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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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5주차(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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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5주차. 기자들의 ‘생애 가장 아름다운 40일’ 여정을 마무리한다. 성경과 준주성범 필사를 마무리하며 가족들은 밥상머리에서 지난 사순 시기 필사의 하루하루를 되돌아봤다. 감사 노트가 누구든지 스스로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가르쳐주는 스승임을 체험한 기자는 아무도 번역하지 않은 노래를 우리말로 바꾸는 도전에 나섰다. 생태적 회개에 몰두했던 하루하루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천할 수 있게 한 마중물임을 간직하며 기자는 생태적 회개의 중요성을 직접 알리기 위해 캠페이너로 거리에 섰다.



■ 성경 쓰기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 성장한 은총의 시간


학자이자 수도원 원장이었던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1462~1516)는 책 「필사생의 찬미」(De Laude Scriptorum Manualium)에서 성경 필사를 통해 “소중한 시간이 가치 있게 쓰이고, 성경에 관한 이해가 높아지며, 믿음의 불꽃이 밝게 타오르고, 내세에 큰 보상을 받게 된다”고 성경 필사의 유익함을 전했다.

말씀 필사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밥상머리 묵상. 대주제로 트리테미우스의 글을 올려놓았다. 가족 모두 하느님을 말씀 안에 모시고 필사에 임했는지, 40일을 준비하고 기다렸던 성경 속 인물들처럼 우리도 부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40일간 간절히 청하고 기도했는지 되돌아봤다.

때로 필사책을 펴기 싫을 때는 억지로 꾸역꾸역 필사한 적도 있었다는 솔직한 소감도 나왔다. 이제 6학년인 스텔라에게 대부분 구약이었던 성경 필사 구절은 무척 어렵게 다가왔다. ‘내 팔이 청동 활을 당기게 하셨네’, ‘원수들이 칼에 맞아 쓰러질 것이다’와 같은 내용은 공포스럽기까지 했단다. 준주성범의 내용들은 대부분 알쏭달쏭, 추상적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실천하라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린 적이 여러 번이었다는 느낌도 전했다.

하지만 미사 중 그냥 흘려들었을 법한 독서와 복음 구절을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가며, 예수님의 공생활과 제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묵상하는 시간도 은혜로웠다는 소감에는 공감했다. 말씀 묵상과 함께 읽어 내려간 준주성범은 글로 새기고 마음에 담아 실천할 자양분이 됐다.

말씀 필사의 마지막 성경 구절은 마태오복음 6장 9-15절.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이며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기도다. “주님의 기도하고 달라~!” 기도문대로 써 내려간 스텔라가 ‘저희’를 ‘우리’로 쓰긴 했지만, 무사히 마지막 페이지 필사를 마쳤다.

필사의 마지막 부분에는 여정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가족 각자의 도장을 낙관 삼아 ‘꾹’ 찍었다. SNS로 인연을 맺은 유임봉(스테파노) 작가의 선물이다. 성가정 이루길 기도하며 전한 작가님의 선물이 필사 노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 생태적 회개 ? 캠페이너

고통받는 ‘공동의 집’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실천들로 채운 4주.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생태적 회개를 하겠다”고 소문을 낸 터라 고맙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동행하고자 하는 이들이 생겼다. 쑥스러워 “같이 하자”는 말을 미처 꺼내지 못했지만, “민 기자를 생각하며 오늘은 음식 쓰레기를 남기지 않았다”거나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했다”는 동료들의 말은 고마움을 더했다.

도전의 시작은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지만, 좋은 일을 알리고 나누자 누군가의 삶이 변하고 선한 영향력이 확산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사순 시기 실천 마지막 주는 선한 영향력을 더 멀리 전하고자 세상 밖으로 나가는 용기를 냈다. 환경 캠페인을 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는 입장이었던 내가 직접 캠페이너가 돼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선 것이다.

3월 8일 광화문에서 열린 금요기후행동,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거리에 서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초보 캠페이너였지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겠다는 마음만은 베테랑 못지않았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공동의 집을 위해 잠깐의 부끄러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났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이 피켓에 머물렀다. 함께한 캠페이너는 “3년째 금요기후행동을 하면서 직접 말을 건네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리의 행동을 응원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요기후행동을 끝내고 돌아와 지난 4주를 돌아봤다. 이번 주는 어떤 실천을 할지 함께 고민하고, 제로웨이스트 매장에서 알게 된 탄소포인트제를 동료에게 공유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회용품을 쓰지 말라”고 조언하며 보낸 시간. 생태적 회개에 몰두했던 나의 하루하루는 누군가에게는 생각에 머물렀던 것들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이 됐다. 그 변화를 보며 보낸 올 사순 시기. 부활은 더 이상 성경 속 한 구절이 아닌 내 앞의 현실이 됐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 감사 노트

‘의미 있는 창조력’ 깨닫게 해 준 희망의 스승


5주간 감사 노트를 쓰며 ‘삶은 진정 그 본질부터 감사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노트를 쓰고 안 쓰고의 차이일 뿐,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내고 거기서 만족을 찾으려는 노력은 사실 모든 사람이 이미 하고 있다. 사람들의 짓눌린 등허리가, 대책 없는 낙관이 자아내는 감상만으로 가벼워질 리 없다는 건 너무도 잘 안다.

“보물찾기처럼 삶 속에 숨겨진 행복들을 통해 긍정의 힘이 날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감사 노트의 유익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절망이 아무리 끈이 풀려 날뛰어도, 감사는 어느 틈에 차올라 그 메마름을 덮어버리는 본능적 창조력으로 인간을 열어준다는 데 있었다.

깊은 밤 문득 발동한 상상력은 불안과 자책의 굴레에 있던 나를 ‘조심성’과 ‘성장’이라는 계시로 구원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온몸이 쑤셨던 날, 나도 모르게 “조급함을 물리칠 수업료”라며 급조해 낸 의미는 육신의 고통을 처리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였다.

결국 감사 노트는 얄팍한 감사 타령이 아니라 내가 날 위해 무엇이든 만들어 낼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었다. “어쩌면 이 모든 고통이 내가 내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준 열쇠는 아니었을까”하는 희망적인 깨달음도 분명 감사 노트를 통해 열린 본능적 창조력의 산물이었다.

꽃밭 같은 탐미주의로 나와 다른 사람까지 속일 만큼 뻔뻔하지 못하다면, 본능적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나름대로 맞설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첫 도전으로 외국 노래를 우리말로 번역해 보기로 했다. 창조력을 최대한 발휘해 보고 싶어서 일부러 아무도 번역하지 않은 노래를 택했다. 이렇게 매주 한 곡 번역해 개인 SNS에 업로드할 계획이다. 이처럼 뭔가 새로운 일에 나서거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해 낙담하지 않고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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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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