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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의 생명과 평화] (6) 강정 이야기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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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생명평화대행진’이 펼쳐지던 2016년 8월 1일 강우일 주교(왼쪽에서 두 번째) 등 참가자들이 약천사~안덕 구간을 걷고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평화 운동가들은 제주 최남단의 작은 포구 강정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대형 해군기지의 이질적 형상이야말로 동북아의 평화를 저해하고 아름다운 제주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올무요 덫임을 세상에 알리고 호소하는 ‘생명평화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생명평화운동의 상징으로 강정에서는 해마다 제주도 해안가를 도보로 일주하며 평화를 호소하고 알리는 ‘생명평화대행진’이 펼쳐졌다. 나도 거르지 않고 이 행진에 함께 합세하여 걸었다. 행진 참가자들은 전국 각처에서, 해외에서까지 모여온 남녀노소 평화의 일꾼들이다. 이들은 긴 도보 행진 기간 내내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호소하고 알리는 깃발을 들고 걷는다.

강동균 회장은 해마다 이 긴 여정 내내 가장 큰 깃발을 들고 꼿꼿이 맨 선두에 서서 걸었다. 불어대는 거센 제주 바람에도 큰 깃발을 똑바로 세우고 걷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강동균 회장은 교대도 마다하며 꿋꿋하게 걸었다.


그 밖에도 나는 강정에서 놀라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2011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하다가 현장에서 크레인 차량 밑으로 들어가 공사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몸에 쇠사슬을 감아 연결하고 공사 현장에 트럭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저지하며 결사적인 행동으로 막아섰다. 그 과정에서 다섯 차례 구속되고 1년 6개월의 수감생활을 하고 단식을 이어가며 평화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결연히 표현했다. 그는 2016년 제주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일반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운동을 기획, 강정국제평화영화제를 개최하며 문화예술계에 평화운동의 막을 열었다. 그의 이러한 줄기찬 활동은 다른 문화예술인들에게도 평화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과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강정에서는 지금도 길거리 미사가 매일 11시에 거행되고 있다. 미사 집전은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장인 김성환(콜베) 신부를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서 방문하는 사제들이 번갈아 가며 맡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필요한 제구와 전례를 준비하고 미사 주송을 보고 묵주기도를 선도하는 역할은 정선녀(잔다르크) 공소회장이 한다. 그녀는 공사 반대 시위가 한창일 때 현장에서 농성자들을 압박하던 경찰들 안에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작은아버지의 아들, 사촌 동생이었다.

집에서 마주친 작은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뭐가 잘나서 데모하니?” 그 후로 전에는 살갑게 대해주던 삼촌 내외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고 서로 마음이 편치 않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또 언니 아들 부부가 경찰이 되어 제주도에 내려왔는데 오자마자 강정에 왔다. 조카 부부가 꼬박 1년 강정에서 근무했다. 캠코더를 들고 이모를 포함해 반대 농성자들을 채증하기도 했다.

잔다르크는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활동가들이랑 경찰이랑 대치 상황에서 서로 힘으로 밀기도 하다 보니 조카 부부가 욕도 듣고 몸도 힘들었을 거예요.” 그녀는 성녀 잔다르크처럼 강정의 긴 갈등의 역사 속에서 불굴의 굳센 투지와 깊은 영성과 복음적 온유를 잃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평화를 실천해 온 선교사다. 그녀는 지금 강정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마을을 안내하며 강정 평화운동의 역사와 체험을 전수한다.

그녀는 강정에 오기 전에 우도공소에서 10년 선교사로 살면서 공소 신자들을 동반하며 시간 날 때마다 우도 명물 땅콩 농사를 지었다. 그녀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엄청난 인내와 끈기로 땅을 살리는 일을 먼저 했다. 주변 농민들은 불가능한 짓을 한다며 만류했다. 처음에는 거의 열매도 달리지 않던 우도 토종 땅콩이 해를 거듭하면서 옛날의 고소함과 맛을 되찾아 갔다. 되살아난 옛날 땅콩의 맛을 본 이웃 농부들 입에서 절로 이런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이 맛이야!”

그녀는 지금도 강정에서 틈만 나면 밭에 가서 각종 채소를 가꾸며 돌보고, 감귤이나 딸기로 잼을 만들어 강정 생명평화운동의 재원에 보탠다. 진짜 생명과 평화를 수확하는 일꾼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한테 농사는 비폭력 행동 중 한 방법이었어요. 생산적이면서도 평화로운 방법으로 마늘을 다듬고, 들깨를 털고, 국화꽃을 따고 땅콩을 까고 바느질했어요. 시위도 농사도 내 삶의 일부예요. 땅콩 짓고 마늘을 심으면서 ‘생명과 평화는 사람이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땅으로부터 배웠어요!”

그 밖에도 나는 강정을 거쳐 간 수많은 평화의 일꾼들을 만났다. 일 년에 며칠 안 되는 휴가를 강정에 와서 보내고 강정 소식을 전국에 알리는 열성적인 남녀 수도자들도 여럿 보았다. 멀리 미국에서, 영국에서, 프랑스에서, 일본 오키나와에서 몇 번씩 온 이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농성과 시위에 참여했다가 연행되고, 추방당하고 재입국을 거절당한 이들도 여럿이다. 이들은 강정을 세상에 알려준 평화의 사도들이었다.


그런데 잠시 다녀가는 사람들 말고, 이곳에 여러 해를 눌러앉아 강정을 지키는 놀라운 지킴이들이 있다. 출신 지역도 다양하고 전력도 참으로 다양하다. 광고업계에서 광고 만들던 사람도 있고, 춤 명상과 춤 테라피를 하던 춤꾼도 있고, 서양화가도 있고, 영화감독도 있다. 벌써 여러 해 강정을 떠나지 않고 매일 길거리 미사, 평화를 염원하는 100배, 평화의 인간띠 잇기에 참여하고 각자의 재능과 전문성을 살려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며 평화의 몸짓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이들을 보며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보태주는 사람 아무도 없고 생기는 것도 없다. 오히려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는 손가락질과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고향과 안락한 보금자리를 떠나 조악한 의식주를 마다하지 않고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생명평화를 바라며 강정에 머무는 이들의 영혼과 활동에 나는 경이로움과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아무런 조직이나 규범도 만들지 않고 평화를 향한 각자의 노력과 선의를 존중하며 모든 종류의 상하관계에서 오는 차별을 거부하려고 사회적 직함이나 이름 사용을 마다하고 별명으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신기한 무리다. 이런 이름 없는 돌멩이들의 존재와 활동은 참으로 진실하고 아름답다. 이 돌멩이들이야말로 살아있는 평화를 만드는 디딤돌들이다. 이 돌멩이들의 외침과 현존이 오늘 강정을 평화의 기지로 만들고 있다.

내가 강정에서 만난 이들은 참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정화하는 빛이요 소금이다. 이런 의인들이 있는 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멸망시키지는 않으시리라 믿는다.



강우일 베드로 주교(전 제주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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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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