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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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와 따뜻함, 행정가 자질 두루 갖춘 ‘착한 목자’

서울대교구 이경상 새 보좌 주교의 삶과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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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서 이경상 신부.



웃음꽃을 몰고 다니는 사제

“신부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활짝 피죠.” 2월 24일 서울대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된 이경상 주교를 잘 아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11살 터울인 막내동생 이상화(유스티나, 은평성모병원 치과) 교수의 기억 속에도 그는 ‘늘 상냥하고 재밌는 큰 오빠’였다.

“어릴 적 오빠의 방학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공부를 알려줬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정말 재밌었거든요. 유쾌한 성격을 보면 쉽게 쉽게 일을 할 것 같지만, 막상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무척 꼼꼼했고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대신학교에서 교회법을 가르칠 때도 이 주교는 학생들 사이에서 ‘코미디언 교수 신부님’으로 불렸다. 존경과 사랑이 담긴 별명이었다. 강의가 쉽고 재밌는 데다, 친한 형이나 선배처럼 자신들을 잘 돌봐준 까닭이었다. 강론 역시 인기가 많아, 매번 녹음해 주변에 공유하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본당 주임 시절엔 다른 본당 신자들도 강론을 들으러 오는 바람에 미사 시작 한참 전부터 성당 주차장이 꽉 찼다는 일화도 있다.

50년 지기이자 소신학교 동창 서상범(군종교구장) 주교는 “이경상 주교님은 교회 정신에 충실한 사람이자, 타고난 유머 기질을 지녔으며, 의리의 사나이이자, 배포도 큰 분”이라고 했다. 서 주교는 “어려운 내용을 쉽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그 뒤에는 깊은 영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창이나 후배 사제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특히 투병하는 사제의 곁을 지키고 임종 순간까지 늘 함께하는 의리와 봉사정신이 매우 큰 분”이라고 전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 고 우문자 여사와 찍은 사진.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어린 시절 누나와 함께,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호 제공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머와 따뜻함

이 주교는 1960년 서울에서 고 이건호(미카엘)·고 우문자(율리아나)씨 부부의 2남 2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에게서 유머 감각과 유쾌함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로부터 넉넉한 마음씨와 섬세함을 배웠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지역을 옮겨 다닌 까닭에 세례는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받았다. 훗날 이 주교가 막 사제가 됐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지휘를 해보니 가장 말단에 있는 병사들을 잘 챙기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제 역시 마찬가지일 것으로 본다. 가장 약하고 소외된 신자일수록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저, 신부가 되고 싶어요.” 어린 시절 개구쟁이로 통했던 이 주교가 처음 사제의 꿈을 밝혔을 때 가족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이 주교에게 가톨릭 신앙을 물려준 이는 구교우 집안 출신의 늘 신앙 속에 살았던 외할머니 고 정순애(마리아) 여사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집을 찾아오는 성직자와 수도자를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때부터 성소의 씨앗이 싹튼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 주교가 진지하게 사제를 꿈꾸자 가족 일부는 우려를 표했다. 그는 꿈을 굽히지 않고, 서울 소신학교를 직접 찾아가 교장 신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온 가족이 그 의지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1976년 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신학교 입학 추천서를 써준 ‘아버지 신부’인 김충수(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신부는 이 주교가 “친화력 좋고 리더십 있는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전했다.

“아주 명랑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저도 덕분에 기가 막히게 많이 웃었어요. 친구들도 좋아하고 잘 따르더군요. 게다가 머리도 좋아 상황 파악이 빠르고, 재주도 많았죠. 신부가 되고 나서 ‘이런 사람이 주교가 되면 좋겠다’고 내심 기대했는데, 제 기도가 이뤄진 것 같아 기쁩니다.”

이 주교는 사제생활 내내 유머와 따뜻함을 이어갔다. 주교가 되기 직전 주임으로 사목한 개포동본당에서 어느 날 새벽 미사 중 어린이 복사가 종을 치다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미사 후 이 주교는 몸소 종 치는 시범을 보여주며 잔뜩 긴장한 복사의 마음을 다독이는 등 청소년· 청년들과도 격의 없는 친근한 ‘주임 신부’였다. 이 주교는 주교 임명 당일인 2월 24일에도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여 몇 번이나 손뼉을 마주치고 셀카도 함께 찍었다. 본당 소임을 함께한 유아영(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는 “주교님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에게나 허물이 없으셨고, 가난한 사람과 동행하셨다”며 “축하의 마음이 앞서는 한편 떠나셔서 더욱 서운한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1988년 사제품 받을 당시. 김충수 신부 제공
1988년 사제품 받을 당시.

로마 유학 시절, 1990~1995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교회법 전문가, 병원 행정가로

이 주교는 ‘최고의 교회법 전문가’로도 통한다. 그야말로 ‘무불통지(無不通知, 무슨 일이든지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라는 평가다. 1995년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 주교는 이후 서울대교구 법원장·부법원장·성사보호관 겸 검찰관을 두루 지냈으며, 교단에서 교회법을 가르쳤다. 「가톨릭 교회법 입문」을 썼고, 「신학과 교회법」, 「정의와 평화의 봉사자」, 「보편 공의회 문헌집 제3권-트렌토 공의회·제1차 바티칸 공의회」 등을 번역했다. 외국어에도 능통해 영어와 이탈리아어·스페인어·프랑스어·일본어 등 대여섯 개 국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주교는 교회법 책 외에도 교황청 구조를 분석한 「인사이드 바티칸」,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를 다룬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야기」 등 언어 실력을 발휘한 역서도 다수 출간했다. 2004년 이 주교에게 세례를 받은 강금실(에스테르) 전 법무부 장관도 “영광스럽다”며 “박식하고 유능한 분이라 좋은 주교가 되실 것”이라고 반색했다.

이 주교는 유학 시절과 동대문ㆍ방학동ㆍ개포동본당 주임을 지낸 시기를 제외하고 사제생활 대부분을 병원과 학교에서 사목했다. 병원 경영과 행정, 굵직한 사업을 추진력 있게 계획하고 수립하는 등 사제이면서도 이른바 전문 경영인 같은 면모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사무국 국장, 보건정책실장, 성바오로병원 원목실장 등을 역임하며 환자 돌봄을 위한 병원 운영에 힘을 쏟았으며, 2019년 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개원과 연구 인프라 확충을 위한 가톨릭중앙의료원(CMC) 옴니버스파크 건설, 국내 최대 규모 의료 데이터 사업과 혁신 창업을 지원하는 겨자씨키움센터 개소 등 수많은 병원 관련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한 이경상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있다.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제공


이 주교는 또 서울성모병원 등 가톨릭학원 산하 8개 의료기관이 가톨릭 이념을 구현하는 데에도 힘썼다.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전인적 치료와 의료 봉사에 앞장서며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널리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주교는 “세상 사람들의 노고와 애환에 깊은 감수성과 연민을 가지는 주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급변하는 우리 사회에서 교회와 사제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이 주교 스스로도 ‘세상과 시노달리타스하는 주교가 되겠다’고 피력했다. 유머와 따스함을 겸비한 목자이자, 동시에 행정과 관리자로서 경험이 풍부한 이 주교가 교회와 교구를 위해 주교로서 중책을 맡게 됐다. 나아가 2027년 열릴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를 위해 교회 안팎으로 소통하고 협력을 끌어모으는 ‘함께 걷는 주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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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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