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영광 한빛 핵발전소 1?2호기 수명연장을 둘러싼 주민 공청회가 잇달아 무산되고 있다. 한빛 1?2호기는 각각 1986년, 1987년에 상업 운전을 시작해 설계수명 40년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기존 핵발전소를 계속 가동하고 신규 핵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설계수명이 만료된 핵발전소의 계속 운전을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중 하나가 주민 의견을 담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현재 무산되고 있는 공청회는 이에 대한 핵발전소 반경 30㎞ 내 6개 지방자치단체(전남 영광·함평·무안·장성군, 전북 고창·부안군)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한 절차다. 공청회는 주민 혹은 해당 지자체에 의해 무산되고 있다. 이들은 왜 공청회를 거부하는 것일까?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자체에 제출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은 지나치게 어려운 전문 용어로만 돼 있다. 게다가 ‘중대사고 대응계획’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를 상정하지도 않고, 최신 기술기준도 적용하지 않았다. 은행 계좌나 휴대폰 개통 때 깨알 같은 약관도 눈을 끔뻑이며 봐야 하는데, 주민 안전과 직결되는 보고서를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대충 읽고 서명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무안과 장성을 제외한 4개 지자체가 한수원에 보완을 요구하자 한수원은 이들 지자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한수원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초안을 접수한 지 10일 이내에 지자체가 공고·공람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으니 ‘법’과 ‘절차’에 따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면서 평가서도 규제기관 제출용이니 전문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주민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자료를 배포한다고 해명했다.
주민들은 법과 절차에 따라 대응했다. 2024년 6월 11일 전북 부안에서 진도 4.8의 지진이 나기 하루 전 함평 주민 1421명은 한수원 본사를 관할하는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에 ''한빛원전 1·2호기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주민 의견수렴 절차 중지''를 위한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아직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한수원은 예정대로, 절차대로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 145조 4항에는 ''사업자(한빛원자력본부)는 의견 수렴 대상 지역 시장·군수·구청장과 협의해 주민 대표를 선임하거나 주민이 추천한 전문가가 의견을 진술하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주민들은 공청회에 주민들이 추천한 전문가 선임을 요구했지만, 한수원 측은 공청회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주민과 지자체는 주민 의견이 들어가지 않는 공청회를 거부하고 있다. 잇따라 공청회가 무산되자 한수원은 불가항력으로 두 차례 무산되면 ‘관련 법에 따라’ 공청회를 생략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민들이 일방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법대로 항의하고, 의견을 전달해도 정부가 ‘결정한’ 핵발전소 수명연장 절차는 차근차근 진행된다. 이러니 애초 주민 의견 수렴이 요식행위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법과 절차’가 ‘공정과 정의’를 보장하지 않는 현장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 불통과 부정의의 증인이 되어주시길 부탁한다.
“많은 나라들에서 불안정한 제도로 국민들이 피해를 입고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국가 행정과 다양한 차원의 시민 사회, 또는 개인들의 관계에서도 불법 행위가 너무 흔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형식을 제대로 갖춘 법률이 제정되지만, 이는 흔히 사문화되고 맙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환경 관련 법률과 규정이 실제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찬미받으소서」 14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