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는 지난 3년간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입각해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지속해 오고 있다. 그 안에서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함께 선정한 의제를 바탕으로 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공동 방향성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삶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그동안 ‘하느님 백성의 대화’를 여섯 차례 가졌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며, ‘사목 기획위원회’도 만들어 현재까지 80회 정도 회의를 이어오고 있다. 이는 하느님 백성의 소리를 경청할 뿐 아니라 사목 의제를 ‘함께’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가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함이다. 물론 각자 다양한 생각으로 인해 참여에 대한 열성은 다르지만, 그 다름마저도 서로 존중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하느님 백성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주교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르면,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는 교구 안에서, 그리고 교구와 보편 교회 간의 친교에 봉사하도록 세워진 사람이다. 그러기에 주교는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인 사제들과 부제들, 축성 생활자들과 신자들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주교들과 교황님과의 관계 안에서 친교의 사명이 매우 중요하게 요구된다.
코로나가 끝날 무렵 경찰 사목 담당 신부의 인도로 교구청 성당에서 경찰 신분의 교우들을 대상으로 견진성사를 집전한 적이 있다. 그때 군종교구에서 봉사하던 생활성가팀이 전례음악을 맡았는데, 그날 전례에 딱 들어맞는 성가 선정으로 견진 대상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전례를 집전하는 나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주교는 교구에서 복음 선포와 전례의 일차 책임자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이끌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가장 낮은 이들을 우선해야 한다. 일치의 가시적 표징인 주교는, 특히 복음을 선포하고 성령께서 일으키신 다양한 은사와 직무를 식별하며 공동체를 조화롭게 하는 직무를 부여받았다. 그 직무란 바로 공동 책임성, 하느님 백성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토대로 한 설교, 겸손과 회심으로부터 나오는 성화, 그리고 전례 거행을 통해 구현된다.
주교, 시노드 촉진자로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
주교는 교구 안에서 원활한 소통을 위해 시노드를 시작함과 동시에 그 촉진자로서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한다. 또한 식별과 결정 과정에 더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위원회’의 기여를 통해 ‘모든’ 신자의 참여를 중요하게 여긴다. 주교가 시노달리타스에 확신을 갖고 임하면 사제와 부제, 평신도와 축성 생활자들의 참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주교는 모든 이에게 시노달리타스의 모범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회의 때 많은 말을 하기보다는 위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공동체적 합의에 이를 수 있게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
교회를 하느님의 가족으로 이해할 때 주교는 모든 이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반면 개인들의 주장이 강한 사제단 안에서는 주교의 권위가 위기에 놓이는 순간들이 있곤 한다.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느 교구장님이 사제들에게 하신 말씀이 가끔 귓가에 맴돌곤 한다. 그러기에 주교의 모습이 행정적 권위와 동일시되지 않으려면, 주교직의 성사적 본성과 사목적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구장으로 착좌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많은 이가 교구의 비전에 대해 듣기를 원했다. 새 교구장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은 탓인지, 재임 시기에 이룰 비전을 한 번에 제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하지만 주교들은 행정적·법적 업무의 과중함 속에 있고 그러한 과중함은 그의 사명을 충만하게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주교 또한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주교라고 해서 인간적인 지지와 영적인 지지를 항상 받는 것도 아니다. 의사 결정할 때의 외로움과 세상사의 괴로움 또한 드물지 않다. 한편으로는 주교의 사명이 가지는 본질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주교들과 사제단 안에서 참된 형제애를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일 년에 네 차례 갖는 한국 주교단의 영성 모임은 교구를 초월한 형제적 연대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교구 초월한 형제적 연대로 ‘하나의 교회’
주교는 교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여러 은사의 풍요로움을 인정하고 보호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또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역사적 현장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자리다. 정치·사회적 문제라고 해서 멀리해서도 안 되며, 그에 따른 교회의 사회 교리를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근래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이태원 참사에 대해서도 교회의 시선으로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진상규명에 최대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주교들 간의 충분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신앙과 윤리 문제에 개입하기를 요청받으면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주교의 단체성과 신학적·사목적 관점의 다양성 사이에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하다. 공동 책임성의 바람직한 형태와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주교의 책임성을 제시하는 신학적·교회법적 기준을 정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Praedicate Evangelium) 같은 최근 교도권 가르침에 비추어 성품 성사와 재치권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보다 현실에 맞게 유연한 자세로 검토해야 한다.
교회가 시노드 정신을 살려면 미성년자와 취약한 이들을 잘 돌보기 위하여 정한 절차를 투명하게 존중하는 문화가 꼭 필요하다. 성 문제 예방을 위한 구조를 개선하고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교회 내 성폭력 같은 민감한 문제는 주교들에게 아버지의 역할과 재판관의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데 어려움을 준다. 법적 업무를 교회법적으로 명시된 다른 기관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주교의 권위 행사 방식, 교구 재산 관리, 참여 조직의 작동을 원활히 하고, 그리고 온갖 형태의 남용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주교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검증할 구조와 과정들을 교회법적으로 정의된 형태로 구체화해야 한다.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라면 권한의 남용에 맞서 당연히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한다. 주교 평의회(교회법 제473조 제4항)와 교구 사목 평의회(교회법 제511조, 동방 교회법 제272조)를 의무화하고, 법적 차원에서도 공동 책임성 관련 교구 조직들을 더욱 활성화하여야 한다. 또한 다수의 평신도·축성 생활자의 의견을 경청하고 부당한 압력이 없도록 하면서 하느님 백성의 자문을 확대하여야 한다.
주교들은 각 교구의 고유성을 넘어 지나치게 독립적인 기능들을 재고하고, 필요시엔 관구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구 간 벽을 뛰어넘어 교류는 물론이고 상호 지원을 통해 좀 더 긴밀한 만남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통해 관구에서 국가적 차원의 교회로, 세계 교회로 나아가는 ‘하나의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