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도 선임기자의 톡(talk)터뷰] 이승신 하나원장
하나원 업무를 설명하고 있는 이승신 하나원장. 그는 탈북민의 한국 정착 과정에서 종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북한이탈주민 3만 4000여 명
지난해 입국자 절반 이상이 20·30대
탈북 동기 ‘배고픔→더 나은 미래’ 변화
12 동안 하나원서 한국 적응 교육
가톨릭 가정서 1박 2일 문화 체험
따뜻한 정 느끼는 의미 있는 경험
2023년 기준 우리나라에 정착한 탈북민(북한이탈주민)은 3만 4000여 명이다.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꼭 거쳐야 하는 기관이 있다. 바로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다. 흔히 ‘하나원’이라 부른다. 하나원은 경기도 안성에 본원이, 강원도 화천에 분소가 있다. 이곳에서 한국 사회 소개 및 직업교육을 받고 나간다. 모든 탈북민이 거쳐야 하는 곳이기에 이들에게는 제2의 고향과 같다. 하나원 이승신 원장을 만나 하나원 업무와 역할, 최근 입국하는 탈북민의 특징, 탈북민 정서적 안정을 위한 종교기관과의 협력 강화 방안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입국한 탈북자들은 한류 세대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196명.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인 2021년(63명), 2022년(67명)의 3배에 이른다. 이전 3년간 없었던 해상 탈북 사례도 2건 발생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164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특별히 입국자 중 절반이 넘는 99명이 20~30대다. 출신 지역은 북·중 접경지역인 양강도·함경도 출신이 70에 달했고, 탈북 동기는 ‘북한 체제가 싫어서’(22.6)가 ‘식량 부족’(21.4)보다 약간 많았다.
이승신 원장은 “최근에는 배고픔에 못 이겨서라기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탈북한 사람들이 더 많다”고 했다. “예전에 주요 탈북 동기는 배고픔과 경제적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 자유에 대한 동경이었습니다. 지금도 물론 그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나은 미래, 그리고 자녀 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이 주된 탈북 동기로 바뀌었습니다. 좀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런 변화에는 K-팝, 드라마 등 한류의 영향이 크다”며 “이들은 한류 세대”라고 말했다. “지금 하나원에 오는 분들은 북에 있을 때부터 한국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방송이라든지 TV 드라마 같은 걸 접하고 오는 분들이죠. 최근 북한에서 그것(한류)을 단속하기 위한 법을 굉장히 강화한 것만 봐도 북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동경이 더 커지고 있고, 그게 체제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통일부가 경기도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탈북하다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 제막식을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탈북민들의 제2의 고향 ‘하나원’
한국에 정착한 3만 4000여 탈북민은 웬만한 군 단위 인구와 맞먹는다. 참고로 지난해 강원도 양구군 인구는 2만 2000여 명, 전남 장흥군 인구는 3만 5000여 명이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후 하나원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한국 사회로 나가기 전 12주간 적응교육을 받는다. 은행 이용법 등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제과·제빵·미용·운전 등 직업교육을 받는다. 유아원과 학교도 운영된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인정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주택을 배정해주는 곳도 하나원이다.
하나원은 7월 8일 경기도 안성 본원에서 소풍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하나원 최고령(87세) 수료자와 개원 첫해인 1999년 제3기 입소자 등 하나원 수료 탈북민 121명이 초대됐다. 행사 테마는 ‘향수·추억·위로’. 이들은 고향 음식을 나눠 먹고 하나원을 둘러보며 위로 공연을 봤다.
이 원장은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한다”며 “기존 탈북민들은 정말 소풍 오는 기분으로 하나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많은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친정집처럼 여기십니다. 이번에는 탈북민 중에서도 몸에 장애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중심으로 초대했습니다. 다들 굉장히 감격스러워했습니다. 이런 행사를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원장은 “올 상반기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가 100명이 넘었다”며 “북한이 국경을 통제하는 등 각종 제재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올해 입국자는 지난해보다 약 30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나원 천주교실 내부 모습. 이곳에서 매주 1회 미사가 봉헌된다.
하나원 천주교실에 미사 시간을 알리는 게시물이 부착돼 있다.
종교행사, 심리·정서적 안정에 도움
하나원 교육프로그램 중 종교행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원장은 “탈북민들이 안정적으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지원은 물론 정서적 안정이 매우 필요합니다. 종교행사는 탈북민들에게 심리와 정서적 안정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원은 종교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주일 오전 가톨릭·개신교·불교·원불교 등 4대 종교행사가 열립니다.”
이 원장은 특히 가톨릭이 참여하고 있는 탈북민들의 한국 가정체험 행사를 높이 평가했다. 현재 가톨릭에서는 수원교구, 서울대교구 등이 가정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저희 프로그램 중에 ‘가정 문화 체험’이라는 게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우리 일반 국민과 접촉을 통해 정을 나누고 실제 가정생활을 체험하고, 봉사자들과 함께 구매활동을 해봄으로써 우리 문화와 시장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1박 2일 동안 (봉사자) 가정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각 가정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보게 됩니다. 천주교가 제안했고 많은 (봉사자) 가정을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다수의 탈북민이 초기 정착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탈북민들은 대한민국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회에 나가 적응하는 데 아직도 어려움이 많다”며 “앞으로도 종교계와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탈북민, ‘북한 이탈 주민의 날’ 제정에 감동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탈북민을 뜻하는 정식 법률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이 법이 시행된 건 27년 전인 1997년. 최근 정부는 이를 기려 ‘북한이탈주민의 날''을 제정했고, 지난 7월 14일 첫 행사를 개최했다. 이어 8월 1일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 험난한 탈북 여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 ‘자유를 향한 용기’를 설치했다. 이 원장은 “탈북민들이 이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탈북민들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기념식을 제정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감격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한국인으로서 더 역할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원장은 “앞으로도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이탈주민의 날 행사 당시 대통령께서 탈북민을 위한 정착·역량·화합을 이야기했습니다. 모두 하나원과 관련된 일입니다. 탈북민의 초기 정착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고, 취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 즉 초기 준비단계를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합은 하나원을 나가 우리 국민과 더 잘 어울리면서 살 수 있는 건데, 이 또한 결국 하나원에서의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승신 원장은
서울시립대를 졸업, 행정고시 37회로 통일부에서 공직을 시작했다. 통일정책실 통일정책협력관과 영국 주재 한국대사관 공사를 지냈으며, 국가안보실 통일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을 거쳐 국립통일교육원 소통협력부장으로 일했다. “탈북민들은 먼저 온 통일이다. 이들이 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를 업무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raelly1@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