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북경교구·파리외전 모두 조선 선교 거절… “제가 가겠습니다”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11. 조선 선교를 자원하다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제22대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은 마카오 대표부장 움피에레스 신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직할 선교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를 제안한다. 카펠라리 추기경은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으로 즉위해 조선대목구를 설정한다.

포교성성, 북경교구에 조선 사제 파견 요청

교황청 포교성성이 직할 선교 단체인 파리외방전교회에 조선 선교를 요청한 배경을 좀더 설명하겠습니다. 1818년 1월 6일 북경교구장 수자 사라이바 주교가 마카오에서 선종했습니다. 박해로 북경에 들어가지 못한 교구장 사라이바 주교를 대신해 총대리 포르투갈 라자로회 리베이로 누네스(Ribeiro Nunes, 1767~1826) 신부가 조선 교회를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추기경 회의를 통해 조선 교회를 시급히 돕기로 한 교황청은 선교사 파견이 조선 교우들을 위한 가장 긴급한 사안임을 재확인하고 1822년 조선 교회에 사제를 파견할 것을 누네스 신부에게 요청했습니다. 이에 누네스 신부는 1823년 교황청 포교성성 마카오 대표부장 라파엘 움피에레스(Raffaele Umpierres) 신부에게 조선인 신학생을 선발해 북경에서 교육한 다음 사제품을 주고 조선에 파견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역제안을 합니다.

사실 그는 조선을 도울 의향이 전혀 없었습니다. 북경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황제에게 꼬투리를 잡혀 현지에서 쫓겨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중 태도는 누네스 신부가 움피에레스 신부에게 쓴 편지에 확연히 드러납니다. 그는 조선인 신학생을 데려와 양성하겠다면서도 현재 북경교구는 조선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할뿐더러 들킬 경우 그나마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교구의 존립 자체마저 위협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교황청은 북경교구가 조선 선교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습니다. 움피에레스 신부는 중국인 신부들에게 조선을 맡기려는 것은 오히려 조선을 파멸로 이끄는 길이 될 것이라고 포교성성에 보고합니다. 그러면서 로마나 프랑스 예수회에 조선 선교 책임을 맡긴 후 예수회원 중 한 명을 조선의 지목구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포교성성은 움피에레스 신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여러 수도회 책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 조선에 사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827년 포교성성은 먼저 예수회에 이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회는 해산 이후 복구한 지가 얼마 안 돼 이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포교성성은 1827년 9월 1일 파리외방전교회에 현재 북경교구의 사정으로 조선 교회에 아무런 원조도 줄 수 없으니 이 지방을 맡아 줄 수 있느냐는 내용의 공문을 보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본부장) 샤를 프랑수아 랑글루아 신부는 선교사와 선교 재원 부족, 조선 입국로의 불확실성 등 다섯 가지 이유를 들어 조선 선교지를 맡아달라는 포교성성의 제안을 거절한다.

파리외방전교회도 조선 선교 요청 거절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본부장) 샤를 프랑수아 랑글루아(Charles Francois Langlois, 1767~1851) 신부는 1827년 9월 29일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에게 공문을 보내 조선 선교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랑글루아 신부는 이 공문에서 △선교사 부족 △재원 부족 △조선 입국로의 불확실성 △회칙상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대목구장과 선교사의 동의를 얻어야 함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대표부로부터 조선으로 갈 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받기 전에는 장상으로서 확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조선에 사제 파견을 거절했습니다.

포교성성은 그해 11월 17일 다시 랑글루아 신부에게 공문을 보냈습니다. 포교성성 장관 바르톨로메오 알베르토 카펠라리(Bartolomeo Alberto Cappellari) 추기경은 이 문서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대목구장들이 제안을 받아들이길 바란다”면서 “조선 선교에 필요한 초기 비용의 일부를 포교성성에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추기경은 그러면서 조선 입국로에 관한 자료로 1824년(혹은 1825년)에 보낸 ‘조선인 교우 암브로시오와 동료들이 교황에게 보낸 탄원서’ 사본을 첨부했습니다.

