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앙에 기초한 그림으로는 이미 로마의 카타콤바(2세기)에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약자와 함께 망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의 기도 형태로, 그리스도교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12,1-6)에는 ‘여인과 용’의 내용으로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나고?.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라며, 그 여인을 확실하게 성모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성모님을 연상케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따라서 가슴에 아기 예수를 품고 기도하는 성모님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이 성모상은 러시아 이콘에 자주 등장합니다.
이 유형은 성모님과 연관되어 4세기부터 점차 이콘 형태로 바뀌면서 기도하는 성모님으로, 곧 ‘오란스’ 유형입니다. 두 손을 올려 ‘기도하는 성모님’을 주제로 한 성모님은 반신상 또는 전신상으로 가슴 부분에 임마누엘(아기 예수님)을 메달 형태로 함께 그립니다.
이러한 기도 모습은 그리스도교 이전부터 있었고, 죽은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간구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황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피에타스, pietas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에서 차츰 성모님의 기도로 하느님께서 불쌍히 여기실 것을 간구하는 모습으로 연결됩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이사 7,14) 성모님의 가슴에 임마누엘 모습을 품음으로써 ‘계시의 성모님’이라는 뜻의 ‘즈나메니아’, 그분의 몸체는 ‘하늘보다 더 넓다’라는 의미로 ‘플라티테라’(platytera)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비잔틴 제국의 수호 이콘인 전신상 이콘은 모신 곳의 수도원 이름과 연결되어 ‘블라케르니오티사’라 부릅니다.
이 유형으로 6세기부터 드물게 아기 예수 없는 성모상도 나타납니다. 이 성모상의 경우 양 옆에 세라핌(치천사)과 케루핌(지천사)을 넣기도 합니다. 그 상위의 천사는 성모님 가슴에 임마누엘이 계실 때만 그릴 수 있습니다.
치천사(熾天使)는 하느님께 불타는 사랑으로 붉은색, 지천사(智天使)는 지혜의 천사로 청색으로 표현합니다. 임마누엘께서는 코라(하느님께서 계신 곳) 안에 등장하시며 주변은 짙은 암청색의 색깔과 빛나는 금선으로 장식합니다. 짙은 암청색은 하느님의 현현(나타나심)을 의미합니다. 이 이콘은 하느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신비와 삼위일체와 연결하고 신성과 인성을 갖추신 그리스도를 통해 성화되어가는 교회의 모습을 상징합니다.
2. 인도자의 성모(Hodigitria)(작품 2)
‘인도자의 성모님’ 이콘은 품위를 지닌 여왕의 모습으로, 무표정한 얼굴로 상체를 곧게 세워 앞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아들을 내보이시는 형태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표현되기보다는 진지하고 지혜로 빛나는 모습에 마치 어른처럼 옷을 갖추어 입고 있는 형태입니다. 이 이콘은 5세기 때 시리아와 팔레스티나에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에 따르면 루카 복음서 저자가 복음 기록과 함께 이 형태의 그림을 그려 테오필로스에게 보냈다고 전합니다. 후에 그 그림은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황후 유도키아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눈 먼 이의 기적적인 치유와 함께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호데곤(Hodegon) 수도원에 보존되었다가 오스만 투르크 침공 때(1453년) 없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이 이콘이 성모님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이콘 속 성모님의 옷은 당시 팔레스티나 여인의 복장이라고 합니다. 이 이콘은 러시아에서는 ‘스몰렌스카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모님의 오른손은 아기 예수님을 향해 있는데, 이는 하느님 빛을 보지 못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과 신앙인들이 갈 길은 임마누엘 그리스도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유형을 ‘길의 성모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 모습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 또는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는 성경 구절을 상기시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요한 6,68-69)이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계십니다.
이 형태에서 조금씩 변형된 이콘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폴란드의 검은 성모님으로 알려진 ‘쳉스트호바 성모님’이라든지, 성모님의 얼굴과 축복하는 아기 예수의 오른손만 보이는 러시아의 ‘카잔의 성모님’ 등입니다. 모든 성모님 이콘에는 위편에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ΜΡ, θΥ이 쓰여 있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의 Ι?, Χ?가 쓰여 있습니다.
3. 자비의 성모(Eleusa, 자애로운, Umilenie)(작품 3)
마케도니아의 비잔틴 예술은 금욕주의적 엄숙함에서 벗어나 점차 내면적인 부드러움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엄격한 정면보다는 고개를 살짝 돌린 형태라든지, 불안해 보이는 표정, 완만해진 곡선 등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모성애적인 감정, 사랑을 좀 더 내면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감성적 표현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자비의 성모 이콘은 다른 성모 이콘보다는 좀더 자애로운 모성을 표현함으로써 인간미가 넘쳐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미 소개했던 ‘블라디미르의 성모상’입니다. ‘자비의 성모님’ 유형은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이 서로 얼굴을 맞댄 모성이 더욱 강조된 형태입니다. 이 형태의 성모님은 그리스도에게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인데, 마치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알려 주시는 듯합니다.
이 형태는 6세기에 콥트 지방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하는데, 모성적 표현의 신상에서부터 그 형태가 발전되었다고 여깁니다. 자비의 성모상은 특히 슬라브 지역에서 사랑 받고 있으며, 여기에서 유래하여 변화된 가정 이콘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정 이콘은 슬라브 지역 집안에 성화상들을 모셔두는 장소에 자리하는 작은 규모의 이콘들인데, 이 장소를 ‘아름다운 구석’이라고 합니다. 자비의 성모 이콘의 변이형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아기 예수님의 응석을 묘사한 키코스 수도원의 키코티사, 달콤한 입맞춤이라는 의미의 글리코필루사, 어머니의 젖을 먹인다는 뜻의 갈락토트로푸사 등이 있습니다. 모두 모성애를 강조한 이콘들입니다. 이 이콘들은 고통스럽고 고달픈 이 세상 삶에 친근하게 자비와 위안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