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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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울 벗은 얼굴로 하느님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0)하느님을 닮아감(神化)(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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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1) 성 아타나시우스: 86.5 x 63cm, 템페라, 크레타 풍, 15세기, 테살로니카. 이단 아리우스주의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교리 확립에 공헌함.

 


1. 너울을 벗은 얼굴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로 웃음보가 터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 이야기였습니다.

사슴이 거울을 보는 그림 밑에 ‘사슴이 ○○○ 봅니다’라는 문장을 써 놓고 “여기 빈칸에 알맞은 답을 써넣으세요”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합니다. 짐작건대 ‘사슴이 (거울을) 봅니다’가 정답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빈칸에 ‘사슴이 (미쳤나) 봅니다’라고 쓴 것입니다. 아이고, 당연히 틀렸다고 할 수밖에. 아이의 순수함이 귀엽기만 합니다.

그 아이가 시험지에 쓴 답은 틀렸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맞는 답일 수도 있습니다. 사슴이 거울을 보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거울은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사람만이 보는 것인데….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라고 고백하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읽으면서, 거울에 비치는 나 자신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내 얼굴도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갈 수 있을까?

바오로 사도와 동료들은 내적으로 불타는 열정적인 전교 활동과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을 한 분들입니다. 그들의 영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과 닮아 간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그것이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바오로 사도처럼 내가 나의 의지를 온전히 주님의 길로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2. 왜 주님을 닮아야 하는가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처럼 되리라는 뱀의 꾐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은 뒤 선과 악을 알게 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들에게 ‘하느님처럼 되리라’는 것은 정말 큰 유혹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은 본디 하느님께서 주신대로라면 자유로운 생명체인데, 본인의 행동으로 선과 악을 알게 되었으니, 본인의 양심과 의지로 모든 것을 구분해 생활할 책임이 부여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과연 양심과 의지를 토대로 실생활에서 선악의 갈등 없이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을까? 결국 죽어서 그대로 먼지로 돌아가야 한다면, 생명을 유지할 방법은 없을까? 이제라도 남아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얻는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넣어주신 하느님의 영’을 깨달아 ‘하느님과 같은 자가 아니라, 하느님을 닮아야 하는 것’을 지향(指向)해야 한다고 바오로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막의 교부는 많은 숙고 끝에 모든 사람이 ‘단 하나의 얼굴’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즉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모습, 그 고유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 ‘단 하나의 얼굴’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닮다’ 사상은 동방 교부들이 실천하고자 하는 신학으로 신화(神化) 사상 또는 테오시스(θεοσιs)라 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295∼373)는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신이 되게 하려고 인간이 되셨다’라고 그분이 인간으로 오신 목적을 요약하였습니다. (작품1)

신이 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고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사람이 하느님처럼 완전해질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람이 하느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고, 거룩한 사람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을 강조하신 것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영, 즉 하느님과 비슷한 형상이 깃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의 형상을 자신 속에 거룩히 보존하며, 그 거룩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참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겸손과 도덕적 윤리적 관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2) 고백자 막시무스: 수도원장, 신학자. 그는 닮음(신화, 테오시스)을 하느님의 본성을 나누어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에서 비롯한 자비, 사랑, 겸손, 자기 절제 등을 나누어 받는 것으로 그 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 따라서 “그분께서는 그 영광과 능력으로 귀중하고 위대한 약속을 우리에게 내려 주시어, 여러분이 그 약속 덕분에, 욕망으로 이 세상에 빚어진 멸망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사람이 하느님과 닮는다’는 것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은 항상 죄의 덤불 속에 갇혀있는데 어찌 죄를 전혀 짓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하느님을 닮는다는 것은 죄로부터 돌아와 회개를 우선으로 하고, 이에 합당한 신앙생활과 사랑이 동반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도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1요한 4,7-21 참조)

이집트의 사막 한가운데 수도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어느 한 수도자가 잘못했는지 그 죄를 단죄한다는 회의가 열렸습니다. 원로 수도자 모세는 초청받았지만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 ‘모두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와주십시오’하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일어나 구멍 난 바구니에 모래를 담아 등에 걸머지고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를 기다리던 수도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사부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모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지은 죄들이 등 뒤로 흘러 떨어지고 있는데도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다른 형제의 죄를 재판하러 이렇게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자들은 죄지은 수도자를 단죄할 수 없었습니다. 죄의 판단과 단죄와 용서는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요한 8,3-11 참조)

인간은 본래 하느님 은총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죄로 말미암아 인간 내면의 하느님 모습이 손상되어도 다시 그리스도를 통해 원래의 성스러움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고백자 막시무스(580∼662)는 그리스도의 육화와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죄가 대속1)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인간은 죄로부터 해방되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 신화론의 근거가 된다고도 하였습니다. 즉 우리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처럼 닮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겸손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생활과 감사를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작품2)

그러나 그 부활은 거저가 아니고, 먼저 본인의 십자가를 통하여, 즉 밀알이 썩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요한 12,24-26) 마지막 날,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보여주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즉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21)

그리스도의 부활이 왜 기쁠까요? 그분께서 산 위에서 미리 보여주신 빛나는 영광스러운 모습처럼 나도 그 빛을 받아 부활하리라는 것은 정말로 환호할 일이 아닌가요! 이러한 신학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전적으로 닫힌 존재가 아니라, 항상 신과의 관계에서 상호 소통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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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남의 죄에 대해 대신 속죄함.


 

 

 


김형부 마오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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