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와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병충해는 지금 농민들에게 가장 큰 시련이라 할 수 있다.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관행적인 농업도 그러한데, 자연의 순환원리를 존중하는 유기농은 더욱 힘든 처지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에 유기농업을 하는 가톨릭 농민들은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로 인해 또 다른 곤경을 겪고 있다.
현재 정부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작물 또는 토양을 채취하여 잔류 농약 검출 여부에 따라 이루어진다.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검출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만일 검출된다면 남몰래 농약을 쳤다는 것이니 인증을 취소함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농약을 살포하지 않았는데도 잔류 농약이 검출되는 경우가 있다. 수십 년 전에 살포되었거나 항공방제 또는 관개용수 오염으로 농약이 검출되기도 한다. 오염원을 소명하지 못하면 인증이 취소되고 도덕적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 고통을 당하는 농민들을 해마다 여럿 만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제도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유기순환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과정을 지지해주는 것이 아닐까? 농지에서 어떤 잡초와 곤충이 서식하는지, 퇴비는 어떻게 만들고 있으며 농자재는 무엇을 사용하는지만 둘러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도 불안하다면 잔류 농약 검사는 친환경인증 초기 단계에서만, 또는 위험요소 발견 시에만 진행해도 될 것이다.
손상된 생태질서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생명농산물 나눔은 이런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농민을 신뢰하고 지지해주는 생태적 회개의 실천이다. 생명농업을 이해하는 소비자가 많아지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인증 취소와 소명 절차에 대한 고충을 덜어주고 생명농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한다.
안영배 요한 신부 (안동교구 농민사목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