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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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10) 김겸순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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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꿈꾸다 신앙에 눈 떠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어요. 음악도 좋아했지만 그림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항상 새로운 게 좋았어요. 학창 시절 주말이나 휴일이면 친구들과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곤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용주사라는 작은 절에 가서 그림을 그리고 온 날이었어요. 바로 전 주에 그린 단풍 그림을 비교하며 보고 있었는데, 그림에는 큰 변화가 없었어요. 자연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는데도 말이죠. 제 그림에서는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린 그림에는 왜 생명이 자랄 수 없을까?’, ‘내가 그리는 대상, 바라보는 대상의 주인은 누구일까?’ 이런 질문들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내가 내 삶을 창조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자연을 창조하고 세상을 만들어 가는 분은 따로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어느 날 그림을 그리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성당 십자가가 보였어요. 저도 모르게 이젤과 캔버스를 든 채 성당에 들어갔고, 그때부터 하느님을 찾기 시작했어요. 부모님도 신자가 아니었고, 주변에 성당에 다니는 이들도 없었는데 자연스럽게 성당 문으로 들어섰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았어요. 그리고 대학도 미술대학에 진학했고요. 하지만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나눠주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은 제게 뭐든지 다 주셨고, 그렇게 저는 받기만 하는 삶을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받기만 했던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누는 삶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노틀담 수녀회에 입회했어요.

그림 그리는 수녀

그렇게 그림을 포기하고 수녀회에 입회했어요. 당시 한국 지부장 수녀님이 독일분이셨는데, 어느 날 저를 부르시더니 미술을 다시 하라는 거예요. 저는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고 다른 수녀님들처럼 그냥 기도하고 수도생활에만 전념하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수녀님께서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거고, 일단 수도자 영성 신학원을 마친 후 그림을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지부장 수녀님께서는 “한국 문화도 아름답고 정말 좋은데, 왜 가톨릭 문화는 유럽의 싸구려 상본들, 좋지 않은 작품들을 복제하는지 안타깝다”고 하셨어요.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지부장 수녀님은 한국 그리스도교 미술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갖고 저에게 권유했는데, 당시 저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겁이 났던 거죠. 수녀님은 공부를 하고 나서 프랑스에서든 이탈리아에서든 노틀담 수녀회 수녀로서 한국의 가톨릭 문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셨어요.

지부장 수녀님께서는 원래 문화와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제 소임을 미리 정해 놓으신 거였어요. 그러고는 저보고 독일로 가라셨어요. 교육은 독일이 제일 엄격하고 철저하게 한다고요. 수녀님의 정확하고 정당한 논리를 더이상 거부할 수 없었어요. 그렇게 독일 뮌헨 국립미술대학교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을 공부했어요.



가톨릭미술가회 활동으로 교회미술 지평 넓혀

한국에서 교회미술가로 활동하면서 제 안에 갈등이 있었어요.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교회미술에 체계가 잡혀 있다는 거였어요. 성당을 지을 때 설계 단계에서부터 건축가와 미술가가 협력해서 공간에 맞게 전례용품을 구성했어요. 그렇게 조화를 이루는 거였지요.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달랐어요. 독일에서 사제가 건축가와 미술가의 의견을 굉장히 존중해 줬지만, 한국에서는 사제의 주장이 강하잖아요. 조화와는 별개로 ‘구색 맞추기’식의 작품들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상황은 지금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어요.

가톨릭미술가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배론성지를 시작으로 성미술 작품을 많이 했어요. 당시는 한국교회에서 성당을 많이 지을 때였어요.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100여 개 성당 건축에 참여했어요. 독일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현실에서 경험했지만, 뭐 하다 보니까 그냥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그리스도교 미술, 즉 성미술을 하는 작가들은 예술성은 물론 신앙적인 가치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회의 가르침과 전례를 잘 알아야 전례에 맞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부지런히 창작활동을 이어가야 해요. 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거죠. 샤갈이나 피카소 모두 자신들의 작품이 좋기 때문에 성당에서 작품 의뢰를 하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해요.

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토양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그동안 해 온 활동을 다 정리해 놓고 있어요. 디자인 스케치부터 작업 중간 중간 사진도 찍어 놓고요. 왜냐하면 이거는 제 것도 아니고 저를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에요. 다른 작가들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전하는 건데 도와줘야죠.







정리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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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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