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페어는 건축가였다. 20대에 나치에 가입해 활동하다 아돌프 히틀러의 눈에 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군수조달 장관으로 임명되어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나치의 전쟁 이념을 추앙하고 선전하는 수많은 건물을 설계했고,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배치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아내와 함께 여섯 아이를 둔 성공한 인물로, 예의 바르고 건전한 생활방식을 고수한 인물이다.
종전 후 그는 반인도적 전쟁범죄로 20년형을 받았다. 출감 후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전범 재판에서나 자서전에서나, 자신은 유대인 학살을 미리 알지 못했으며 ‘정치와는 상관없는 기술관료’였다는 주장을 이어 갔다. 76세에 정부가 살던 런던에서 사망했다.
슈페어의 자서전은 자기기만에 대한 길고 긴 고백이다. 자서전에는 그의 정직함을 증언하는 사례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증언이 슈페어를 믿을 수 없게 만든다. 왜 그렇게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 히틀러에 복종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범 아이히만을 가리켜 ‘악의 평범함’이라고 부른 종류의 것이 아니다. 자기 직업에 충실한 어떤 사람이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괴물을 숭배하며 일생을 살았다는 현실이다. 슈페어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나치였다면, 오히려 그를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되려면 전문성이나 성공 말고도 훨씬 더 풍부한 가치와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는 누구인지 잘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행동이나 동기를 의도적으로 살피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속이는 때가 있다. 따지고 들어갈수록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아지거나 욕망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이 압도해 진실을 가리면서 자기기만이 된다. 이것이 관성이 되면, 자기기만의 상태는 예외가 아니라 삶의 규칙이 된다. 거짓은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속이는 행위이지만, 자기기만은 의식하지 않은 채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고도 나약해서,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삶의 과제다.
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채 상병 순직 사건이나, 대통령 부인의 뇌물수수 조사나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공직자들의 노골적인 거짓말·기만·은폐는 슈페어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냥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허위와 가식을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진짜로 믿었기 때문에 나오는 뻔뻔함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았다면 이런 자기기만도 없었을 것이다. 자기기만을 피하려면, 행동에 방향을 제공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건과 이야기를 알아듣는 눈과 귀가 필요하며, 왜곡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내면의 장소와 관점을 찾아야 한다.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 ‘원리와 기초’는 “사람이 창조된 것은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또 이로써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영신수련은 나의 깊은 욕망이 펼쳐지는 ‘장소’를 열어, 그 심연을 깊고 솔직하게 살펴보고 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것이다. 해병 사단장이나 방통위 후보자나 대통령 부인이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자기기만의 습속을 그대로 두고서 우리가 인간이 될 리 없다.
박상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