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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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머금은 자살 유가족 주님 안에서 일어설 힘 얻어요

[사순기획] 자살 유가족들의 치유와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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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가족은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이다. 삶의 모든 시간을 함께해온 가족을 한순간에 보낸 남은 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땅에 함께 발을 딛고 살아만 있다는 것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인지, 이들은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느끼며 산다. 하지만 언제까지 슬퍼할 수만은 없다. ‘하늘에서 지켜보겠지’, ‘언제나 함께할 거야’라는 굳은 믿음 속에 이들은 하늘로 보낸 가족과 다시 만나면 웃으며 ‘잘 살다 왔다’고 말하고자 힘을 내고 있다.

본지는 사순 제4주일을 맞아 자살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며, 주님께서 함께하시길 간절히 바랐다. 텅 빈 마음과 그 안에 자리한 고통은 주님과 이웃이 주는 힘으로 견뎌내고 있다. 자살 유가족들이 하루빨리 삶과 죽음을 넘어 더 큰 희망을 찾길 기도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2022년 11월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가 개최한 2022 슬픔 속 희망찾기 마음축제 한쪽 벽면에 유가족의 메시지가 가득 걸려있다.


하루아침에 별이 된 청년들

“동생이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아들이 봤어요. 잡을 틈도 없었죠.” 윤 요한 사도씨는 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2021년 8월, 대학생 딸이 2학기 개강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린 딸은 아파트 화단에 떨어졌다. 윤씨는 나무에라도 걸려 딸이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119 구급대원에게 ‘살아있는 거냐, 죽은 거냐’ 물었어요.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윤씨의 딸은 24살 꽃다운 나이에 먼저 가족 곁을 떠났다.



“6월이었어요. 새벽에 잠이 깨서 아들의 방문을 열어봤는데, 선풍기만 켜져 있고 아들이 없는 거예요. 순간 안 좋은 느낌이 밀려왔어요.” 김 루치아씨는 친구를 만나러 간 아들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는데 아들은 없었고, 빈방에선 선풍기만 돌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김씨는 아들의 친구에게 급히 전화했지만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는 말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이를 발견했는데, 숨을 안 쉬는 것 같습니다.” 김씨의 아들은 다리에서 뛰어내려 2022년 6월 29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삶의 이유였던 아이들

윤씨의 막내딸은 유난히 밝았다. 친구도 많았고, 성적도 좋았다. 둘도 없는 남매는 사이도 좋았다. 윤씨 부부는 딸을 사랑으로 키웠다. “하루는 엄마한테 그랬대요. 아빠·엄마 만나서 사랑 충분히 받았다고요.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봤다고요.” 하지만 딸은 대학에 들어가 학력으로 인해 자존감이 크게 떨어졌다.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부터였다. 병원에 다녀도 차도가 없었다. 떨어진 자존감은 계속 그를 채찍질했고, 노력과는 반대로 목표는 점점 멀어졌다. 결국 딸은 아빠·엄마에게 한마디 말없이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좀 더 사랑해줄 걸…. 그랬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윤씨는 “제가 부모로서 자질이 없어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는 책망을 많이 했다”고 자책했다.



김씨의 아들은 엄마와 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감사한 마음을 잘 표현하는 속 깊은 아들이었다. 의대에 들어갈 정도로 공부도 잘해, 김씨에게는 자랑이자 삶의 이유였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아버지의 도박으로 불우했던 어린 시절 기억이 자리했다. “남편이 큰 아이 6살 때부터 도박을 했어요. 공금 횡령에 사채까지 썼더라고요.” 집에는 사채업자들이 드나들었다. 어느 날부터 아들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이 발현됐다. 아들이 대학생이 된 뒤 도박에 빠진 것을 김씨가 알게 된 것이다. 학교에는 소문이 돌았다. 평판이 중요한 의료계에서 의사를 꿈꾸던 아들은 꿈을 이루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리고 극심한 우울증은 그가 세상을 등지게 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어느 날, 김씨가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너의 해맑은 웃음이 보고 싶어.” 아들은 답했다. “엄마, 내게 그런 날이 올까?”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가 17일 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 1층 소성당에서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이창영 신부 주례로 자살 유가족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있기에

가족들은 신앙 안에서 다시 일어서고 있다. 기도 안에서 자녀를 만나고, 주님께 위로받으며 죽음을 넘는 생명의 신비로운 가치를 되새기며 고통을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씨는 먼저 세례를 받았다. 신자인 아내와 전국 성지를 찾아다니며 기도했다. 딸과 남은 가족을 위한 기도만 바쳤다. 자살 유가족을 위한 미사와 자조 모임 문도 두드렸다. “주님 안에서 큰 위로를 받았어요. 제가 아직 부족하다는 걸 배웠고, 같은 아픔을 지닌 이들에게도 도움이 돼야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아픔도 나눠야 삶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견딜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이 뭘까 찾으면서 나아가야죠.”

김씨는 자살 유가족을 위한 미사와 자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희망을 봤다. “한 줄기 빛이 보였어요.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하기만 했는데, 해답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는 지금까지 1년 6개월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미사와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는 “제가 일어서야 우리 아이와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제가 신앙 안에서 위로받고 일어설 힘을 얻은 것처럼 다른 유가족에게 빛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윤씨와 김씨는 한목소리로 “자살의 아픔을 숨기지 말고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자살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해야 그들이 다시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면서 “자살 유가족을 위한 사회적 치유, 전문심리상담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교회도 자살 유가족을 위해 더욱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다른 자살 유가족에게는 “혼자 아파하지 말고 문을 열고 나와 서로 위로하고 힘을 합쳐 앞으로 나아가자. 일어서기 위해 용기를 내자”고 했다.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유명옥 수녀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유명옥 수녀

“자살 유가족들에게 부활은 떠난 가족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유명옥(마리아,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수녀는 3년째 자살 유가족들의 엄마가 돼주고 있다. 교회는 하느님이 생명을 스스로 파괴하는 자살을 죄로 여기지만, 아픔 속에 살아가는 가족들과 연대하며 생명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유가족을 처음 만나면 그동안 위로받지 못했구나 하는 마음, 그럼에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죠. 처음 오시면 제가 안아드리는데, 마냥 울음바다가 됩니다. 치유의 시작이죠.”

수많은 자살 유가족이 미사와 자조 모임에서 변화한다. 점차 밝아지고 다른 유가족과도 함께하기 시작한다. 나아가 모임의 리더로 활동하며 다른 유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게 된다. 유 수녀는 “미사와 모임을 통해 모든 유가족이 신앙 안에 하나가 된다”며 “마음의 평안을 얻고, 구원에 대한 확신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전문심리상담 등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며 “모든 교구가 자살 유가족들을 위한 지원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라며 “자살 문제를 함께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상처를 감추면 제대로 치료할 수가 없죠. 자살 문제도 정확한 처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각자의 내면, 사회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모두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닌 자살의 아픔, 이제 숨기지 말고 나눕시다.”

문의 : 02-727-2495,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

도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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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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