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기획특집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임근배 건축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건축을 통해 창작의 꿈 키워


저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났어요. 서울 필동에서 살았는데, 주교좌명동대성당으로 다녔어요. 아이들에게는 좀 먼 거리일 수 있는데, 명동성당까지 걸어 다니면서 첫영성체 교리도 받고, 아이들끼리 레지오마리애 활동도 하고 그랬어요. 당시에는 지금 가톨릭회관 자리에 성모병원이 있었는데요. 환자들에게 봉사한다고 가서 기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하는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학생들의 최대 목표는 대학 입학이었어요. 대입에 성적도 중요하지만 자기 적성도 중요하잖아요? 저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대를 가려고 했어요. 아버지께서 예술 쪽에 일가견이 있으셔서 형제들이 다 조형감각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었어요. 그런데, 미대에 가고 싶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반대가 심하셨어요. 예술가는 배고프다면서요. 그런데 형이 건축과에 가면 그림 그리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조언을 해줬어요. 건축도 창작이니까요. 그래서 건축과에 들어가게 됐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건설회사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건설이 호황기였어요. 1980년대니까 중동 건설 붐이 일었고, 중동에서 외화를 많이 벌었죠. 당시 유럽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 건축의 수준도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들을 통해 많이 배운 거였죠. 국내 건축도 품질이 좋아졌죠.


그런데, 저는 원래 건축 설계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축 설계 사무소로 들어갔죠. 대신 월급은 건설회사 다닐 때보다 1/3로 줄었어요. 그래도 창작의 꿈을 좇았죠. 건축 설계는 처음이었으니 3~4년 동안 설계 방법 등의 기술을 배웠고,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30여 곳의 성당과 수도원, 성지 지어


설계 사무소에서 경력을 쌓다 보니 건축주를 직접 상대하기도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교회 건축에 발을 디디게 됐어요. 친구네 집이 땅을 교회에 기증하고 싶어했는데, 마침 명동본당에 있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한 수녀님이 수녀원을 지을 땅이 필요하다고 해서 연결해 줬어요. 그런데 수녀회에서 우리 회사에 건축도 의뢰했어요. 그래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여주 분원을 짓게 됐죠.


제게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됐는데요. 수녀회에서 제게 건축에 대한 전권을 주신 거였어요. 보통은 교회에서 발주하면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감독에 나서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게 좀 안쓰러워요. 전문가도 아니고 잘 모르시는 분들이 지켜본들 뭘 알겠어요. 그래서 제가 당시 관구장 수녀님께 건축은 건축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수녀님들은 수녀님들 본연의 일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죠. 저를 믿으시고 설계부터 공사까지 다 해드릴 테니 맡기라고요. 놀랍게도 수녀회에서 이를 허락해 주셨어요. 그때부터는 저는 설계자인 동시에 감독, 건축주 대리인이 됐어요.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이 컸어요.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어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여주 분원을 계기로 알음알음으로 수도원과 성당, 성지 등을 짓는 일을 하게 됐어요. 한 30군데 돼요. 하나하나 다 저의 창작품으로 소중한데요, 그래도 첫정이라고 해야 하나. 샬트르 수녀회 여주 분원에 마음이 제일 많이 가요. 제 뜻을 존중해 줘서 더 고마웠고요. 그리고 제게 가톨릭 미술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연천 성 아우구스띠노회 착한 의견의 성모 수도원에도 애착이 가요. 여기에는 제가 생각했던 교회 건축 철학을 반영할 수 있었어요.


또 인천 제물진두순교성지도 기억에 남아요. 슬픈 순교사에 빠져서 며칠씩 잠을 못 이루며 설계를 했어요. 춘천교구 화현 이벽 성지는 최근 작품 중 하나인데,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의 삶에 푹 빠졌어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받아들인 신앙으로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벽 순교자의 삶을 묵상하며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이 자연스레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설계했지요.



교회 건물은 신자들이 하느님 향하도록 돕는 길 돼야


우리는 보통 교회 건물을 ‘하느님의 집’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과연 ‘하느님께서는 이런 집들이 필요하실까?’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는 교회 건물이 필요치 않으시겠죠. 개신교의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들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과연 기뻐하실까요?


교회 건물은 우리 신자들의 신심 활동을 도와주는 그릇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치스러우면 안 되고요. 교회는 예수님의 식탁이자 무덤인 제대를 덮고 있는 껍데기일 뿐이거든요. 전례에 도움이 되는 배경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공간을 잘 만들어 놓고 신자들이 하느님으로 향하도록 이끄는 길이 되도록 하는 게 교회 건축이라고 봐요.


그리고 성당이나 수도원을 건축할 때 신부님과 수도자들이 건축가를 좀 많이 믿어줬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신부님과 수도자들이 건축 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각자 전문 분야가 있기에 각자의 업무 영역을 인정해 주면 좋겠어요. 그래야 건축가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져 더 훌륭한 창작물이 나올 수 있거든요.



◆ 임근배(야고보) 건축가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0년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극동건설(주)와 (주)동우건축을 거쳐, 2005년 그림건축사사무소를 열고 현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여주분원을 시작으로 30여 곳의 성당과 수도원, 성지를 지었으며, 2021년 제24회 가톨릭미술상 본상을 받았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4-06-1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6. 28

1베드 1장 24절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