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일상이 돼버린 시대, 1인 가구 청년들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그마저도 거르기 일쑤다. “귀찮아서”라는 괜찮은 척과 달리 곧 “세 끼 모두 잘 챙겨 먹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라고 말해 온다.
치솟는 물가에 기성세대가 한숨을 내쉴 때 사회초년생,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생활자, 구직자인 청년 세대는 체념을 내쉰다. 건강에 나쁜 줄 아는데 별수 없이 즉석식품으로 손을 뻗으며 “집밥을 먹고 싶어도 혼자 먹자고 한 끼 차리는 데 드는 품과 비용이 얼마나 큰지” 이해를 바랄 뿐이다.
평신도 공동체 한국 CLC(Christian Life Community)를 중심으로 한마음인 사람들이 세운 사회복지법인 ‘사랑의힘’(이사장 김연경 마리안나)은 주말일수록 부실하게 식사하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고자 지난해 6월 청년 주말 식당 ‘청년공간 모락모락’(공간지기 신광식 알로이시오, 이하 청년공간)을 열었다. 8일 청년공간 첫 생일을 맞아, 청년들을 있는 그대로 환대하는 무료 식사 나눔 현장을 찾아갔다.
■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환대
서울 곳곳에 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리던 8일 정오 무렵. 초여름 불청객 비가 말리는 주말 외출이지만 청년공간은 점심을 먹으러 온 청년들로 가득 찼다. 설거지, 반찬 채워넣기, 테이블 닦기로 여념이 없는 봉사자들은 “1시간도 채 안 돼 벌써 60명 넘게 다녀갔어요”라며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만면엔 미소가 넘쳤다.
“늘 맛난 집밥이지만 오늘은 더더욱 풍성하고 맛있었어요!”
메뉴는 언제나처럼 김치찌개 백반이지만 이날은 청년공간의 생일인 만큼 정성 담긴 반찬들이 곁들여졌다. 청년들은 김치찌개의 단짝 계란말이, 잔치날 빠질 수 없는 잡채, 열무, 오이, 무, 양파가 골고루 들어간 비타민 가득한 장아찌를 담아 가며 연신 “맛있어요”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봉사자들은 “많이 준비했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얼마든지 가져가세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후식으로 마련된 한입 크기 수박은 청년들이 여름을 반갑게 맞게 해주는 세심한 배려가 깃들었다. 봉사자들이 직접 구운 바나나 초콜릿 머핀도 잊지 않고 하나씩 챙겨줬다.
이렇듯 청년공간은 그 이름대로 환대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자리다. 따스하고 든든한 밥으로 사랑이 피어나는 즐거운 자리, 청년들 마음 안에 일어나는 좋은 생각들이 세상으로 ‘모락모락’ 퍼지길 바라는 진심이 가득 담겼다.
한국 CLC 회원들과 ‘사랑의힘’이 청년들과 동반하고자 3000원 김치찌개 식당을 연 것은 늘어나는 1인 가구 청년들이 마주한 식사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해서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은 끼니 당 평균 8537.1원, 독립 가구의 경우 9238원을 지출했다. 올해 적용 최저임금(9860원)을 고려하면 하루 3끼를 제대로 갖춰 먹기 위해 매일 3시간치 급여를 소모하는 셈이기에,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봉사자들은 “청년들이 밥을 굶는 일은 없더라도 다양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같은 조사에서는 음식의 양과 질에서 충분하지 못하다고 응답한 청년들이 50.3를 차지했다. 물가 상승 때문에 식비 지출을 줄이고자 저렴한 구내식당, 편의점 간편식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가격이 몇백 원씩 올랐다.
주말은 특히 구내식당이 문을 닫을뿐더러 청년들이 함께 식사할 동료가 없어 더더욱 식사를 거르게 된다. 봉사자들은 이렇듯 절박한 식사 문제에서 청년들이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하지 않길 바라며 토요일과 주일 점심?저녁 4끼 ‘환대’의 문을 열고 있다.
신광식 공간지기는 “식사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위로의 힘이 있다”며 “청년들이 마음 편히 와서 따뜻한 밥을 통해 위로받고 어려운 조건들을 이겨갈 힘이 돼주고 싶다”고 전했다.
■ 교류할 수 있는 공간
청년공간의 취지는 단순한 주말 밥집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관계망을 맺는 거점이 되는 것이다. 1인 가구 청년들이 고시원, 원룸 등 고립된 공간을 벗어나 사람의 온기를 나눌 수 있도록 청년프로그램 ‘집밥클래쓰’, 자원 재순환 코너 ‘당근코너’를 열고 있다.
집밥클래쓰는 청년들이 직접 요리에 참여하고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강사의 시연 후 청년들은 3인 1조로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며 대화를 나눈다. 돼지고기 토마토스튜와 두부 카프레제(카프리풍 샐러드), 가지덮밥과 가지새싹말이처럼 건강하면서 일상적이고 세련되기까지 한 요리를 가르쳐 준다. 청년들은 ‘나는 이렇듯 존중하고 대접할 만한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고 생활에서 쉽게 영양 균형을 챙기면서 동시에 소통하고 나누게 된다.
집밥클래쓰 1기에 참가했던 정정은(34)씨는 “건강하고 정성 담긴 요리를 배우는 것도 즐겁지만, 얼굴만 알던 단골 청년들과 말꼬를 트니 ‘혼자’를 수월히 극복해 낸 기분”이라며 “무기력하게 보내기 쉽던 주말이 즐거움으로 가득해졌다”며 웃어 보였다.
평신도 공동체 주축으로 뜻모아
고물가에 식비 부담 덜어주고자
인근 구내식당 문닫는 주말에 운영
요리 함께 배우며 소통하는 시간도
청년들만의 공유공간으로도 활용
당근코너는 청년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와 필요한 물건으로 교환해 가는 코너다. 치약, 비누 등 생활용품, 햇반과 통조림 등 식재료처럼 여러 개로 묶어서만 팔아 1인 가구 입장에서는 곤란한 물품을 서로 나누면서 청년들은 “‘혼자’인 줄만 알았던 자신들이 얼마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우리’였는지” 눈뜨게 된다.
김진희(베로니카) 총괄 매니저는 “주말에 진행되는 청년 프로그램은 적고 식사 관련 프로그램은 더욱 없다”며 “주말마다 상시 운영하는 청년공간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