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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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세상 속에서 ‘복음의 기쁨’ 살고 증언하는 예수님의 제자

[함께 걷는 시노드 여정] 8. 평신도와 시노달리타스 / 현재우(에드몬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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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원에 대해 자각하고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사명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복음의 기쁨’ 선포하고 증거하는 교회 지향

시노달리타스는 여전히 많은 신자에게 낯선 단어입니다. 물론 지난 2년 동안 많이 들어서 이제 그만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느끼는 신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여 교회 안에서 시노드를 하는지, 이런 교회의 움직임이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 신앙을 갖게 되는 동기는 개인적 이유입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생활이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 혼자 신앙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왜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나요?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 공동체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했고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교회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이를 사랑의 삶으로 실현하신 구원 여정에 함께 하도록 초대받은 공동체입니다. 내가 세례를 받고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은 나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초대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여러모로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이들의 공동체이지만, 예수님은 바로 그런 제자들에게 당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교회는 교계제도를 만들고 전례도 확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나약한 이들로 이뤄진 교회는 많은 잘못을 범하기도 했고, 하느님의 뜻과 멀어지는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정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교회를 쇄신하고자 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세상을 등진 교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회, 교계제도가 너무 강화되어 공동체성이 약화된 교회 현실을 고백하고 새롭게 태어나고자 열린 공의회입니다.

공의회가 끝난 지 60년이 되었어도 교회의 변화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공의회 정신을 이어받아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교회가 되자고 전 세계 모든 교회 구성원들을 초대한 것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입니다. 이전 주교시노드는 주교들이 참여하는 회의였으나, 이번 시노드는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 즉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하였기에 처음으로 남녀 평신도와 사제·수도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경청 모임에서 많은 평신도 긍정적인 체험

한국 천주교회도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교구별로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하는 자리를 마련해 서로의 소리를 경청하고 교회 현실에 대해 함께 논의한 종합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을 모아 한국 교회 의견서가 만들어졌고, 다시 대륙에서 모여 전체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노드 총회 제1회기가 작년 10월에 열렸습니다.

저는 각 교구의 종합의견서를 다 살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매우 많은 평신도가 참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종합의견서에는 평신도들의 시노달리타스 체험이 녹아있고 인상적인 내용도 꽤 있었습니다. 그 중에 중요하게 다가온 것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먼저 주목할 점은 많은 평신도가 경청 모임에 대해 긍정적인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경청은 단지 잘 듣는 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환대하는 것입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가 인격적 만남을 체험하면서 성령 안에서 대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경청 모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교회의 약점도 함께 보게 되었다는 고백도 인상 깊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정직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회심하도록 이끄십니다. 교회의 부족함에 대한 고백은 단지 교회가 잘못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로 이끕니다.

또한 시노드 과정에 참여하면서 이 과정이 교회 쇄신에 필수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모상이고 성령께서 진정한 교회의 주인임을 체험했다는 나눔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변부 신자·비그리스도인·시민 사회의 목소리를 통해 교회가 세상과 함께 걸어가는 존재임을 확인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인지 다 알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했음에도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희망과 책임감을 갖게 해주셨습니다.



평신도, 교회 일원으로서 사명 의식 부족

그러나 이런 체험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살아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바뀌어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저는 이 중 몇 가지에 집중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평신도들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사명 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한국 교회 시노드 과정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부르심에는 사명이 함께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복음 사명을 의식하지 못하고 내 문제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그분의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가 교회 사명을 함께 책임지는 일원이라는 분명한 의식이 있을 때, 우리는 보다 능동적으로 하느님 뜻을 살피고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며, 그 과정에서 신앙이 가져다주는 참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둘째, 이런 자각을 갖고 살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게 양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번 시노드 여정에 또 한가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평신도 양성입니다. 이는 단지 교리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성경 묵상과 삶에 대한 성찰을 통해 배워가고, 배운 지혜를 서로 나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제1회기 종합보고서 14항에서는 평신도가 단지 양성의 대상이 아니라 양성의 공동 책임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인식이 크게 부족한 한국 교회는 평신도 양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양성은 하느님과 관계, 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는 이념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사체도 아니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의 사교 모임도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이 걸어가신 인생을 함께 살고자 하는 신앙인들이 그 여정에서 배운 신앙과 삶의 관계에 대해 서로 나누고 격려하고 배우는 공동체입니다. 이 과정이 ‘친교’입니다. 친교를 체험해야 세상에서 복음적 삶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삶을 나누는 분위기가 자리 잡도록 모두가 노력해야겠습니다. 그 가능성을 시노드의 경청 모임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넷째, 자신의 신원에 대해 자각하고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사명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고유한 카리스마를 살아가는 평신도 공동체들이 격려받고 활성화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하고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애쓰는 많은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것도 평신도들이 사명에 참여하는 것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요인일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희망을 갖는 것은 하느님이 이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교회를 원하시고 평신도들은 세상 속에서 ‘복음의 기쁨’을 살고 증언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시노달리타스)은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 함께 하자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우(에드몬드)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종교학 박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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