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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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17) LG의인상 수상한 박언휘(엘리사벳)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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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가 된 것을 ‘하느님의 부르심’이라 여겼다. 진료를 통해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온 ‘박언휘종합내과’ 박언휘(엘리사벳, 69) 원장 이야기다. 40년 넘게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 봉사와 나눔을 실천한 박 원장이 2월 LG의인상을 수상했다. 그는 “살신성인하는 사람에게 주는 상이라는데, 제가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 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박 원장을 만났다.


 
박언휘 원장 병원의 한 쪽 벽면이 상패로 가득하다. 박 원장이 지금까지 받은 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부르심이자 꿈 
살신성인이란 부모님 가르침 따라 의사의 길  
장애인 위한 점자 약봉지도 개발 
40년 넘게 인술과 나눔 앞장서  

봉사와 나눔, 그리고 믿음 
한센인 진료 비롯 해외 봉사 등 낮은 곳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진료, 등록 환자만 8만 명 
진료 전 반드시 기도하고 주님께 의탁




박 원장의 삶의 자리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박 원장의 병원. 토요일 늦은 오후임에도 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환자들 사이로 박 원장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대기 중이던 모든 환자의 진료가 끝났을 때 비로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시간으로만 봤을 때 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의사일 겁니다.” 진료를 끝낸 박 원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월·수·금 오전 9시~오후 9시, 화·목·토 오전 9시~오후 7시 30분, 주일에는 오전 9시~오후 1시까지 진료하니, 틀린 말이 아니겠다.

“사람들이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하냐고 물어봐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돈을 좋아해서 그런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박 원장이 이토록 일에 매달리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다. “제 주머니에 1000원이 있으면 1000원밖에 줄 수 없지만, 1만 원이 있으면 1000원을 남겨도 9000원을 줄 수 있잖아요. 많이 나눠주고 싶어 많이 일하는 겁니다.”



박 원장과 달걀 한판

박 원장은 의사가 된 후 1982년부터 경북 성주의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인 나눔과 봉사를 시작했다. “보건소에 결핵 환자들이 많았어요. 결핵은 잘 못 먹으면 걸리거든요. 그래서 월급을 받으면 보건소 앞 시장에 가서 달걀을 샀어요. 그리고 환자들에게 약을 주면서 달걀 한판씩을 줬어요. 하루에 달걀 한 개씩이라도 먹으라고요. 단백질을 먹으니까 환자들이 좋아지더라고요.”

박 원장은 주말이면 인근에 있는 한센인 마을에 가서 환자들을 진료했다. “의사인 독일 수녀님이 그곳에 사시면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어요. 그 모습이 너무 감명 깊었고, 신앙의 힘이 참 크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도 소록도 진료를 가면 그 수녀님이 생각납니다.”

보건소 근무를 하며 나눔과 봉사를 하던 박 원장은 미국으로 갔다. “제대로 봉사하려면 실력이 있어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아프리카에 가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던 중 잠시 들른 한국은 여전히 건강보험제도(당시 의료보험)가 없었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박 원장은 1988년 한국으로 들어와 성당과 교회·절을 빌려 무료로 진료했고, 거동이 어려운 환자와 장애인을 찾아다니며 진료했다. 그리고 베트남·필리핀·태국 등 열악한 의료 환경에 처한 나라를 다니며 진료했다.

2004년부터는 소외계층에 해마다 1억 원이 넘는 백신을 기부하고 있고, 2005년 병원 개원과 함께 ‘박언휘슈바이처나눔재단’을 만들어 장애인 지원, 장애인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 나눔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약을 잘못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위한 ‘점자 약봉지’를 개발한 이도 박 원장이다. 현재는 보건소와 복지시설·장애인시설 등을 다니며 노인과 장애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촉탁진료를 하고 있다.

 
박언휘 원장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한 점자약봉지. 박원휘 원장 블로그
2021년 독감백신 전달식에서 박언휘 원장(가운데)와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박언휘 원장 블로그



부모의 가르침

살신성인(殺身成仁). 박 원장은 어릴 때부터 이 네 글자를 마음에 새겼다. “부모님이 살신성인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거든요. 어릴 땐 그 뜻을 몰랐는데, 상을 받고 나니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제가 정말 살신성인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도 됐고요.” 박 원장은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도 말했다.

울릉도가 고향인 박 원장은 어릴 때부터 의사의 꿈을 꿨다. 그가 어릴 때 울릉도에는 병원이 없었다. 병에 걸리면 육지로 나가야 했는데,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려면 12시간이 넘게 걸렸고, 겨울에는 그나마도 배가 없었다. 상처가 나도 치료를 받지 못해 패혈증으로, 또 맹장염이 복막염이 돼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었고, 가끔 의사인 선교사들이 울릉도에 와서 사람들을 치료했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죠.”



하느님의 부르심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울릉도에서 다닌 박 원장은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꿈에 그리던 의사에 한발씩 다가갔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급격히 어려워진 가정환경은 박 원장의 발목을 붙잡았다. 암울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성탄절 전날 삶을 포기하려 했다.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고 정신을 잃은 뒤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는데, 며칠 만에 눈을 떠보니 평소 존경하던 교수님이 그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교수님이 저를 보시더니 크게 야단치셨어요. 의사라는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고, 하늘이 준 천직,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요. ‘부르심을 받고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가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느냐’면서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의사가 된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고요.”



신앙의 힘

현재 박 원장의 병원에 등록된 환자는 8만 명이 넘는다. 봉사 다니면서 만난 환자들까지 더하면 10만 명이 훨씬 넘는다. 수많은 환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 다리 절단 진단을 받은 환자가 완치 후 세례받은 일, 가능성이 없다던 암 환자를 치료해 완치 판정을 받은 기적과 같은 일, 심한 화상으로 치료받은 장애인이 감사 편지와 귤 한 상자를 보내왔던 일 등 그에겐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저는 환자를 만나기 전 항상 기도합니다. 그러면 정말 완치가 어려운 환자들도 완치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신앙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박 원장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서로 나누고, 아껴줄 때 함께 행복해지는 겁니다. 외로움, 고립감, 자신만 불이익을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묻지 마 범죄도 생기는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이 좀더 마음을 열고, 나누고, 행복할 수 있으면, 묻지 마 범죄 같은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봉사와 나눔은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라는 박 원장. “우리는 나이가 들면 다 장애인이 돼요. 잘 못 걷고,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잘 안 들리잖아요. 그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처럼 내가 봉사하고 나누면 누군가 내가 어려울 때 나를 위해 봉사해주고, 나눠준다고 생각해요. 하느님은 우리가 한 만큼 복을 주시는 분이시잖아요. 내가 봉사하고 나눴을 때, 그 사랑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봉사하고 나누지 않을 이유가 없죠.”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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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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