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겐 시민들의 이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이는 고 김제훈(안토니오, 당시 단원고 2학년)군 부모 김기현(베네딕토)·이지연(비비안나)씨 부부에게도 마찬가지다. 10년이 지나도 김씨 부부의 마음은 아들이 고통을 겪었던 차디찬 맹골수도 위에 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을 수 있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던 2014년 4월 16일,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단순 사고인 줄 알았던 김씨 부부는 그저 ‘물에 젖었을 테니 마른 옷이라도 입혀 아들을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눈물이 뒤범벅된 채 팽목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늦은 밤이 되어도 제훈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배를 구해 부랴부랴 찾은 참사 현장에는 잔잔한 수면 위로 세월호가 보이지 않는 아들을 안고서 뱃머리만 드러낸 채 고요히 잠겨 있었다. 그리고 부부는 참사 8일 만에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가슴 속에서 계속 비명이 들렸어요. 우리 제훈이의 외침이었던 것 같아요. 제훈이 동생도 형을 잃고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저는 당시 엄마로서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죠.”
이씨는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이렇게 있어선 안 되겠다 싶어 참사 2년여 뒤 수원교구 안산 생명센터 문을 두드렸다. 처음 붓을 들고 엄마가 그린 건 자랑스러운 장남, 그러나 안아볼 수 없는 큰아들 제훈이였다. 엄마는 하늘에서 활짝 웃는 아들을 떠올리며 하늘색으로 바탕부터 칠해나갔다. 붓끝에서 점차 선명히 피어나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여전히 아들이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씨는 ‘다른 엄마들도 떠나보낸 자녀를 이렇게라도 만나면 참 좋아하겠지’ 싶어 제훈이의 친구들을 그려 선물했다.
먼홋날 하늘에서 아들 만날 때까지
“참사 이후 저는 하느님과 더 가까워졌어요. 의지할 곳이 신앙밖에 없더라고요. 참사 초기에 합동분향소에서 매일 미사가 봉헌됐는데, 메마르지 않는 호의에 감사했어요.”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 신앙은 착한 아이였던 아들이 주님 곁 하늘나라에 갔으리라는 큰 위안을 줬다. 이씨도 ‘먼 훗날 아들을 만나려면 진정한 하느님 자녀로서 잘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참사 발생 10년이 흐른 지금까지 김씨 부부는 ‘지금 우리 제훈이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까’를 떠올리며 지냈다. 아빠 김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뒤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도움이 필요한 아들의 또래들을 후원했다.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국내외 아동들에게 꾸준히 사랑도 전하고 있다.
수많은 아들딸 위해 진상 규명 목소리
김씨는 “사랑 많은 제훈이가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며 “아빠로서 아들을 대신해 하는 것일뿐”이라고 했다. 아빠는 자신처럼 사랑하는 이를 잃은, 혹은 다른 참사를 겪은 유족들을 찾아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다시는 이 같은 황망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부의 기도였다. 제훈이는 떠났지만, 아빠는 이 세상을 사는 수많은 아들딸들을 위해 계속해서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책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비난을 듣기도 하고, 뜻밖의 위로를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씨는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생명을 존중하고 안전한 사회’를 이루고자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아들로 인해 새 삶을 얻게 됐다고 느끼며 지낸다.
“제훈아, 네가 살지 못했던 그런 삶을 엄마 아빠가 대신 살아가는 것 같아. 그동안 열심히 잘 살 테니까, 제훈이는 그곳에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 엄마 아빠는 너를 만나기 위해 계속 노력할게. 언젠가는 꼭 다시 만나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