이날 점심을 해결했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며 식판 가득 밥과 반찬을 주시는데, 받고 보니 ‘아뿔싸, 불고기와 육개장이다.’ 고기에 손을 대지 않자 “반찬이 맛이 없냐”며 걱정하시는 탓에 결국 불고기 한 젓가락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금육은 실패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다. 하루의 실패로 마음을 다잡고 주말에는 채소와 두부, 고기 없는 김치찌개로 사순 2주 미션을 완수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허전하고 금세 배가 고플 거라 걱정했지만, 일주일 사이 몸이 가볍고 집중도 잘 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 습관처럼 했던 일들을 바꾸고 절제를 한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은 실천을 이어갈 용기를 북돋웠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한 움큼 주우며 “다음 주 금요일에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 감사 노트

“불행 중 다행도 또 다른 모습의 행복 아닐까?”

감사 노트를 시작하며 내 삶에 숨겨진 감사들을 찾아내는 눈은 주어졌지만, 사실 거기서 큰 의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받은 아침 응원 메시지, 모처럼 상쾌하게 일어난 어느 날 아침 등 단순한 감사를 찾은 것만으로 내 삶이 새로워지지도 않았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삶은 안 좋은 일이 더 많고, 실성하지 않고서야 소소한 감사 거리를 떠올린 것만으로 하루아침에 히죽히죽 웃으며 살게 되지는 않는다. 또 설령 좋은 일이 더 많다고 쳐도 나쁜 일을 더 크게 기억하는 게 인간의 심리였다. 그래서 어느 하루 감사 노트에는 지하철역 계단에서 넘어졌던 일을 적었다.

취재 장소로 서둘러 가다 다리가 꼬여 꼬박 한 층 가까이 되는 계단에서 넘어졌다. 아프기도 했지만 구경거리 난 듯 웅성대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창피했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찌 보면 불행 중 다행도 또 다른 모습의 행복은 아닐까?”

조급증을 자책하며 낙담하던 찰나, ‘불행 속에 주어진 다행도 당연하게 주어지지 않은 고마운 행복’이라는 깨달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나쁜 일들은 피해 갈 만큼 운이 좋았다. 하마터면 머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게 됐을는지도 모른다. 휴대전화마저 부서졌다면 설상가상 더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또 계단에서 구르지 않았다면 언제든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토록 인상 깊게 배울 수 없었을 것이다. ‘잠깐의 아픔과 창피함쯤,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급한 성격을 누그러뜨리는 데 꽤 저렴한 수업료’라고 노트에 적으며 긍정을 되찾는 내적 여유가 어느새 생겨 있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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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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