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어린 다림질,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도
강신희씨는 “세탁할 때, 다리미질할 때, 제의를 차릴 때마다 모든 행위가 당신께 봉헌하는 기도”라고 기도한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미사가 봉헌되는 성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다. 주일에만 미사 10대가 봉헌되고, 본당 사제만 7명이다. 한국 천주교회를 상징하는 대성당의 거룩하고 웅장한 제대 뒤편에서 묵묵히 청소와 세탁을 담당하는 이가 있다. 사제들이 미사 때 입는 제의를 세탁하고 다리는 일부터 전례 담당 수녀를 도와 미사 전 제단을 차리고, 제의실과 화장실 청소도 한다. 그리고 미사 시작 전 조용히 모습을 감춘다. 명동대성당 제의실 직원 강신희(가타리나, 59)씨를 만났다.
제단 뒤 전례 준비를 위한 공간
명동대성당 제의실은 제단 뒤쪽에 있다. 일반 신자들은 드나들 수 없거니와, 이런 큰 제의실이 있는지 잘 알기도 어렵다. 7명 본당 사제들의 제의는 기본, 한국 교회 주교들과 손님 신부들의 장백의와 제의 등 사제 전례복만 해도 100벌 넘는, 전례를 위한 모든 의상과 제구를 품은 곳이다. 전례력에 따른 색깔.계절.크기별 제의를 다 갖추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오후의 볕이 드리운 제의실에서 강신희씨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채색 옷차림을 한 강씨는 스팀다리미로 순백의 제의를 열심히 다리고 있었다. 제의실 한쪽 벽에는 역대 교구장들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제가 누가 되지 않을까 늘 조심스러워요. 지금도 사실 배우고 있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너무 조심스럽고, 잘못 건드렸다가 가구에 스크래치라도 나면 어떡하나 했어요. 수녀님께 제구 차리는 걸 배울 때에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확인하면서 했죠.”
강신희씨가 직접 다리고 개어 놓은 개두포. 사제들은 미사 전 개두포를 먼저 두르고 제의를 입는다.
강씨가 이 일을 시작한 건 2019년 9월.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는데, 처음엔 이런 일이 있다는 걸 생각도 못 했어요. 다른 본당에서는 봉사자가 하는 일이었거든요. 세탁과 청소일은 하겠는데, 다리미질은 자신이 없었죠. 그런데 와서 보니 다려야 할 제의가 진짜 많은 거예요.”
계절과 용도에 따라, 제의를 세탁해야 하는 빈도와 세탁 방법도 다르다. 매주 한 번씩 세탁하는 제의, 계절별로 세탁해야 하는 제의가 있는가 하면, 사제들이 제의 안에 입는 개두포와 띠, 영대도 이곳에 와서 알았다. 긴 장백의 한 벌을 다리는 데에만 30분이 걸렸다. 낯설기만 했던 제구 이름도 일하며 알았다.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빵을 담아놓는 거룩한 접시 ‘성반’, 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잔 ‘성작’, 성체를 모셔 두는 뚜껑이 있는 그릇 ‘성합’까지.
4년 6개월 동안 명동대성당 제의실에서 일해온 강신희씨. 그가 제의실에서 제의를 다리고 있다.
세탁과 다림질로 주님께 기도 봉헌
강씨는 서울대교구 소속 계약직 직원으로,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5시까지 일한다. 목요일과 주일은 쉰다. 그는 세탁소와 휴게 공간이 있는 생활관과 명동대성당 제의실, 파밀리아 채플을 오간다. 파밀리아 채플에서는 혼배 미사 때 제단을 차린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성체를 대하는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것은 은총이다. 성체 가루가 성체포에 묻어있을 수도 있어 성체포를 물에 조심스럽게 헹궈 그 물을 화단에 붓는 수녀의 모습, 성체포에 있는 성체 가루를 손으로 정성껏 찍어 영하는 사제의 모습을 볼 때다.
“제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동안 늘 기도합니다. 저의 행동 하나하나를 당신께 봉헌하겠다고요. 세탁할 때, 다리미질할 때, 제의를 차릴 때마다 모든 행위가 당신께 봉헌하는 기도라고요.”
2019년부터 명동대성당 제의실에서 일해온 강신희씨가 제의를 정돈하고 있다.
힘든 시기 깨달은 기도의 기쁨
강씨는 세 자녀의 엄마다. 본당 사무장으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일을 시작했다. “막내가 어릴 때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다가, 아이가 학교 들어간 이후론 대형상점에서 10년간 계산원으로 일했어요. 잠시 식복사로도 일했고요.”
강씨도 삶에서 시련의 강을 건넜다. 사업 실패로 집이 경매로 넘어간 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세 아이와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월셋집을 전전했다. 그럴 때마다 강씨는 남편과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에 가서 묵주 기도를 바치곤 했다.
“그때는 많이 울었어요. 하느님께 해달라는 기도만 했죠. 그런데 힘들었던 시기를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딱 살 수 있을 만큼 주시더라고요. 넘치게 주셨더라면 기도하면서 사는 기쁨을 몰랐을 거예요. 다시 교만해졌겠죠.”
강씨는 틈틈이 기도를 바치지만 특별한 지향을 두지 않는다. “그때는 무언가를 해달라는 기도를 했지만,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지금은 그냥 밥 한 끼 먹으면서도 웃고, 아이들이 잘 커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삽니다.”
강씨는 종종 cpbc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 나오는 대축일 미사 장면을 남편과 보며 수줍게 자랑한다. “여보, 저 제의 내가 다린 거야.”
그는 “우연한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것뿐”이라며 “다리미질로 어깨는 가끔 아프지만, 신부님들이 구김 없는 장백의를 입고 미사를 잘 주례하시도록 살피는 저를 그래도 하느님께서 예쁘게 봐주시지 않겠느냐”며 잔잔하게 웃었다. 그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게 꿈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