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량의 오물 풍선을 보내고 있다. 대북 전단 살포에 맞대응했을 뿐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정부는 남북 간 적대 행위를 금지한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전부 정지하고 6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초적인 대응으로 분단의 상처는 그 크기가 더 커가고 있다. 이산가족들은 “다들 우리의 존재를 잊은 것 같다”는 한탄 속에, 휴전선 저편 생이별한 가족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지쳐가고 있다.
증오가 화해를 밀어낸 지금 진정 필요한 건 기도의 회복이 아닐까. 순교자의 모후 전교 수녀회가 인천 강화 교동도에 세운 ‘화해평화센터’(센터장 강민아 마리 요한 수녀)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인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기도’의 마음을 심어주고 있다. 황해도 실향민들의 고장이자 분단의 상처 그 자체인 섬을 지키며, 이 땅에 평화의 ‘염원’을 씨앗 삼아 심는 센터를 찾았다.
■ 열린 마음으로 서로 투명하게
6월 12일, 살아 숨 쉬는 모든 피조물이 생명력을 최대로 발하는 초여름 열기와 반대로 해병대원이 검문하는 교동대교에는 냉엄한 분위기가 깔려 있었다. 소총을 맨 군인들이 코앞에 있음에도 “여기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이라며 웃는 택시 기사의 말에서, 일상이 돼버린 남북의 적대적 관계와 긴장감이 읽혔다.
옛 황해도 저잣거리를 본떠 조성했다는 골목 시장을 지나자 ‘언제 오물 풍선이 날아왔냐’는 듯 평온한 민가, 논밭, 교회가 있는 동네 어귀에 하얀 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해도식 냉면을 파는 섬 안의 한 식당처럼, 그저 평화만을 바라며 기도하는 뽀얀 손을 닮아, 미움보다 그리움만이 넘실대는 고장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센터는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마당은 ‘도로와 센터의 구분이 없도록’ 하는 설계 취지대로 장독대보다 한두 뼘 높은, 7살 어린이 키만 한 황토색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어 바람이든 행인이든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트여 있었다. 방문객이 평화를 염원하는 기도 촛불을 봉헌하거나 여러 가지 평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넓은 공간은 바깥에서 안이, 안에서 바깥이 훤히 보이도록 벽이 아닌 대형 창호가 감싸고 있었다.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우리가 잠시나마 서로를 투명하게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았어요.”
센터장 강민아 수녀가 창호를 활짝 열어 센터에 바람을 들이며 말을 꺼냈다. 그가 강조하는 건 ‘열린 마음’이었다. 강 수녀는 북한 사람들을 괴물로 묘사하던 ‘국민학교’ 시절 반공 교육을 언급하며 “그때만큼은 안 되더라도, 우리와 관계없는 남처럼 대하는 우리의 닫힌 시선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황해도와 2.6km 떨어진 교동도에
순교자의 모후 전교 수녀회 설립
남북관계 악화되는 오늘날에도
평화를 향한 염원의 씨앗 심어
“교동도에서 황해도 연백군까지의 거리는 2.6㎞에요. 20분만 배를 타면 닿죠. ‘물 건너편 우리 식구’라고 할 만큼 가족 친지가 지역에 한데 살았는데 이렇게 코앞에 두고 갈라진 거예요.”
6·25전쟁 때 연백군에서 3만여 명이 피난 온 교동도이기에 분단의 상처는 더욱 쓰라리다. 남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싸움과 갈등을 ‘마침 잘됐다는 듯 상대를 실컷 미워하고 잊어버릴’ 감정적 이슈쯤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고향과 가족을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이 볼모처럼 붙잡힌 실향민,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이렇듯 폐쇄적으로 돼버린 남북관계의 가장 오랜 희생자다.
1세대 피난민은 대부분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 40여 명이 남았다. 만나지 못한 세월은 언제까지 길어지기만 할지 깜깜하기만 해 분단의 아픔은 더욱 사무친다. 강 수녀는 “이렇듯 분단은 남의 일도 아니며 지금도 이어지는 평화의 부재임을 알림으로써, 센터가 전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비로소 열매를 맺으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 ‘기도’를 잃은 마음들에게
오후 3시 성지순례에 나선 신자들이 ‘화해 평화 교육’을 듣기 위해 센터를 찾았다. 신자들은 벽에 모셔진 성모자상 밑에 촛불부터 봉헌했다. 남북한뿐 아니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국과 대만처럼 전쟁이 일어났거나 도사리는 곳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자 꾸려진 촛불 단상이었다.
또 그 옆에 수녀들이 걸어둔 한반도 모양 방명록에도 이름을 남겼다. ‘기도를 잃은 땅을 위해 우리가 먼저 기도하나이다’라는 의미가 담겼다. 방문객이 하나씩 붙인 방명록 메모 조각도 마치 기도를 형상화한 듯 십자가 모양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은 딱 하나, 기도니까요.”
강 수녀는 “센터를 찾는 이들에게 꼭 심어주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원론처럼 주문 외듯 바치는 기도가 아니다. 용서하기 힘들수록 용서하고자 하느님께 몸부림치고 자신의 잘못과 책임부터 돌아보는 기도다. 그리스도인의 평화는 갈등의 부재에 그치는 세상의 평화와 달리 “고난을 겪으면서도 마음속에 평화를 간직할 수 있는 힘을 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에 대항하는 자유의 무기는 총과 칼이 될 수 있지만, 관성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는 반성과 성찰밖에 없다’는 한 철학자의 말도 있어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는 말씀처럼 하느님은 이미 정답을 주셨어요. 단지 기도를 잃어버린 우리 마음이 그를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죠.”
강의를 마친 신자들과 강 수녀는 센터 뒤뜰의 ‘평화의 꿈’ 소녀상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를 바쳤다. 평화의 비둘기를 북쪽으로 날리는 소녀상처럼, 북녘을 향해 원망보다 화해의 염원을 띄워 보냈다. 한때 정전과 분단의 상흔을 품고 있던 DMZ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소녀상은 평화의 비둘기를 북쪽으로 날려 보내는 모습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신자들은 “‘내 잘못도 있구나’ 하는 마음, ‘저들도 나처럼 몸부림치는 존재구나’ 하는 영적 공감으로 북녘 사람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늘 막연하게만 느껴지던 남북 화해와 평화에 신앙인다운 감각이 솟아났다”고 고백했다. 용서 다음에는 그저 ‘새처럼 자유롭게 넘나드는’ 한반도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