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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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조광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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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 나선 신앙 여정


어릴 적 강원도 동해에서 살았어요. 아버지는 그곳에서 제방공장을 운영하셨고요. 날품팔이를 하는 노동자들이 종일 들락거리는 시장 한가운데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그러면서 삶과 죽음의 문제에 눈을 떴어요. 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삶의 진로를 정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처음 성당에 나가게 됐어요. 집 앞에 성당이 있었고, 성당 다니던 여러 친구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성당에 나간 거죠. 하느님께서 불러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공부를 해서 신앙을 얻은 게 아니고 인연에 의해서 그렇게 된 거니까요. 모든 것에 민감했던 사춘기 시절 종교를 접하면서 가슴이 굉장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에 관여하고 계시구나 하는 그런 체험을 했어요.


세례를 받고 새로 눈뜬 이 신비로운 세상에서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딱히 사제가 되겠다고 마음먹지는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본당 신부님이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사였는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소개해 주셨어요.



■ 사제이자 화가로서의 삶


수도회에 입회하고 파리 외방 전교회의 앙드레 부통(1914~1980) 신부로부터 판화와 벽화, 동양화 등을 배울 기회가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기에 저에게는 큰 경험이었어요. 사제품을 받고 수도회 양성팀에서 일하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출판국장으로 일도 했어요. 그러다가 독일로 미술 공부를 떠나게 됐어요. 수도회에서 공부하고 오라고 해서요. 내가 원했다기보다는 교회에서 필요하다고 하니 떠났던 거죠.


그곳에서는 현대 미술을 공부했어요. 현대 추상화를 전공했죠. 그런데 현대 미술에서는 장르 구분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자기가 무언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능력대로 하는 거죠. 광범위하죠. 이를테면 연극도 미술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재료나 형식에 구애 없이 무언가 표현하면 그게 다 미술이에요.


교회 미술이라는 게 따로 없어요. 미술을 공부하고, 작품에 그리스도교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담으면 그게 바로 교회 미술이 되고 성미술이 되는 거죠. 제가 사제이다 보니 관심이 교회 안에 있고, 그리스도교적인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된 거죠.


저도 교회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했어요. 회화 외에도 조각과 판화, 스테인드글라스 등 필요한 것들을 배우면서 작업을 해요. 컴퓨터 그래픽도 배웠어요. 스테인드글라스의 경우는, 당시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었어요. 당시 교회를 많이 짓고 있었기 때문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 대한 요청이 많았죠. 그 시대에 의뢰를 많이 받아서 유리화를 많이 했죠.



처음 성미술 활동을 한 건 강릉 임당동성당이었어요. 이후로 줄곧 의뢰가 들어오면 가능하면 작업을 같이 했어요. 교회의 사제로서 내가 필요하다는데 순명한 거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부산 남천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요. 단일 작품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하네요. 크다고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말이죠. 


성당의 특수한 환경에 맞춰 작업을 하는데, 손으로 그 밑그림 작업을 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았어요. 당시 286 컴퓨터로 그래픽 디자인을 했죠. 이 그래픽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많은 작업을 할 수가 있었어요. 손으로 직접하는 아날로그와 컴퓨터 작업을 접목시킨 거죠. 대구범어주교좌성당 작업도 기억해요.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물론 저 혼자 작업하는 건 아니에요. 보조 작가와 스테인드글라스 공장 등의 도움을 받는 협업을 통해 이뤄낸 것이죠.




■ 동검도 채플은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대한 보답


교회 미술, 즉 성미술 발전을 위해서는 작가와 교회가 모두 노력해야 해요. 예술에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작용해요. 작가는 진심으로 기도하며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사람을 그려놓고 뒤에다 후광을 넣는다고 다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그린다고 무조건 성미술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또 교회는 작가에게 의뢰하며 작가의 재량을 인정해 작가가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죠. 교회 미술이 사치가 아니라 종교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는 것이라는 인식이 더 필요해요. 복음의 메시지를 창조적으로 이 시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희망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저는 이게 바로 토착화라고 생각해요.


이제 사제로서 현업에서는 은퇴했어요. 여전히 미술 작업은 하지만요. 마지막으로 내 의지로 일을 벌인 게 있는데요, 그게 바로 강화도에 있는 ‘동검도 채플’이에요. 삶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내가 받은 은총을 내놓기 위해서 만들었죠. 교회에서 봉헌한 내 삶을 모두 모아 작은 경당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놓기 위한 곳이에요. 24시간 열려 있는 이 아름다운 곳에 사람들이 와서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간과 분위기로, 누구나 답답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괴로울 때, 어디론지 갈 수 있는 곳이에요.



◆ 조광호(시몬) 신부는
1947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1977년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1990년 독일 뉘른베르크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국내외에서 30여 회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으며, 대구 주교좌범어대성당, 부산 남천주교좌성당 유리화와 서울 서소문성지 기념탑 및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구간 대형 벽화 등을 제작했다. 현재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대표이자 인천가톨릭대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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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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