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꽃들이 지천으로 활짝 피어있다. 매년 보게 되지만 언제나 참으로 신기하다. 죽은 듯 보이는 검고 메마른 가지에 어쩜 그리 아름다운 색을 입힐 수 있는지 경탄할 따름이다. 사람들도 개나리·진달래·벚나무 앞에서 핸드폰 셔터 누르기를 참지 못한다.
봄꽃은 소중한 누구에게 사진을 보내주고 싶고, 함께 꽃길을 걷고 싶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그런데 이 봄꽃은 피는 순서가 있다. 기온과 일조량에 따라 꽃들끼리 순서를 지킨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리는 꽃은 매화다. 바로 바통을 이어 받는 꽃은 산수유고, 그다음은 은은한 향기로 유혹하는 목련이 기다리고 있다. 개나리는 목련 다음이고, 이어지는 선수가 바로 진달래다. 이즈음이 되면 라디오에서는 벚꽃 관련 노래들이 쏟아지고 그다음으로 튤립이 자리한다. 사람들은 진달래와 철쭉을 헷갈려 하는데 봄철이 쭈욱 지나 마지막 5월을 넘겨 피는 꽃이 철쭉이라 외우면 3월에 피는 진달래와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렇듯 자연은 온도와 햇빛에 따라 봄꽃 순서를 만들기에 우리는 다음에 필 꽃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봄꽃이 전쟁과 무슨 공통점이 있다는 말인가? 바로 순서와 예측 가능성이 닮았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전쟁도 그러하다. 현실에서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할 때가 많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런 면에서 전쟁이 충격적이고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그 전에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모든 전쟁은 사실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고 점점 상승 곡선을 타다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벌어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갈등을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면밀하게 바라봤으면, 전쟁은 매 단계를 위태롭게 넘긴 결과다. 사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되는 전쟁뿐 아니라 우리네 일상의 갈등도 대부분 어떤 과정을 거친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주차 시비가 붙으면 처음에는 거친 말이 오가고, 위협적인 행동을 보이고, 그런 다음에 드잡이 몇 번 하다가 주먹이 오가는 물리적 폭력으로 번지게 된다.
갈등을 고조시키는 결정적 말과 행동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갈등을 조절할 수 있는 타이밍도 있는 법이다. 마치 꽃망울이 터지기 전에 조금씩 변하는 기온과 일조량을 알아차리면 개화 시기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사 모든 갈등도 그 과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면 예방이 가능한 법이다. 물론 봄꽃과 전쟁은 너무나도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 한쪽은 생명의 작용이고, 다른 한쪽은 파괴와 죽음의 길이다. 봄꽃은 사랑하는 이를 연상하게 하며 함께 나누고 싶은 행복을 주지만, 전쟁은 사랑하는 이를 잃을 것 같은 불안과 공포를 안긴다. 그래서 봄꽃만큼이나 갈등을 더 주목하고 관리해야 한다.
한반도의 갈등 역시 그 과정 어디 즈음에 서 있다. 교류가 사라지고, 통신선이 끊어지고, 적대적 언사가 오가고, 무력시위가 빈번해지고, 협상이 파기되고, 적대감이 커지고 있다. 과연 다음 단계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기서 멈추고, 관리하고, 조율해야 하지 않을까? 이 과정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여러 질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가지는, 봄꽃은 멈춤 없이 그 과정을 지속하지만 전쟁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면 멈출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전쟁은 우리의 무관심을 먹고 자라는 놈이다.
정수용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