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지금을 즐기고 싶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더 오래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도록 지금을 저장하세요!”
보기만 해도 달콤한 이 말은 최근 난자·배아 냉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한 난임병원의 광고 문구다. 우리 사회에서 이처럼 난자·배아 냉동, 시험관 시술 등 보조생식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일고 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0.72명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아이 낳지 않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난임병원 적극적 홍보
보조생식술에 대한 긍정적 인식 심어
정부 지원까지 더해 진입장벽 낮춰
홍보에 빠진 내용은
과도한 상업적 홍보에 매달려
과배란으로 인한 부작용 언급 없어
생명윤리 지키고 더 건강하게
교회가 권하는 나프로 임신법
부부의 사랑·이해로 준비해야
저출생 문제를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로 정부와 병원들이 이같은 의술을 지원 및 홍보하고 있지만, 마치 이것이 저출생 문제의 해법처럼 전달되고 있다. 특히 생명을 잉태하는 데 투입되는 여러 인공 시술을 정확히 안내하기보다는 여성들의 젊음을 유지하거나,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는 엉뚱한 홍보에만 열을 올리면서 시술 부작용 등의 부정적 정보는 가려지는 형국이다. 난자 냉동과 각종 보조생식술이 과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묘책일까. 최근 난자 냉동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현장을 찾았다. 아울러 관련 의료산업을 상품화하듯 전하고 있는 현실을 짚어봤다.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휴일의 서울 성수동. 청춘들의 ‘핫플레이스’ 한복판에 팝업스토어가 이목을 끌고 있었다. 한 난임병원이 난자·배아 냉동을 홍보하고자 마련한 ‘난자 냉동 팝업스토어’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컬러로 꾸민 이곳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이 병원은 ‘당신의 가임력을 저장한다’면서 자신들이 펼치는 난자 냉동 시술을 홍보하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각종 문구가 젊은 여성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커리어나 공부에 집중하고 싶어서’, ‘싱글이나 신혼의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젊고 어린 외모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서’, ‘아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지금이 좋은 당신’ 등 얼핏 보면 난자 냉동과는 상관 없는 듯한 문구가 벽면 가득했다.
줄지어 선 참가자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 이들은 친구와 가족, 연인과 함께였다. 어린 딸들에게 난자 냉동에 관해 설명해주는 엄마도 있었다. 기자도 배부하는 티켓을 받아들었다. 사랑·우정·성장·자유·건강 등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기재하도록 돼 있었다. 각자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표현하는 공간을 지나, 포토존을 통과하자 현장 상담 중인 산부인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지금부터 임신 준비를 하시는 게 좋아요. 당장 결혼 계획이 없다면 난자를 냉동하기도 가장 좋은 시기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 준비라니? 의사는 기자의 간략한 인적사항을 묻고는 하루빨리 임신을 준비하라고 권고했다. 하루라도 젊을 때 난자를 얼려둬야 한다는 것. 기자가 보조생식술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자 “쉽지는 않죠. 그러나 어렵지도 않아요”라고 답했다. 시술 부작용에 대해서는 “크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살이 찌거나 예상보다 난자 개수가 많이 나올 때 배에 물이 찰 수 있지만, 난자 냉동을 무조건 안 좋게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의사는 난자 냉동에 대한 긍정적 인식만 심어주기에 바빠 보였다. 그리곤 이어지는 방문객들을 받아야 한다며 이내 상담을 끝냈다.
부작용에 대해선 언급 없어
이날 팝업스토어를 찾은 여성들은 하나같이 난자 냉동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갖게 됐다고 했다. 강윤정(가명, 27)씨는 “임신과 출산이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기게 되면서 난자 냉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부작용에 대해선 전혀 안내받지 못했는데, 제대로 들었다면 좀더 무겁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고 했다. 전보미(22)·장하영(21)씨도 “상담 중에 난자를 추출할 때 맞는 주사는 여자들이 정상적인 생리 주기를 위해 맞는 호르몬 주사와 다를 바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난소 나이를 스스로 측정할 수 있는 자가키트도 증정됐다.
전문가들은 난자 냉동 같은 시술을 안내할 때엔 제대로 된 상담이 필수라고 했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생명의 탄생과 직접 연관된 이같은 시술 정보와 안내가 상업적 홍보활동과 접목돼 결국 병원을 홍보하는 방식은 우려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혈전증이나 간 기능 이상, 흉수·복수가 차는 등 난소과자극증후군이 발생하거나 조기폐경 가능성도 있는 등 난자·배아 냉동이든 보조생식술은 가볍게 안내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결혼·출산 시기가 늦춰지면서 난임을 걱정하는 이들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과 맞물려 ‘물들어 올 때 노 젓기’ 식의 난임병원 홍보가 늘고 있다. 본래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500만 원 안팎이 들던 난자 냉동 비용은 서울시의 경우, 최대 200만 원까지 지원하면서 진입장벽을 낮췄다. 이같은 여파로 여러 난임병원들이 너도나도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서도 서슴없이 전해지고 있다.
생명윤리에 위배
가톨릭교회는 인간 생명을 남녀 간 사랑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여기기에 의술을 통한 난자와 정자의 인공적 결합을 반대한다. 시험관 시술 같은 보조생식술은 대리모 출산, 부모가 원하는 유전자의 아이를 선택하는 디자인 베이비, 다태아 임신 낙태 등 각종 생명윤리문제와도 연관되기 때문이다. 비혼 출산에 이용되는 정자·난자은행도 마찬가지다. 보조생식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아의 파괴는 인간 생명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이처럼 불특정 다수의 젊은이들에게 상업적 마케팅을 통해 전하는 인공시술 홍보는 생명 탄생의 가치, 남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출산과 임신의 과정 등이 배제된 채 자칫 생명을 마음대로 계획·지배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신만 하면 된다는 식의 마케팅은 가톨릭 신자라고 해서 비껴가진 않는다. 저출생 문제만 부각되다 보니,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윤리를 잘 모르고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사례가 많다. 결혼 100여 일 된 크레센시아(가명, 33)씨는 “결혼 때부터 자녀 계획을 가졌고, 나이 때문에 보조생식술까지 감안하고 있다”며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는 보통 주변으로부터 얻는데, 보조생식술을 통해 출산한 지인이 여럿 있어 자연스럽게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고 했다.
교회가 제시하는 나프로 임신법
성공률 높고 윤리적 문제 없어
교회는 여성의 건강을 해치지 않고, 배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생명윤리에도 어긋나지 않는 나프로 임신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임신 성공률도 29.7로, 지난해 보조생식술의 평균 성공률 27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크레센시아씨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사실 나프로 임신법에 관해 자세히 접하지 못했다”면서 “많은 이가 잘 모르고 참여하게 되는 난자 냉동이나 보조생식술에 관한 올바른 교육과 안내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전했다.
여의도성모병원 나프로임신센터의 송미수(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는 이같은 사회 분위기에 대해 “우리나라의 생명경시 풍조를 보면 저출생 정책·고객의 요구·난임병원의 상업적 이익 추구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윤리적 성찰 없이 필요하다면 정당화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이 쉽게 간과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임을 겪는 부부는 매번 스스로 ‘실패한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라고 할 정도로 고통을 겪는다”며 “생명 탄생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협력하는 것이기에 부부가 함께 난임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고, 서로 이해와 사랑을 바탕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