랑글루아 신부는 그해 12월 4일 포교성성 장관에게 “조선 교우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지만, 그들을 도우러 갈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 교우들이 탄원서에서 제안한 입국 방법이 믿을만하지 않을뿐더러 실현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내용의 재답신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해서 교황청 포교성성과 파리외방전교회 간의 조선 선교 교섭은 중단되고 맙니다.

교황청과 파리외방전교회가 교섭하는 사이 조선에서는 1827년 정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전라도 곡성에서 시작된 이 박해는 경상도와 충청도로 확산됐습니다. 이 박해로 조선 교회 재건에 힘썼던 신태보(베드로)를 비롯한 많은 교우가 순교하거나 유배됐고, 조선 교회는 또 한 번 피폐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저는 조선 선교지 관할 여부를 묻는 파리외방전교회의 1828년 1월 6일 자 공동 회람을 1829년 샴에서 받았던 것이죠. 그 공동 회람에는 “돈도 없고, 선교사는 부족하며, 다른 선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고, 조선에 들어가는 데 거의 극복하지 못할 난관이 있으며, 또 불행한 조선 신입 교우들이 선교사들을 국내로 영입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방법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근거로 조선 선교 수락 문제를 미룰 생각”이라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 카펠라리 추기경이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조선 선교지를 맡아달라며 보낸 공문.


조선 교우들에게 도움 줄 가장 좋은 기회

하지만 저는 지금이야말로 30년 전부터 그리스도교 세계의 도움을 간청해 온 불운한 조선 교우들에게 도움을 주러 갈 가장 좋은 기회라고 확신했습니다. 제 생각에 동의하신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에 동참해야 합니다. 이기주의는 세속적인 일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에서도 비난받을 만한 것입니다. 어느 한 선교지의 특수한 이익이 교회의 보편 이익에 비추어 볼 때 포기해도 잃는 게 적거나 없다면 이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라며 지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조선 선교를 자원하고 싶다”는 저의 청을 기꺼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829년 5월 19일 방콕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지도 신부님들께 “조선 선교를 자원하겠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아울러 저는 이 편지에서 지도 신부님들이 조선 선교 수락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제시한 다섯 가지 이유에 관해 제 생각을 밝혔습니다.

먼저, ‘선교 기금이 없다는 것’에 “우리 신학교에서 일찍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며 어떤 일을 거부한 적이 있었는가?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선교지 가운데 한 군데라도 포기한 일이 있었던가?”라고 반문하면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둘째, ‘선교사가 부족하다’는 데 대해선 “선교 회보와 프랑스의 모든 신학교에 조선 교우들이 교황께 보낸 편지를 소개하면 많은 사제가 선교사로 지원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셋째, ‘다른 선교지에도 급한 일이 많다’는 주장에 “저 불쌍한 조선인들이 당하고 있는 것만큼 급한 일은 없다”면서 “사제 한두 명쯤 줄어든다 해도 우리 선교지 전체로 볼 때에는 그리 큰 공백 상태를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넷째, ‘조선으로 들어가기 어렵다’는 부정적 의견에 “몇 해 되지 않는 동안에 여러 편지를 로마에까지 보낼 수 있었던 조선인들이 사제 한 명쯤 자기네 나라에 인도해 들이지 못하겠는가?”라면서 “조선 입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하느님 섭리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습니다.

다섯째, ‘너무 많은 일을 하면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태도에 “우리 회는 아직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또 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장래에 대한 약속은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잠정적으로 한두 명의 사제를 보내겠다고 포교성성에 제의해달라”고 지도 신부님들께 간청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조선에 가겠습니다”라고 자원했습니다. 아울러 “교황청에서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달라”고 지도 신부님들께 요청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4-03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11. 25

시편 30장 11절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가 되어 주소서.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