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건 단순한 열정만이 아니라, 누구나 삶에서 부단히 겪는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인생 선배들 이야기에 공감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나 봐요.”
작가, 미술가, 일러스트레이터, 칼럼니스트… 글과 그림에 장래까지 꿈꿀 만큼 ‘진심’인 청년이 많은 건 이렇듯 글과 그림이 ‘누군가의 삶에 가장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장치기 때문이다.
청년밥상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이하 청년문간)은 이렇듯 글과 그림에 재능도 관심도 풍부한 청년들이 어르신들의 그림책과 자서전을 직접 쓰고 그려 선사하는 ‘세대공감잇다’ 프로그램을 2020년부터 매해 펼쳐오고 있다. 올해 참가 청년들은 세대 간 장벽을 뛰어넘는 ‘공감’을 어떻게 체험했을까. 사업 소개와 함께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 ‘세대’를 공동체로 ‘잇다’
청년문간은 청년들이 창의적 도전을 멈추지 않게 디딤돌이 되어주려는 취지로, 어르신 자서전 만들기 활동을 먼저 해왔던 잇다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허현주 마리아 막달레나, 이하 잇다)과 함께 ‘세대공감잇다’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학업과 취업, 자기 계발에 쫓겨 윗세대와 소통할 일 없던 청년들은 어르신의 추억을 그림책으로 만들며, 경험해 보지 못한 어르신 세대 이야기를 접하며 공감할 수 있다. 또 어르신은 청년 세대에게 자기 삶을 나눔으로써 서로 마음으로부터 이해하며 하나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청년(20~30대)과 어르신(70~80대) 사이의 세대도 함께하는 3세대 프로그램이다. 3~7월 매주 금요일 어르신과 청년, 마을활동가(중년)가 고루 섞여 어르신 인터뷰, 미니게임 등 함께 웃고 어울리는 통합활동,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작업에 함께했다. 이렇듯 세대 간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 이유는 무엇일까.
“윗집에 떠들고 뛰어다니는 아이가 아는 아이면 층간 소음이 덜 시끄럽게 느껴진다는 연구가 있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뛰어다니기에 신경이 곤두서죠.”
‘요즘 것들’, ‘꼰대’ 등 표현으로 대변되는 세대 간 불협화음은, 서로 다가가 관계를 맺었을 때 싹트는 공동체 정신만이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잇다 안혜영 사무국장은 “경청의 과정에서 ‘소통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소통하지 않았을 뿐이었구나’ 하는 희망적인 경험을 많이 만들어 가면 세대 간의 어려움은 극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문간 오현아 매니저는 “이렇듯 서로 다른 세대가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는 경험에 청년들이 구심점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값진 일”이라고 전했다.
■ 만남이 피워낸 ‘공감’이라는 꽃
“사람과 사람이 벽을 넘어 이루는 만남에서라면, 주인공까지 감동시키는 글과 그림을 창작할 수 있을지 몰라.”
감수성이 영그는 청춘, 유독 많아지는 생각 속에 실마리를 찾아가고자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에 맛 들인 청년이 많다. 자꾸 내면의 문을 두드리는 ‘나조차 설명하기 벅찬 무언가’를 형상화해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힌 청년들은 미술인의 길을 걷는다.
먹고사는 걱정이 앞서지만, 이들이 펜과 붓을 놓지 않는 건 글과 그림이 곧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굳이 문인·미술인 진로를 택하지 않아도 “중학생 시절부터 하루 마무리는 그림일기 쓰기”라며 글과 그림에 애정을 표현하는 청년도 많다. SNS 부계정을 열어 작품을 선보이고 의뢰을 받아 그림을 그려주는 건 사람들을 웃게 할 뿐 아니라 참된 자아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자아실현에 충실할 수 있는 글과 그림 솜씨를, 어르신 그림책 자서전 7권을 손수 펴내 드리는 ‘나눔’에 어떻게 선뜻 공헌할 수 있었을까. 참가 청년들은 “사람 사이의 경계, 심지어 나 자신이라는 담장 밖을 넘는 ‘공감’이 무언가를 쓰고 그리게 이끄는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준달 어르신의 자서전 「세상 모든 꽃들에게」 창작에 함께한 최어진(세라피나·24) 씨는 “만날 길 없던 어르신들과의 교류 속에 새로운 작품 세계를 찾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회화를 전공하는 최 씨는 본질을 탐구하는 암울한 느낌의 그림을 많이 그려 작품 세계도 다소 그로테스크했지만, 어르신 삶의 이야기 그대로를 담아내려는 노력에서 밝고 예쁜 그림체가 나왔다.
최 씨는 어르신이 손주와 돗자리를 깔고 앉아 꽃을 탐구했던 추억 속 장면을 그렸던 것을 손꼽았다. 명절에나 뵙던 조부모님과 계곡에서 놀던 그의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작품에 몰두하느라 우울했던 최 씨의 그림체가 밝아질 수 있었던 건 이렇듯 어르신과 이뤘던 마법 같은 공감 덕분이었다.
길거리에서도 늘 마주치는 어르신들이지만 그전에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최 씨는 “졸업 전시처럼 ‘현생’(현재의 삶)에 집중하느라 정작 돌보지 못하던 존재들에게서 얼마나 깊이 있는 소통이 가능한지 눈떴다”고 말했다. 그런 최 씨가 가장 소중하게 뽑은 경험은 여느 참가 청년과 다르지 않다.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졌을 때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인간의 새로운 본질을 찾았다는”는 고백처럼, 벽을 넘어서 공감하자 찾아온 성장이다.
■ 공감 속 샘솟은 애정
처음에 청년들은 ‘라포르’(믿음의 관계)를 쌓는 데 집중했다. 청년들은 ‘너희 삶은 우리와 많이 달라 불편할 거야’라는 걱정으로 되려 어르신들이 거리를 뒀다고 추억했다. 그런 어르신들이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기 시작한 건, 매주 함께 울고 웃으며 간식을 나눈,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청년들 진심을 확인하면서였다.
박부례 어르신의 자서전 「오색 빛깔 추억 이야기」 창작에 함께한 이은수(22) 씨는 “고생의 상처 외에는 너무나 친숙한 삶이라 오히려 먹먹했다”고 회상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식을 올렸던 이야기, 늦깎이로 야학에 다니다가 관둬야 했던 사연…. “익숙하지만 멀게만 느꼈던 일화들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자 소소한 희소식에도 경이로움이, 작은 굴곡에도 눈물진 아픔이 일렁였다”는 이 씨 표현대로다.
출판 분야에 꿈이 있고 “노년에 자서전을 쓰는 게 버킷리스트”라는 이 씨지만, 기나긴 삶을 원고지 15장 안팎의 소박한 문장으로 녹여 내는 일은 지난했다. 그런 청년들을 격려한 것도 어르신들이 선사하는 공감의 위로였다. 이 씨는 “배우지 못해도 글쓰기에 도전하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너희도 할 수 있어’라며 생기를 불어넣는 진심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나도 모르게 예전과 달라졌다”는 공통된 고백대로 참가 청년들 마음에는 다름을 뛰어넘은 공감의 가치가 심어졌다. 한 청년은 자서전을 쓰던 추억을 떠올리면 “그냥 지나가던 어르신들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버스 행선지를 묻는 어르신에게는 ‘앱을 켜면 될 텐데’ 하기보다 온 맘으로 안내해 드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사장 이문수 신부(글라렛 선교 수도회)는 “이렇듯 청년들의 청년다운 재능과 개성이 세상에 공감의 가치로 기여할 수 있도록 청년문간은 다양한 사업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