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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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생명교육(신승환 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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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예수의 가르침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초기 교부들은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철학을 토대로 해서 초기 교부들은 교회의 기초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정교하게 체계화된 신학, 그리스도론과 신론 등의 교리신학은 말할 것도 없지만, 성사론과 교회론 등은 이러한 이론적 작업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 가르침을 이해하거나 교리 교육을 위해 철학적 이해가 필수적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회 가르침을 실천 영역으로 확대한 디다케(Didache) 역시 이러한 전통 안에서 가능했다.

플라톤은 영원의 관점에 서서 인간의 영혼은 본질적 세계인 이데아 세계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은 이 기억을 회상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철학을 이 본질적인 세계를 향한 열정과 관련하여 사용했다. 또 그러한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수련하는 과정을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말로 규정한다. 교부들은 이 개념을 수용하여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교육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이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거나, 실용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길, 인간의 영혼을 갈고 닦는 본질적인 요소였다. 그래서 고대종교에 능통한 카렌 암스트롱 같은 학자는 철학을 아예 영성수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교리를 이해하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우리는 파이데이아의 길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생명의 원천과 존재의 근원으로 나아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드높이는 도야의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생명은 초기의 원시적 형태에서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거치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복잡성을 증가시켜왔다. 물론 이 역사가 진보의 과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가운데에서 의식이 생겨나고 자의식을 통해 성찰적 지성을 재현한 것은 생명의 구원사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지성을 지닌 인간은 생명의 역사를 깊이 성찰함으로써 생명의 신비로움과 존엄함은 물론, 생명의 존재론적 의미를 한층 명백히 드러낼 과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이 역사 안에서 모든 생명의 존재론적 완성을 위해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생명의 역사를 이끌어갈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 여기, 현재라는 지평 위에서 이런 과제를 지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생명의 역사는 완성에 이를 수도 있지만, 또한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느님은 이 과제를 인간에게 맡기셨기에 생명의 법칙과 역사 안에 물리적으로 개입하시지 않는다. 그 과제는 거듭 인간의 손에 맡겨져 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은 생명의 도약과 파멸 사이에 놓여있다.

이를 위해 생명의 의미를 교육하고, 생명의 신비로움과 존엄함을 드러내는 생명철학이 필요하다. 초대 교부들이 했던 것처럼 변화된 시대 안에서 생명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는 생명철학을 정립할 때 교회는 이를 토대로 생명의 역사를 도약시키고, 생명의 신비를 완성하는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교육은 그것을 위한 과정이며, 그 의미를 드러내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날 교회의 고등교육이 다만 대학이라는 기관과 그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파이데이아로서의 교육을 저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의 교육은 생명의 구원사를 달성해야 할 그리스도교적 과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 길은 생명의 존재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는 교육 당국이 요구하는 자본주의적 사회의 요구를 벗어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과잉으로 치닫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시대에 생명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교회의 힘은 생명철학과 생명교육 없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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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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