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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도시와 다른 경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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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고지서가 날아오는 월말이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한 주 주일 헌금 40만 원. 정성 어린 봉헌금이 내 월급으로 다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끄럽고 미안해진다.

학산본당 신자는 대부분 포도 농사꾼이다. 월급을 받는 경제 공동체가 아니고, 한 해 동안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생업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교무금이 넉넉하지도, 제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래 우선 나에게 들어가는 돈부터 줄이자!’ 첫 작업은 전기 난방을 기름 난방으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교체 후 100만 원 넘던 전기세(가장 많이 나오는 달 기준)가 30만 원으로 줄었다.

교회가 먼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그동안 부유했다는 말은 온전히 동의하기 어렵다. 다만 시대가 더 빠르게, 더 절실하게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부임한 사제가 콩닥콩닥거리니, 교우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가끔 너무 추운 날에도 성당 히터를 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짠하면서도 내가 너무 궁상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부임 후 첫 겨울을 보내고 봄이 왔다. 20년 된 시골 공동체에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선배들의 20년간 사목 활동에서 답을 찾아봤다. 꽤 오래전 선배 신부가 농지 축복을 한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농지 축복 공지를 내고 신청을 받아봤다. 많은 분이 신청하셨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한 해 동안 그들이 흘릴 눈물과 땀방울에 성수를 뿌려주고 축복 기도를 대신해 줄 뿐인데, 그분들은 진심 어린 감사의 얼굴로 함께 해주셨다. 그래선지 학산면 모든 포도밭이 내 밭인 것 같고, 가뭄이나 홍수가 나면 조마조마해지고 기도를 올린다.

“신부님이 농지 축복을 해서 그런지 순이 많이 올라, 가지 정리하느라 바쁘네요.” 교우들의 말에 용기를 얻으면서, 도시와는 다른 농촌 공동체를 다시 생각해본다. 교무금, 주일 헌금, 감사 헌금, 대축일 헌금. 신자들이 정성껏 봉헌하는 돈들로 운영되는 교회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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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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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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