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우성모(Al Utzig, 1983년 사제수품) 신부입니다. 1978년 생애 첫 선교 실습 발령을 받고, 신학생으로서 한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 당시 광주사태(현 5·18 민주화운동) 직후 저는 미국으로 돌아와 신학 과정을 마치고, 1983년 사제품을 받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목포 대성동성당에서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대성동성당이 위치한 지역은 바닷물에 의한 침수가 빈번했기 때문에 목포시 대성동 일대의 지대를 만조 때보다 1m 이상 높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성당과 사제관을 허물고 새로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곳 신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정성껏 새 성당과 사제관 건립을 위한 기금을 모았고, 저의 후임 사제가 새 성당을 아름답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영암본당으로 발령받았습니다. 그곳 신자들은 빨간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의 기다란 창고와 같은 오래된 성당을 허물고 새 성당을 짓고 싶어하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목포 대성동본당 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영암본당 신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정성껏 새 성당을 위한 모금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떠난 후 후임 사제가 새 성당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아마도 성당을 짓는 선교사가 되기를 원치 않고, 주님께서 맡겨주신 신자들과 함께 삶과 마음을 나누는 선교사가 되길 원했던 저의 마음을 두 번의 모금 활동을 통해 주님께서 헤아려 주셨고, 채워주셨습니다.
15년간 한국에서 활동
목포 대성동·영암본당서 사목
성전 건립 위한 모금 활동 열심히
현재 미국에서
남미의 다국적 신자들 많은 지역
신자들 모임과 공부할 공간 필요해
10년간 모금 활동 펼쳐 최근 기공식
상황 변화로 기금 부족해 도움 절실
1983~1998년 15년 동안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지금은 캘리포니아 폰타나에 있는 성모성당에서 선교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산버나디노교구 소속 본당입니다. 이 지역 인구는 약 2만 5000명인데, 92 이상이 히스패닉계입니다. 대부분 멕시코 출신이지만 페루·칠레·엘살바도르·과테말라·니카라과·코스타리카·쿠바 등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미국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이주민들입니다. 교육 수준도 낮은 편이며, 대부분 시골 출신의 작은 마을 사람들입니다.
1939년 지어진 원래의 성모성당은 이 지역 돼지농장에서 일하던 150여 명의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40여 년에 걸쳐 남부 캘리포니아는 빠르게 성장해왔습니다. 그 여파로 성모성당 공동체 규모도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1999년 성삼수도회의 신부님이 지금 제가 활동하고 있는 성당의 모습으로 개축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성모성당은 콘크리트 바닥에 1000개의 의자를 놓을 수 있는 규모의 강철로 된 창고형 건물입니다. 창문도 없습니다. 또 같은 마당의 오래된 농가 건물을 성당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두 건물에서 500명의 아이들을 위한 교리수업과 30여 개의 다양한 사목 활동 협의체들을 위한 모임을 어렵사리 하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허락하는 대로 하는 상황입니다. 종종 단체와 모임 간의 일정이 겹치면 매우 혼잡 합니다. 아울러 우리 공동체는 매주 서로 다른 언어로 7대의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영어 미사 2대, 스페인어 미사 4대 그리고 필리핀어 미사 1대입니다. 한국어 미사도 정기적으로 해왔는데, 미사에 오시는 신자분들의 연세도 높아지고 또 밤길을 운전하는 것이 여의치 않으시다는 말씀에 안타깝지만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원래는 성당 건물을 짓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500여 명의 아이들과 신자들에게 공간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꾸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지 1년이 흐른 뒤 성당 옆 2500평 부지를 매입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12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성당을 짓고자 합니다. 새 성당과 현재 사용 중인 낡은 창고형 성당을 고쳐 각종 모임을 할 수 있는 10개의 방과 1개의 넓은 강당으로 사용할 계획을 마음에 품게 되었습니다.
2013년부터 이 계획을 실현해나갈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 성당 주차장 주변에 새 성전을 위해 기부하신 신자분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새 성당에 사용될 벽돌에도 기부자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또 미사 후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했고, 생태 환경을 생각한 중고품 시장을 열어 새 성당 건립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데 함께 힘썼습니다.
최근에는 성모성당 공동체의 모든 신자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분으로 확대해 각자 자신의 한 시간에 해당하는 시급을 새 성당을 위해 매주 봉헌하는 ‘개미 프로젝트’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공동체에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급 노동력을 자랑하는 분은 한 명도 없지만, 이 캠페인 이름처럼 신자들과 지역민이 함께한다면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지난 10여 년간의 노력에 힘입어 저희는 마침내 2022년 10월 1일 새 성전을 위한 기공식을 겸하는 부지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새 성당 건립의 기초를 위한 첫 삽을 떴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는 우리 계획과 예산을 모두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공동체는 어렵사리 600만 달러(한화 약 80억 원)를 모았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지연된 공사 기간과 건축 예산의 인상분을 포함하면 약 300만 달러(약 40억 원)가 더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과 미국에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아는 모든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저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새 성당 마련을 위해 100년 된 호두나무를 베어내는 아픔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성당을 짓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 나무를 새 성당의 제대와 십자가 등 성당을 꾸미는 데 다양하게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의 선교 활동 경험을 살려 감실과 새 성전의 몇몇 창호는 옛 시골 초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뒤주와 격자창 형태로 장식하려고 합니다.
또 한국에서 미사 중 흔히 사용하는 한국식 ‘징’을 새 성당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진 이곳 신자분들께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물론 이외에도 생태 환경을 생각하는 물 절약식 화장실과 음향 설비, 그리고 각종 가구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성모성당 공동체와 저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알고 있는 모든 친구가 새 성당을 위해 함께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에 호소하며 의지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공동체와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두 손 모아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우성모 신부는 1983년부터 15년 동안의 한국선교를 마치고 본회의 부르심에 따라 미국으로 돌아가 신학원장을 역임한 후,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산버나디노 교구(San Bernardino Diocese) 성모성당(St. Mary’s Church)에서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