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길’은 2012년 9월 15일, 제주교구 6개 순례길(산토 비아조, SANTO VIAGGIO, www.peacejeju.net) 중 가장 먼저 열렸다. 제주의 서쪽 끝 아름드리 야자수가 이국적인 고산성당에서 출발해 신창성당에 이르는 12.6km 여정에는 바다와 섬, 포구와 산이 있다. 그리고 성 김대건 신부와 순교자들의 자취가 스며 있다. 그 흔적 찾아 첫걸음을 뗀다.
제주교구 고산성당 성 김대건 신부님 순례길 쉼터에서 출발해 해안 쪽으로 1.9km 걸으면 바다와 수월봉 입구에 다다른다. 한눈에 담기도 부족할 푸르고 너른 바다. 바다와 맞닿은 바위에 올라 낚싯줄 드리우는 강태공도 그 풍경에 녹아들었다. 순례자도 그 안에 들어 자구내포구까지의 해안 산책로, 여기 말로 ‘엉알길’이라 부르는 길을 밟아 걷는다. 왼쪽으로는 차귀도가 가지런히 누워 있고 오른쪽은 화산이 만든 신비로운 물결과 절벽이 조화를 이룬다.
#1845년 8월 31일 - 이제 조선으로 간다. 불과 보름 전 사제품을 받았지만 마냥 중국에 머물 수는 없었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조선 신자 여럿이 함께 배에 올랐다. 토비아의 길을 인도한 대천사 라파엘의 이름을 단 배가 상하이 항구를 떠난다. 목자가 나셨다며 기뻐할 조선의 신자들을 생각하니 김대건 신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바람이 심상치 않다.
자구내포구에 닿으니 몸 가누기 힘들 만큼 바닷바람이 세졌다. 해풍에 맨몸 드러낸 한치가 포구 곳곳에 내걸려 펄럭인다. 걸음 내내 따르던 차귀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포구를 지나 당산봉에 오른다. 옛날 이곳에 호랑이를 모시던 신당이 있어 붙은 이름. 수월봉보다 높은 해발 146m지만 오르기는 수월하다. 당산봉을 내려와 용수포구를 향하는 1.1km 길은 제주 올레길 중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을 뽐낸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푸른 바다와 차귀도를 이웃한 순례길이 고즈넉하다.
#1845년 9월 28일 - 몸도 마음도 지쳤다. 표류 20여 일.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즈음 신자 한 명이 소리쳤다. “섬이 보인다.” 차귀도다. 육지에 이르진 못했지만 우리 땅 제주에 닿았다. “성모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기뻐 덩실덩실 춤을 췄다. 육지로의 항해를 이어가려면 거친 풍랑에 몸살 앓은 라파엘호를 수리해야 했다. 아니 그 전에 감사와 찬미의 미사를 봉헌해야 했다. 제대를 차렸다.
제주교구 용수성지 입구. 김대건 신부가 오른손을 들어 순례자를 맞이한다. ‘성 김대건 신부 제주표착 기념성당’의 정면은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중국 김가항(金家巷) 성당의 모습이다. 등대 모양의 종탑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는 교회와 성인을 상징한다.
성지 마당 작은 연못 곁으로 라파엘호가 복원돼 있다. 김대건 신부가 간직했던 ‘기적의 성모상본’ 속 성모상도 라파엘호의 귀국길 때처럼 지금도 곁을 지키고 있다. 제주표착 기념관 옥상에 오르면 순례길을 함께한 수월봉과 자구내포구, 당산봉, 차귀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차귀도 너머로 뉘엿뉘엿 지고 있다. 성지 잔디마당에 둘러앉아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순례자들을 지나 성지를 나선다.
신창성당까지는 4.8km. 용수포구를 지나 풍차가 운치를 더하는 해안도로를 걷는다. 제주 해안을 따르는 180km의 일주도로 중 가장 아름답다는 이 길은 ‘성 김대건 해안로’라고도 부른다. 풍경에 취해 넣어두었던 묵주를 꺼내 들었다. ‘빛의 길’이라 이름 붙은 김대건길의 끝자락. 빛의 신비를 봉헌한다.
#1845년 10월 어느 날 - 하느님의 섭리로 제주 해안에 닿았던 라파엘호가 다시 바다로 나섰다. 조선으로의 길은 곧 순교의 길임을 일행들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꼭 1년 후 박해의 칼날 아래서 천상의 영광을 안은 성 김대건 신부가 오늘을 살아가는 순례자에게 당부한다. “교우들 보아라.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몸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
성 김대건 해안로를 따라 늘어선 커다란 풍차 너머로 붉은 하늘이 내려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