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을 위한 다양한 사목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도 ‘해양사목’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한국교회 해양사목은 부산교구와 인천교구를 중심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는 교구들이 담당하고 있다. 해양사목 대상은 어업에 종사하는 어부들과 전 세계를 항해하는 선박의 선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다. 특히 전 세계 물동량의 70를 실어 나르는 선박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한번 출항하면 수개월에서 반년 이상 동안 가족과 만나지 못한다. 인천교구 해양사목부 담당 김현우(바오로) 신부는 매주 수요일마다 인천항을 찾는다. 제한된 공간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힘들게 일하는 외국인 선원들과 만나는 방선(訪船) 사목을 위해서다. 김현우 신부는 2월 28일에도 묵주와 간식, 방한 마스크 등을 챙겨 인천항을 찾았다.
■ ‘스텔라 마리스’ 차량 힘찬 출발
김 신부가 2월 28일 인천교구 해양사목부 김은숙(아녜스) 사무국장, 봉사자 김영옥(엘리사벳)씨와 인천 답동 사회사목센터에서 인천항을 향해 출발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출발에 앞서 외국인 선원들에게 나눠 줄 선물과 인천교구 해양사목부 전화번호 및 이메일, SNS(페이스북) 주소가 적힌 스티커 등을 승합차에 싣는 손길이 분주했다.
세계 각국을 출발해 인천항에 정박한 선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목인 만큼 차량과 김 신부가 입고 있는 상의에 ‘STELLA MARIS’(바다의 별)라고 적힌 영문을 볼 수 있었다. 김은숙 사무국장과 김영옥 봉사자가 입은 빨간 조끼에 새겨진 ‘THE APOSTLESHIP OF THE SEA’(바다의 사도)라는 문구에서도 이들이 외국인 선원들을 만나러 가는 길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김 신부 일행은 인천항에 들어가기 전 인천세관에 먼저 들렀다. ‘승선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보다 인천항 출입 절차가 많이 까다로워져 방문 목적과 휴대 물품 등을 확인받아야 한다. 승선 신고서에 기재된 승선 사유는 ‘외국선원 카운셀링’. 다양한 국적에서 온 선원들은 종교도 다양하기에 사제라고 해도 외국인 선원들에게 직접적인 선교나 미사 봉헌 등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 ‘상담’이라는 폭넓은 목적으로 승선 사유를 기재한 뒤 선원들이 희망하면 미사와 고해성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선원들에게 선물을 전달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한국인 사제와 신자들이 외국인 선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다는 뜻을 전한다.
■ ‘덴사 돌핀’호와 ‘글로리어스’호 선원들과의 만남
이날 김 신부가 방문한 외국 선박은 ‘덴사 돌핀’(Densa Dolphin)호와 ‘글로리어스’(Glorious)호였다.
김 신부 일행은 덴사 돌핀호와 인천항 부두를 연결하는 임시계단을 올라 배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다 오르자 선원의 안내에 따라 승선자 이름을 기록했다. 덴사 돌핀호는 곡물을 싣고 러시아를 출발해 루마니아를 거쳐 부산항에 입항했다. 다음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필리핀 선원 19명이 타고 있었다.
김 신부는 선박 책임자에게 방문 목적을 설명한 뒤 앞에는 해양사목 마크, 뒤에는 ‘DIOCESE OF INCHEON’(인천교구), 옆에는 ‘Stella Maris’가 새겨진 모자를 선물했다. 이 모자는 인천교구가 외국인 선원들을 위해 사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주면서 가톨릭교회와 외국인 선원들의 우정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다. 김 신부가 선원들에게도 같은 모자를 직접 씌워주자 선원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Thank you”를 연발했다.
근무를 하느라 김 신부를 만날 수 없는 선원들도 있었지만, 필리핀 출신 3명은 김 신부와 짧은 시간 함께 기도하고 안수를 받았다. 가톨릭 신앙을 가진 필리핀 선원들에게는 묵주를 선물로 주었다. 김 신부가 영어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동안 필리핀 선원들은 고개를 숙였고, 안수를 주는 김 신부의 표정에서 간절함이 전해졌다. 김 신부와 잠시 대화를 나눈 28세 필리핀 선원은 “아이가 하나 있다”며 “가족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교구 해양사목부는 선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선박 내부 벽에 인천교구 해양사목부 전화번호, 이메일과 SNS 주소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다. 인천항에서 한 번 만난 외국인 선원들은 전 세계를 다니기 때문에 인천항에서 다시 만나는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기도가 필요할 때나, 신앙상담을 원할 때, 인천항에 입항하는 다른 배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할 때에는 스티커에 적힌 SNS 주소 등에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실제 외국인 선원들은 SNS를 활용해 인천교구 해양사목부와 교류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김 신부는 다음 방문 선박인 글로리어스호로 이동했다. 글로리어스호에는 그리스인 선장 1명과 필리핀 선원 21명이 일하고 있었다. 김 신부가 선원의 안내로 선내 식당으로 들어가자 필리핀 선원들은 김 신부에게 “아침 드셨어요?”라고 물으며 환영했다. 선원들은 김 신부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자 함께 소리를 내서 기도했다. 김 신부가 주님의 기도에 이어 선원들의 안전과 건강을 기원하는 자유기도를 바치고 안수를 주는 동안 선원들의 얼굴에는 감동과 감격이 배어났다.
글로리어스호 필리핀 선원들도 인천교구 해양사목부가 준비한 묵주와 영문 성경 문구를 선물로 받고 엄지를 치켜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서툰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선원도 있었다.
김 신부는 방선 활동의 중요성에 대해 “외국 선박에서 일하는 선원들은 길게는 반년 가까이 배 밖에 나가지 못해 근무 환경에 따라서는 배 안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며 “어떤 직종보다 정신 건강이 중요한 분들이 전 세계를 항해하는 선원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배 안에서 선원들과 만나 함께 기도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그 짧은 만남을 통해 선원들이 신앙을 잃지 않는다면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신부를 도와 세 번째 방선 봉사자 활동을 한 김영옥씨는 “작년 말 봉사자 교육을 수료하고 처음 배에 오를 때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외국인 선원들의 신앙을 돕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인천교구는 전 인천교구장 고(故) 나길모 주교의 제안으로 1988년 해양사목을 발족했다. 2011년에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교구 산하 부서로 편성돼 현재 김현우 신부가 담당 신부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교회의는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요청에 따라 인천교구장 정신철(요한 세례자) 주교를 해양사목 담당 주교로 선임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