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시간을 내 농민 회원들의 논밭을 찾아가곤 한다. 농민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함께 땀 흘리며 가까워지기도 하고, 농사일을 배우고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하는 동안에야 그럴 정신이 없지만, 그 마을을 오가는 길이나 어느 순간 갑자기 농민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그들의 기쁨과 걱정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농민들과 함께 한 시간을 통해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일하는 곳을 찾아줘서도 그럴 것이고, 바쁜 시기에는 일손 하나가 아쉬울 때이니 반갑고 고마워하는 농민들의 모습에 스스로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다 보니 열심히 일한 것처럼 보여 다행이기도 하고, 잠시 몇 시간만 거들어도 농민들은 그 일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하시니 나로서는 다양한 수확을 하는 시간이 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일하러 가는 시간과 횟수가 줄어들었음을 느낀다. 몇 년 전부터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다 보니 외부 활동이 많아지기는 했다. 하던 일을 못 할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지만 전국본부 활동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익숙함과 편안함이 아닐까? 누군가에 대해서, 무언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판단에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고 굳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던 시절에는 하나라도 얻고 배우고자 묻고 들으면서 애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많은 것들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 더 이상 듣지도 움직이지도 않으며 이미 내려진 마음속 생각대로 결론을 짓고자 한다. 익숙함이 주는 선물도 많지만 익숙함으로 인해 잃고 놓치는 것도 많음을 생각해본다. 찾아가 들어야 하고 만나서 배워야 함을, 그렇게 농민과 소비자들이 운동의 중심에 서도록 하는 것이 농민 사목임을 다시 마음에 새겨본다.
안영배 신부(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