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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주교품 받아… 박해받고 있는 조선 교회 성모님께 의탁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12. 주교품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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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내부. 샴대목구 부대목구장이자 갑사의 명의 주교로 임명된 브뤼기에르 주교는 1829년 6월 29일 샴대목구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플로랑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았다.

교황, 샴대목구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

1829년 5월 8일 방콕에 도착한 서신 꾸러미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 보낸 공동 회람뿐 아니라 레오 12세 교황(재위 1823~1829)이 서명한 3통의 소칙서(Brevis)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샴대목구장인 플로랑 주교에게, 나머지 2개는 저에게 보내온 소칙서였습니다. 레오 12세 교황이 1828년 2월 5일 자로 서명한 칙서들이 그제야 수신인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제게 “브뤼기에르 신부를 샴대목구 부대목구장이자 카라드라의 명의 주교로 임명한다. 단 이 결정은 플로랑 주교가 선종했을 경우에 시행된다”고 명시했습니다. 반면 플로랑 주교님께서 받은 레오 12세 교황의 소칙서에는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는 선교사 중 한 명을 선발해 대목구장 계승권을 지닌 부주교로 임명하고 갑사의 명의 주교로 성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필자 주- 교황의 이름으로 사목하는 대목구장은 통상 ‘명의 주교’로 주교품을 받는다. 명의 주교는 교구장이 아닌 주교로 교황청에 근무하는 주교, 교황사절, 성직 자치구장, 대목구장, 보좌 주교, 퇴임 주교 등을 가리키는 교회 용어다.)

제가 받은 레오 12세 교황님의 소칙서는 플로랑 주교님께서 살아계셨기에 효력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플로랑 주교님께서 받은 레오 12세 교황님의 소칙서는 내용 그대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교황님의 지시대로 선교사 중 자신의 후임자로 저 브뤼기에르를 지명하셨습니다. 저는 몇 차례 고사했지만 노쇠한 주교님의 간절한 뜻을 저버릴 수 없어 순명하는 마음으로 주교직을 수락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1829년 5월 29일 자로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 신부들에게 조선 선교를 자원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교황청 포교성성에도 조선 선교를 자원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는 소식도 첨부했습니다.

플로랑 주교님은 저의 주교 서품 예식을 준비하시면서도 조선 선교에 대한 열망을 품은 저를 위해 1829년 6월 20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 신부님들께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만일 필요하다면 가엾은 조선 사람들을 구원하러 가겠노라고 진심으로 자원해 나섰습니다. 나는 그것이 주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길이라면 그를 기꺼이 놓아주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마 몹시 놀라고 교구장과 그의 보좌 주교가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우리의 머리는 아직 성합니다. …포교성성에 한 것처럼 나도 여러분이 내세운 지혜롭고 현명한 이유를 찬성합니다. 그러나 눈앞에 날마다 일어나는 일들을 깊이 생각해 보면, 여러분이 내세우는 이유가 어느 정도 힘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가엾은 조선 교우들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들에게 참으로 사도적인 많은 선교사를 보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레오 12세 교황. 그는 브뤼기에르 주교를 샴대목구 부대목구장과 갑사의 명의 주교로 임명했다.

1829년 6월 29일 주교품을 받다

저는 갑사의 명의 주교로 샴대목구장의 승계권을 지닌 부대목구장으로 1829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방콕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에서 플로랑 주교님으로부터 주교품을 받았습니다.(필자 주- 이후 조선대목구에는 갑사의 명의 주교가 모두 3명이 배출된다. 첫 번째가 브뤼기에르 주교, 두 번째는 앵베르 주교, 세 번째는 베르뇌 주교다.)

저는 사목 표어를 ‘가서 만백성을 가르쳐라’(Euntes Docete Omnes Gentes)로 정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28장 18-19절의 내용을 함축한 문장입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발현하시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할 것을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아울러 파리외방전교회 선교 표어이기도 합니다.
 
브뤼기에르 주교 문장. 세상 풍파에 놓인 교회와 박해받는 조선 교회를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교회 전통에 따라 주교 문장도 만들었습니다. 문장은 주교가 교구를 순시할 때 쓰던 모자와 양옆으로 교구장을 상징하는 삼단 수술이 있고, 그 안에 방패 모양의 문장이 있는 전통 양식을 취했습니다. 문장에 드러난 목장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로서의 사목 책임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방패 모양의 문장 한가운데에 빛나는 십자가를 새기고 그 왼편에는 ‘Ave Maria’의 첫머리 글자인 A와 M을 겹쳐놓았고, 반대편에는 교회와 아시아로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를 태운 범선을 상징하는 배를 새겨 놓았습니다.

방패 바탕의 줄은 바다를 상징하고, ME는 ‘Mission Etrangeres’(외방 전교)의 약자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임을 드러냅니다. 한마디로 저의 주교 문장은 세상 풍파에 놓인 교회를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조선 선교를 자원한 이후에는 박해받고 있는 조선 교회를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저는 조선 선교에 대해 그 어떤 환상도 품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든 어려움을 예상합니다. 조선으로 가다 중국에서 체포돼 죽을 수도 있다는 것까지 계산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이들이 우려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게 “성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알려진 길이 전혀 없어요. 아무도 주교님과 동행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걱정해 줬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불가능한지 시도해봐야 합니다. 길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두고 봐야지요”라고 응대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저 역시 모든 장애와 난관을 피하지 않고 꿋꿋이 이겨내야 한다고 매일매일 마음을 다잡고 있으니까요.

사실 제가 조선 선교를 자원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조선 사람들이 우리가 채택할 수단들을 알려주고, 따라가야 할 길을 그려줄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곧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사신 자격으로 북경에 오는 사람들 외에는 나라 밖으로 결코 나가 본 적이 없어 자기 나라밖에 모르는 불쌍한 백성, 바다에 대한 공포심을 타고났고 자기가 사는 구역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여행할 줄 아는 백성은 그와 같은 지침들을 제공하기에 그다지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선 사람들을 만나러 나서지 않는다면 그들은 절대로 우리를 맞이하러 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주교품을 받은 직후 페낭으로 떠났습니다. 페낭은 샴대목구장 관할이었습니다. 1827년 9월 22일 반포된 포교성성 교령에 따라 싱가포르 선교지도 샴대목구장 재치권에 속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의 위임을 받아 말레이반도에 속한 지역의 사목을 담당했습니다. 페낭 신학교에 거주하면서 샴대목구로 파견된 신임 선교사들을 받아 필요한 지역에 배치하고 선교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면서 페낭에서 1829년 10월 1일과 1830년 1월 31일 교황청 포교성성에 조선 선교를 자원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조선으로 가고 싶다면 당장 떠나십시오”

저는 조선 선교 자원을 희망하는 편지를 교황청 포교성성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지도 신부들에게 여러 차례 보내면서 그 답을 오랜 시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답도 듣지 못했지요. 그러다 2년을 훌쩍 넘긴 1832년 7월 초에 포교성성 마카오 대표부장 움피에레스 신부로부터 한 통의 짧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조선으로 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십시오. 주교님의 조선 입국을 위하여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샴대목구장 주교님께서 선종하셨다면 직무 대행을 임명하시고 가능한 한 빨리 마카오로 오십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조선으로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는 동안 감격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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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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