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졌다. 인구 소멸 1순위 국가라는 우려 속에 출산율 회복을 위한 분석과 대책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이에 아버지 역할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장’이라는 이름의 가부장적 아버지 이미지는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아버지 나름의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이미 교회는 ‘아버지학교’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길을 동반하고 있다.
아버지들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귀한(?) 오늘날,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대교구 아버지학교를 수료한 아버지들이 그간의 경험을 솔직하게 나눴다. 29·27세 남매 아버지 문봉주(스테파노, 60)씨, 18세 쌍둥이 딸을 둔 김도현(요한 사도, 45)씨, 11살 딸바보 최근호(루치오, 49)씨가 들려주는 이 시대 평범한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탄생, 새로운 세계
“‘3kg 남짓의 작은 생명에 온 우주의 기쁨이 요동친다.’ 내 자식을 처음 봤을 때 감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가 아닐까요?”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곧바로 어깨도 무거워진다. 문봉주씨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가 IMF 경제위기 시기였다”며 “선배들 해고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도현씨는 “쌍둥이라 처음부터 모든 것에 두 배가 지출됐다”고 했다. 최근호씨는 “그리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내 자식만큼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먹고 살아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아버지들은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가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책임감이 더해졌다. 이땅의 아버지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 들에겐 커가는 아이들이 주는 힘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원동력이 됐다. 최씨는 아내의 뇌종양 수술과 산사태로 집이 피해를 입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아내와 10살 난 딸을 캐나다로 보냈다. 휴양과 교육적 측면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는 “홀로 일하는 게 너무 힘들지만, 매일 밤 딸과 영상통화 한 번으로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며 “그 순간 살아가는 이유를 느낀다”고 했다. 자식은 아빠들이 사는 이유다.
사춘기, 아버지는 처음이라
자녀의 기질과 부모의 성향에 따라 크고 작은 어려운 순간을 마주하는 사춘기. 문씨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장남인 아들에게 한 달에 300만 원 이상 사교육비를 지출했지만, 공부와 점점 멀어져가는 아들을 보며 한숨이 늘었다. 때론 매를 들고 엄하게 훈육했다. 그럴수록 아들은 더 엇나갔다. “초등학교 6학년 즈음부터 시작된 거 같아요. 저를 소 닭 보듯 하더라고요. 중고등학교 때도 계속 그랬죠. 군대 갔다 오고서야 대화다운 대화를 한 것 같습니다. 10년을 적막 속에서 살았습니다.”
김씨는 고2 딸을 뒀다. 게다가 쌍둥이다. “딱 10살 때까지 예뻤던 거 같아요. 친구들과 놀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잘 안 찾더라고요. 중학교 때부터 거의 말을 안 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별 대화는 없어요. 시험 기간이면 더 예민해지고요. 그래도 남들에게 버릇없이 행동하지만 않으면 절대 잔소리 안 합니다. 자식이라 하더라도 다른 존재니까요.”
최씨는 “딸이 지금 11살인데 벌써 사춘기가 온 거 같다”고 했다. “엄마에게 그렇게 말대꾸를 한다더라고요. 저는 딸바보거든요. 받아주는 사람 한 명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딸 얘기라면 무조건 다 들어주고 있습니다.”
문씨는 자녀의 사춘기 과정을 엄하게 다스렸고, 김씨는 적절한 거리 두기로, 최씨는 무조건적인 받아들임으로 자녀의 성장 과정에 함께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는 자녀의 사춘기. 아버지가 처음인 이들은 각자가 보고 배운 방식대로 자녀와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있다.
아버지학교를 통한 성장
여러 난관(?)을 경험한 아버지들은 신앙 안에서 답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학교를 찾았다.
아버지학교는 총 5주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아버지 역할을 배우는 동시에,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매주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아내와 자녀에게 편지 쓰기·축복기도 하기·안아주기 등을 숙제로 내준다. 그 덕에 자연스레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일찍이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최씨는 “부끄럽지만 아버지학교 교재 수정 작업에 참여한 최근에 와서야 아버지의 영향력을 절절히 깨달았다”며 “결국 자녀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을 수밖에 없다는 ‘동일시’ 개념을 인식하곤 평소 내 습관과 태도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부부 관계’가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아내에게도 전보다 훨씬 살갑게 대했다. “교재 작업이 끝날 즈음 아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더군요. 혼자서는 결코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무게를 오롯이 견디는 게 아니라, 힘들면 푸념도 하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거죠.”
아들과 몸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던 문씨는 아버지학교에서 배운 ‘기다림’과 ‘동행’의 가치를 받아들였다. “기다렸습니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죠. 아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7~8년 정도 기다린 것 같아요. 지금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정보력이 좋아 현명한 판단을 내립니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안 됩니다. 자녀보다 조금 뒤에 걸으면서 힘들어하면 손을 내미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해외로 가족여행도 가고, 밤새 술도 마시면서 기분 좋으면 춤도 추는 사이가 됐습니다.”
김씨는 “자녀도 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등 나름대로 관계를 정립하고 있지만 답답할 때가 있다”며 “그럴 때 아버지학교에서 먼저 경험한 분들의 진솔한 나눔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들은 10년·20년·30여 년을 아버지로서 쉼 없이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은 ‘돈’이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만 가정이 안정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의 중요성 등 아빠들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었다.
김씨는 “지금도 그렇지만 경제적 버팀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왔다”며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난했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때가 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은퇴를 앞둔 문씨도 “뒤처지지 않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돌아보니 돈을 벌어다 주는 게 능사가 아니더라고요. 시간을 써서 함께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습니다. 지금 출산율도 문제지만, 정말 다음 세대가 희망을 갖기 위해선 100 유급 출산 휴가 1년을 준다든지, 정부와 기업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도 지금부터 시간을 잘 써서 살고자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그대로 닮는다고 하잖아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려고요. 많이들 노후 준비를 돈으로 하지만, 저는 ‘봉사활동’으로 정했습니다. 일찌감치 시작했고, 연습은 끝났습니다. 은퇴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 따라서 완벽한 아버지도 없다. 이들은 각자의 길에서 ‘부부의 행복’, ‘적절한 거리 두기’, ‘기다림’, ‘동행’과 같은 가치로 답을 찾고 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어 가는 중이다. 길을 잃은 또 다른 아버지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