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 성공이 절대적 가치가 돼버린 사회에서 교육은 입시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좋은 학생’이란 심성이 바른 학생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뜻하게 됐다.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학생’이 되길 바라고, 학교는 그 수요에 따르는 서비스 제공자로 변했다.
가톨릭학교들도 이러한 교육환경에 적응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왔다. 교육자들은 ‘복음화와 전인 교육을 사명으로 하는’(「한국 가톨릭학교 교육 헌장」 제2장) 교육이념에 무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체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가톨릭학교교육포럼(공동대표 조영관 에릭 신부·김율옥 안젤라 수녀, 이하 교육포럼)은 이처럼 ‘가톨릭학교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2003년 활동을 시작했다. 교육 주간(5월 20~26일)을 맞아 가톨릭학교를 가톨릭학교답게 하고자 고민하며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길을 제시해 온 교육포럼에 대해 알아본다.
■ 정체성에 대한 자발적 탐구
한국 교육 제도와 문화에서 가톨릭학교가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은 도전적 과제였다. 1970년대 이후 종교교육 및 종교행사 규제 등 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뤄지며 가톨릭적 교육이념을 실현하는 노력은 큰 제약을 받았다. 더구나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성적 위주 학교교육 여건에 순응하며 ‘준공립화’의 함정에 빠졌다.
이런 현실에서 정작 가톨릭학교 교육 현황과 전망에 대한 연구가 소홀한 것이 문제였다. 1986년 가톨릭교육재단협의회가 발족해 교육 관계자들의 연수, 정보 교환, 상호 친목 도모를 해왔지만, 내용이 부족하며 활동 빈도와 학교들의 참여가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교육포럼은 이렇듯 실질적 연구모임이 전무한 상황에서 교육 관련자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전문적 연구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장에 대한 필요성 위에 출범했다. 당시 동성고 종교교사로 재직하던 조영관 신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평소 가톨릭학교 교육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던 김경이 교수(클라라·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김율옥 수녀(당시 성심여고 종교교사) 등 교육자들의 자발적 학습 공동체로 첫발을 내디뎠다.
가톨릭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과 대학 연구자들이 정기적 연구 및 연수 활동을 통해 가톨릭학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재 공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교회적 시각에서 성찰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교육포럼의 핵심 취지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월례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 학술 활동, 교사들이 소명 의식을 고취하며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감을 맺는 장이 되는 3박4일 ‘생명의 교육자’ 집중 연수 프로그램 등을 주요 활동으로 펼쳤다.
초기에는 가톨릭학교 교육에 대한 연구가 거의 수행된 적이 없고 참고할 도서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세미나는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 종교교육의 목적과 이념, 교육의 종교성 회복을 위한 접근 등 평소 회원들이 고민하던 주제들이 선정됐다. 심포지엄은 ‘가톨릭학교 교사의 영성’, ‘앎과 삶을 통합하는 가톨릭학교 교육’ 등을 주제로 교육자들이 그간 수행해 온 가톨릭학교 교육 실천의 이론적 토대부터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이후 세미나는 교육의 주요 요소인 교사, 학생뿐 아니라 교육 과정·철학, 대안학교, 리더십 등 폭넓은 주제에서 가톨릭학교다운 시각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시의성 있는 주제로도 나아갔다. 학생 인권 조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2012년에는 ‘가톨릭교육과 학생 인권 조례’를 주제로 평신도 교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교육포럼은 국내 가톨릭 관련 연구자, 교사, 다양한 교육 공간에서 가톨릭교육을 펼치는 사람들이 가톨릭교육을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 및 출판에도 힘썼다. 2021년에는 신학·종교교육학자 토머스 그룸(Thomas Groome) 교수의 저서 「생명을 위한 교육」을 번역했다. 가톨릭 교육자로서 알아야 할 인간론, 사회론, 우주론, 인식론, 영성, 가톨릭의 개방성과 환대에 대해 제시하고 그를 토대로 한 교육론을 내용으로 담은 책으로 일부 학교에서 교사 교육에 활용되는 저서다.
또 주교회의 교육위원회(위원장 문창우 비오 주교)의 의뢰로 2020~2021년 교육포럼이 주축이 되어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헌장」과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지침서」 개정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학교 현장에서 널리 공유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전통성, 실천성, 명료성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렇듯 가톨릭교육의 정체성을 다방면으로 구현해 온 교육포럼은 자발적 실천 공동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조 신부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스스로 모여 배우는 과정에서 참가자 개인뿐 아니라 교육 공동체 모두가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서로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학생들을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실현시키는 가톨릭학교들의 ‘생명의 교육자’라는 정체성과 방향성도 날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방향성 뚜렷해진 전인교육
전인교육은 복음화와 함께 가톨릭학교 교육의 좌우 날개로 제시되는 목표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일선 교사들이 명확한 방향성을 찾기는 어렵다. 가톨릭 전인교육은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한 인간을 양성하는 일반적 전인교육과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포럼은 추상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 전인교육이 곧 예수의 가르침을 내면화한 ‘그리스도적 인간’을 육성하는 것임을 교사들에게 일깨워 준다. 이해타산, 가치전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선으로 나아가는 하느님의 모상을 육성할 수 있도록 가톨릭학교만의 전인교육에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
참가자들이 전인교육 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서 교육포럼은 큰 호응을 거두고 있다. 2013년부터 교육포럼에 참여해 온 박문여자고등학교 남상보(바오로) 교사는 “‘가톨릭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 참여한 이후 전인교육을 위한 학급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남 교사는 “동료 가톨릭학교 교사들의 교육 비전과 영성을 토대로 나누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부터 교육포럼에서 활동한 소명여자고등학교 김종오(마티아) 교감은 “각종 교회 문헌 가르침을 공부하며,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교사들의 고민들을 알아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교사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헌장」과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지침서」 개정 작업에도 동참한 김 교감은 “학문적이고 추상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교육 사명을 구현하며 나는 현장에서 어떤 교사로 살아갈 것인지 되뇌는 계기가 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